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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이탈리아 횡단밴드]길 위에서 답을 얻다

 

 

오랜만에 참여한 CGV무비꼴라쥬 시네마톡. 오늘은 한창호 평론가의 '아트톡'으로 <이탈리아 횡단밴드>를 관람했다. 이탈리아에서 유학하셨을 뿐더러 이탈리아의 미술, 음악 등 예술에 대하여 다양하게 체득한 경험을 통해 영화, 그림 속을 걷고 싶다.’ 등의 책을 집필하신 바, '이탈리아 남부지역'에 대한 문화적, 지리적 특징들에 대한 설명이 함께 해 영화에 대한 이해가 더욱 풍부했던 자리였다.

 

영화는 왕년의 동네 밴드로 활동하던 이들이 오랜만에 재결성 이탈리아 남부의 음악 페스티벌인 '스칸자노 재즈 페스티벌'에 참가하기로 결심하면서 시작된다. 그들은 음악 페스티벌이 벌어지는 스칸자노 지역까지 10일간 도보로 횡단하면서 가기로 하고 그 길에서 즉흥 연주회를 갖기로 한다. 말 그대로 이탈리아의 남부 지역인 '바실리카타'를 횡단하는 계획인 것이다.

영화의 원제는 'Basilicata Coast to Coast', 말 그대로 그들의 바실리카타 횡단 여정을 일컫는다. 각자의 사연을 지닌 4명의 밴드 구성원. 리더인 니콜라는 바실리카타 예술고등학교의 수학 선생님이다. 아내와 처가에 꼼짝 못하는 소심한 캐리터. 더블베이스를 연주하는 프랑코는 실연의 아픔 때문에 말은 하지 '않게' 된 인물이다. 의대를 휴학한 살바토레는 겉으로는 훈남이지만 어떤 상처를 갖고 있고 그의 사촌형인 로코는 연예인이지만 되는 일도 없고 매니저와 결별까지 하게 되는 실속 없는 캐릭터다. 여기에 이들의 여정을 취재하기로 한 기자 트로페아, 그리고 그 여정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 밴드의 음악과 함께 영화를 구성한다. 그 사이사이 등장하는 바실리카의 풍경은 말 그대로 장관이고 지역과 유관한 작가와 소설, 와인에 대한 묘사는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요소이다. 영화를 보고 한창호 평론가의 아트톡을 통해 이탈리아 남부 지역에 얽힌 정보를 접하니 영화 속 장면장면이 떠오르며 연신 머리를 끄덕거렸던 것 같다.  

 

바실리카타 지역은 이탈리아의 지역 중에서도 '존재감이 없는' 지역이라고 한다. 대문호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에서도 이 지역은 포함되지 않았을 정도로 보이지 않는 지역인 것. 지대의 90%가 산악지대이다 보니 60만 정도의 인구만 거주하는 소규모 도시라고 한다.

그러나 문화적 유산이 풍부하고 천해의 자연으로 가치 있는 곳이라고 한다. 가령 영화 속 일행이 갈리아노 마을을 지날 때면 작가 카를로 레비가 '그리스도 에볼리에 멈췄다'를 집필한 곳이 이 곳이라는 대사를 하기도 하고, 카를로 레비의 집터에 들렀을 땐 바실리카타의 대표적인 와인을 들고 작가 카를로 레비와 영화로 만들어진 '그리스도 에볼리에 멈췄다'의 배우 쟝 마리아 블론테 등의 이름을 부르며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일종의 오마쥬인데, 이처럼 '존재감이 약한' 바실리카타에 대한 풍부한 오마쥬가 가능한 것은 이 영화의 감독이자 밴드의 리더 니콜라를 연기한 로코 파팔레오의 고향이 이 바실리카타이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바실리카타에 대한 정보를 안다면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겠지만, 영화는 그런 정보가 없어도 충분히 재미나게 즐길 만하다. 당나귀가 끄는 수레와 함께 걸어서 이동하는 여정은 이들의 인생사와 음악을 들려줌과 함께 풍부한 유머를 과시한다. 마피아를 풍자하거나 보수적이고 마초적인 이탈리아 남부 남성들의 특징과 이에 보란듯이 자주적 삶을 사는 여성 캐릭터를 보여주며 영화적 재미를 선사한다.

 

두 가지 인상적인 장면은 내내 여운이 남는다. 하나는 여정에서 만난 여인 마리아의 대사다. 결혼을 20일 남겨둔 채 밴드의 여정에 동참하게 된 이 여인은 자신이 보아온 노인들의 모습을 이야기하며 삶을 살아내는 방식을 일깨운다. 노인들의 대화를 지켜보면 그들의 젊은 날을 이야기 할 때 두 눈이 반짝거린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 젊은 날을 이야기할 때 두 눈이 반짝일 수 있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전하는 부분이다. 마리아의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까지도 깨어나야 한다는 자각을 하게 했다. 마음이 동할 때 주저함은 없어야겠다는 생각 말이다.

다른 한가지는 영화의 엔딩이다. 우여곡절 끝에 페스티벌이 열린 스칸자노에 도착한 이들. 그들이 맞게 되는 영화 속 엔딩을 페스티벌의 결과로 귀결시키지 않고 각자의 문제가 10일간의 여정을 통해 어떤 해결점을 만나게 됐는지를 보여주는 설정이 좋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 'Basilicata on my mind'는 페스티벌을 위한 노래가 아니라 그들 스스로에게 불러주는 노래라는 느낌을 전하는 엔딩은 감동적이다. 그들이 부르고 연주하는 노래는 그들의 10일간의 여정의 갈무리이기도 하고 그들이 살아온 과거의 삶과 미래의 삶을 연결하는 현재의 빛나는 삶을 증명한다.

 

바실리카타를 도보로 횡단하는 영화는 자연스레 우리 국토를 종단했던 근작 <577 프로젝트>를 떠올리게 한다. <577 프로젝트>는 순수하게 하정우라는 배우가 수상 소감으로 내뱉은 공약을 지켰다는 것에 제작의 이유가 모두 담긴 작품이므로 그 의도를 평가절하할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미션 수행의 의미 외에는 찾을 길이 없을 정도로 가볍고 장난스러운 느낌과 남는 것 없는 그 종단 여정의 메시지는 아쉬움이 남게 했었다.

반면 <이탈리아 횡단 밴드>의 경우 횡단의 여정 속에서 인물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엔딩까지 그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마무리 짓는 힘이 있다. 여정 속에서 펼쳐놓은 인물의 이야기에 끝까지 책임을 지는 방식인 것이다. 유머는 있을지언정 결코 가볍지 않다.

두 영화 모두 똑같이 목적지에 도달하지만 한 편은 아쉬움을 남기고, 한 편은 진한 감동을 남기는 것은 다큐와 픽션, 논픽션과 픽션을 떠나 기획의 정교함, 방향성에서 차이가 났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