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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t light on the stage

[덕수궁 프로젝트] 그 시간을 품은 공기가 지금 이 곳에서 함께 하다

 

 

덕수궁 프로젝트
덕수궁 미술관 : 2012.09.19~10.28  덕수궁 : 2012.09.19~12.02

덕수궁 미술관 안에서는 각 전각과 후원에 전시된 작품들에 대해 미리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상시로 행해지는 도슨트 안내를 통해 덕수궁의 역사와 각 작품에 담긴 예술가들의 의미 등의 정보를 얻고 작품을 접한다면 좀 더 유익한 시간이 될 것 같다. 미술관은 10월 28일까지만 운영한다.

 


경운궁 또는 덕수궁

덕수궁이 궁으로서 역사를 시작한 것은 임진왜란 후, 서울로 돌아온 선조가 거처할 궁으로 택한 것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전쟁을 겪으면서 주요 궁들은 폐허가 됐고 남아있는 궁 중에서 머물 수 있었던 곳이었다는 것이다. 이후 이 곳은 파란만장한 역사를 담아낸 공간으로 이해할 수 있다.
광해군 시대에 '경운궁'이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주어졌고, 이후 인목대비가 이곳에 유폐되며 인조반정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인조가 이 곳에서 즉위식을 거행한 것도 의미심장해보인다.  
세월이 흘러 고종이 아관파천 후 이 곳에 머물며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황궁'으로서 새롭게 거듭났다 한다. 동도서기를 실현하고자 했던 고종의 이른바 '경운궁 프로젝트'는 수포로 돌아가고
헤이그 밀사를 파견했던 것도 실패에 그치며 고종은 일제에 의해 왕위에서 물러나게 되고 그 때 갇혀 살 듯이 머물게 된 곳도 이 곳이다. 그 때 '덕을 쌓으며 장수하기'를 바라며 지어진 이름이 '덕수궁'이라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역사학자들에 의해 이 곳 덕수궁의 옛 이름이자 본래 이름인 '경운궁'을 복원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들이 많다 한다.

누군가에게는 왕위에 즉위했던 곳이고, 누군가에게는 왕위에서 내려온 후 감옥처럼 갇혀 지내야만 했던 곳이며, 누군가에게는 국운을 드높일 일이 외적에 의해 저해된 곳이고, 누군가에게는 꿈같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궁이 바로 경운궁이자 덕수궁이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파란만장했던 역사를 끌어안은 공간에 현대미술가들의 사고를 거친 다양한 작품들이 들어섰다. 그 때의 그 이야기를 품은 채 덕수궁의 곳곳에 놓여진 예술가들의 상상력과 해석이 조화된 작품들이 존재하는 것을 목격하게 되는 것이 '덕수궁 프로젝트'다.

 


간혹 고궁에 들어가면 건물 자체 양식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어떤 이야기들이 떠오를 때가 있다. 물론 대부분은 어디서 본 적이 있는 사극의 한 장면이 영향을 미친 탓일 터이지만 고궁의 곳곳을 마치 선비의 그 걸음걸이라도 되는 냥 점잖게 거닐다보면 어떤 기운이라는 것을 받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중화전, 함녕전, 덕흥전, 석어당, 정관헌 등의 전각과 후원에 마련된 예술가들의 작품을 보자면 왠지 이 예술가들도 내가 느꼈을 법한 인상들에 각자의 상상력과 표현법을 가미하여 이번 프로젝트를 완성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러므로 그것을 바라보는 것, 또는 그것 안에 들어가 보는 것만으로 뭔가 그 예술 작품의 완성을 위해 참여한 듯한 기분이 드는 것만 같다.

그 때의 그 사람들과 그 때의 숨결이 지금의 사람들과 지금의 공기에 함께 섞여 있는 듯한 묘한 기분에 살짝 취할 수도 있는 프로젝트라는 생각이다.

 

 

<함녕전 프로젝트 - 동온돌> 작가 서도호. 퍼포머 정영두.

함녕전은 고종의 침전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고종은 잠자리에 요를 까는 것이 아니라 보료 세 채를 깔고 잠들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어디에도 기록되어있지 않다고 한다.

