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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이웃사람] 현실에 밀착해 탄탄하게 조여오는 스릴이 맛깔스럽다

 

 

비가 내리는 밤, 마중 나오지 못한다는 엄마의 전화를 뒤로 하고 소녀는 멀고도 멀어 보이는 집으로 가는 길에 나선다. 비를 추적추적 맞고 가는 소녀에게 다가오는 검은 자동차, 소녀를 태우고 안전하게 소녀의 아파트 단지 앞에 정차하는 듯 보이는 차를 배경으로 영화의 타이틀 ‘이웃사람’이 떠오른다.

 

예상대로 소녀는 토막 난 사체로 발견된다. 영화 <이웃사람>은 그 사건을 시작으로 강산맨션에 살고 있는 이웃들의 사정을 들춰 보여준다. 큰 틀은 죽은 소녀의 가족과 그 소녀를 죽인 이웃이 만들고, 그들 일상의 범주 안에 등장하는 모든 이웃들이 조금씩 조금씩 인연을 이어가며 사건 속으로 들어온다. 마치 작은 눈뭉치가 커다란 눈덩이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는 기분이 들게 한다. 물론 그 눈뭉치 속에는 곧 터질 폭탄이 담긴 것이고 말이다.

 

‘이웃사람’이라는 제목이 굉장히 현실적인 제목인지라 이 영화를 현실과 별개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가뜩이나 최근 이웃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폐륜적인 범죄가 현실 속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으니 픽션으로라도 이런 소재를 받아들이기가 꺼려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영화는 현실을 고스란히 투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픽션이 가질 수 있는 극적 긴장요소를 활용하여 ‘영화로서’ 이 작품을 무리 없이 수용하게 만든다. 놀라운 점은 픽션이 가질 수 있는 극적 긴장의 요소 역시 ‘이웃사람’에게서 나온다는 것이다. 영화의 태그라인 중 하나가 이것이다. ‘죽은 소녀도, 살인마도, 그를 막는 사람들도 모두 이웃사람’. 제목이 ‘이웃사람’인 이유가 몇 가지 있음을 태그라인을 통해서도 영화를 보면서도 알게 된다. ‘죽은 소녀’와 ‘살인마’가 이웃이라는 것이 우리가 맞닥뜨린 비극적인 현실 그대로라면 ‘그를 막는 사람들도 이웃’이라는 부분은 픽션의 요소가 강하다. 때문에 영화의 클라이막스 부분도 ‘그 살인마를 막는 사람들이 이웃사람(들)’이라는 점이 완성한다. 마치 현실 속에서 기적을 체험하는 것처럼 영화의 클라이막스의 픽션적인 요소마저도 현실의 연장선으로 느껴지기에 관객의 감동을 배가시키는 역할을 한다.

굉장히 끔찍한 현실을 담고 있지만 자극적인 표현법으로 관객을 자극하려는 쉬운 길을 선택하지 않은 것도 이 작품의 미덕이다. 그보다 동그랗게 원을 형성하며 서 있던 사람들이 점점 원점으로 모이면서 좁혀지는 심리적 스릴을 극대화한 것은 영화를 완성도 있게 만들었다.

 

강풀 작가의 원작을 보지 않았기에 원작과의 비교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영화만 봐도 원작의 인물 묘사가 뚜렷하고 각각 설득력이 있을 것이란 짐작이 가능하다. <이웃사람>은 화려한 블록버스터가 아닌 소품이지만 오히려 그런 면이 장점이 된다. 등장인물들이 여럿이고 그들의 유기적인 관계가 극을 이끄는 핵심이기에 어떤 인물의 이야기에 치우치지도 않고 날렵하게 떼로 달려 나가는 느낌이다.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 영화 중 95년작 <개같은 날의 오후>와 역시 강풀의 원작을 영화로 옮긴 <아파트>를 비교해볼 수 있겠다. 영화 <아파트>는 등장인물이 상대적으로 적었음에도 다소 엉성한 플롯과 비중을 감당 못하는 배우의 연기가 아쉬움을 남겼다. 한껏 힘을 줄 수 있는 중심 인물이 있었음에도 잘 활용되지 못한 예이다. 반면 <개같은 날의 오후>는 각자의 사연을 갖고 옥상에 모이게 된 아파트 주민인 여자들의 이야기로 누구하나 메인이랄 수 없이 어우러지는 연기 앙상블과 현실적인 소재를 다룬 탄탄한 시나리오가 장점인 영화였다. <이웃사람>은 <아파트>의 한계를 답습하지 않았고 <개같은 날의 오후>처럼 캐릭터의 앙상블과 정점으로 치닫는 구성이 치밀하고 무엇보다도 현실 밀착형의 소재를 탄탄하게 다룬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강풀 작가가 카메오로 출연함.

*김정태 배우는 여기에'도' 나옴.(^^)

*엔드크레딧에 흐르는 노래는 김새론 배우가 부른 노래라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