작가 서도호는 그 기록에 영감을 얻어 이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이 영감을 시작으로 영상과 설치작품, 퍼포먼스 등을 결합한 공동작업을 추진했고, 덕수궁 미술관 내 보여지는 영상물은 역사의 기록이라는 것이 있는 그대로가 아닌 소실과 주체에 따른 왜곡 등이 담겨있고 그것에 따라 짜맞춰지는 특징들을 담고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세 채의 보료를 깐 잠자리는 마치 세 개의 꿈자리를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은 인상을 받았다. 그 꿈은 무엇과 또는 누구와 연결이 되어있을테고 고종은 그 꿈을 위한 각자의 자리를 위해 하나의 보료가 아닌 세개의 보료와 밤을 보내지 않았을까 생각해봤다. 

 

 

<석어당 프로젝트-Better Days> 작가 김영석

석어당은 인목대비가 유폐됐던 곳이자 고종시대 덕혜옹주를 위한 유치원이 마련됐던 즉조당과 하나의 권역을 이루며 연결된 공간이다. 한복 디자이너이자 컬렉터인 작가 김영석은 여성스럽고 아름다운 공간으로서 석어당을 재해석했다. 좌측에 환영처럼 보이는 영상은 덕혜옹주의 모습으로 덕수궁 미술관 내에는 덕혜옹주를 위한 가마와 이정화의 퍼포먼스 영상도 함께 만날 수 있다.

 

 

<중화전 프로젝트>

중화전은 왕의 즉위식, 조례 등이 거행되던 공간이다. 영화에서 왕 앞에 머리를 조아린 신하들이 모습을 흔히 보게 되는데 그런 장면 속 공간으로 그려진다.

이 공간을 활용한 굉장한 미디어 아트가 펼쳐진다고 한다.

류재하 작가가 중화전의 전 공간을 활용한 미디어 아트 '시간'은 도슨트의 말에 의하면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는데 미술관 내에는 일부만 전시되어있고 실제 전시는 중화전 외부와 내부에 쏟아진 영상을 통해 드러나므로 야간에는 특히 위용을 자랑할 것 같다. 아쉽게도 이 전시의 10월 일정은 종료됐고 11월 8일부터 재개된다. 이 전시를 보기 위해서는 11월의 어는 가을밤에 덕수궁을 방문하거나 누군가 찍은 동영상을 감상하는 수 밖에 없겠다.

kuspace님의 블로그에 담긴 '시간'동영상 

 

 

<덕홍전 프로젝트 - 자리> 작가 하지훈

원래 명성황후의 신전을 모시는 혼전인 '경효전'이 있던 곳을 한일병합 후인 1912년 개조하여 덕홍전으로 고쳐 부른 것이라 한다. 원래 신성한 곳을 일본인 통치자의 접견 장소로 변형시키면서 바닥을 우리식의 좌식이 아닌 입식 구조로 바꾸고 내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고 한다.

가구 디자이너 하지훈은 이 공간이 이런 변형과 왜곡의 산물이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한다. 바닥에 크롬 장식의 의자를 설치해서 관람객들이 직접 앉아 쉴 수 있도록 했고, 크롬의 성질 덕에 천정이나 벽면 등 비춰지는 사물이 왜곡되고 변형되어 보이는 인상을 자신이 이 공간에서 받은 영감과 동일시 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덕수궁...

 

 

덕수궁 프로젝트를 관람하고 막 덕수궁을 나서면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 마치 시간 여행을 하고 온 기분처럼.

바로 앞에서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단식 투쟁이 벌어지고 길 건너 서울시청은 괴물같은 신 건물이 구 건물을 집어삼킬 듯하고 그 앞 광장에서는 무엇엔가 들뜬 축제가 연이어 준비되고 있다. 역사 속 명과 암을 품어낸 공간 덕수궁과 언젠가 역사가 될 현재 속 명과 암을 품어낸 공간. 이 절묘한 공존이 나를 현기증 나게 만들었다. 모든 시간과 모든 공간의 공기를 아우른 듯한 느낌이 도사리는 공간이 지금, 그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