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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도둑들] 줄을 잘 타야 살아남는다

 

 

<범죄의 재구성><타짜>에 이은 최동훈 감독의 이른바 케이퍼무비 3부 <도둑들>을 확인했다.
이번엔 제작사의 이름도 아예 '케이퍼필름'이라고 할 정도였는데 이는 근래에 우리나라에서 이런 장르를 잘 만든다고 인정받으며 안착시킨 감독을 포함한 만든이들의 행보에 당당함과 자신감을 확실히 부여하는 요소같다.
 
케이퍼무비의 의미 그대로 '범죄를 모의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상세히 보여주며'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음과 누구도 속일 수만은 없고 누구도 속임을 당할 수만도 없음이 대사발 강한 감독의 장기와 서로 경쟁이 붙지 않을 수 없었을 배우들의 매력으로 잘 드러났다.

 

영화를 3등분하여 보자면, 첫번째 덩어리는 대사의 힘으로 관객을 끌어들이고, 두번째 덩어리는 확 눈에 띄는 요소없이 다소 느슨하게 가다가, 세번째 덩어리에서는 화려한 볼거리로 정점을 찍는 구성을 보인다.
캐릭터를 소개하며 '한국도둑팀'이 꾸려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초반부에는 각 시퀀스마다 빠르게 주고 받는 대사가 관객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다. 특히 여배우들의 거침없는 대사는 최동훈의 케이퍼무비 세 작품의 공통된 특징인 듯 하다.

이 한국팀이 홍콩으로 건너가 마카오박(김윤석)을 접선하고 펼쳐지는 중간부분은 기대보다는 심심하다. 뭔가 더 홍콩/마카오의 색이 담긴 것들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으나 그 기대감을 충족시키기에는 조금 미적지근한 부분이 있다. 은근히 한국팀이 홍콩팀을 압도하는 뭔가가 나와주기를 기대해선지 한국팀이 홍콩팀에게 조금 밀린다는 느낌마저 주는 중간 부분은 조금 김이 샌다.

홍콩에서 가장 빛나는 캐릭터는 씹던껌(김해숙)과 첸(임달화) 커플이다. 주차장 총격신에서 배우 임달화는 왕년 홍콩느와르의 스타답게 카리스마를 내뿜고 김해숙씨는 귀엽게 빛난다.
홍콩에서의 위기는 한국, 정확하게는 부산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이다. 문제의 보석 '태양의 눈물'을 둘러싼 홍콩 조직과 한국 도둑들의 한 판 대결은 부산에서 그 절정에 달한다. 마카오박이 줄을 타는 시퀀스부터는 화면에서 눈을 떼기 힘들다. 영화 중에서 가장 공들이고 신경 썼을 것 같은 액션 시퀀스들이 이 후반부에 집중된다.
홍콩에서 예니콜(전지현)이 고층 빌딩에서 줄타기를 할 때는 <미션 임파서블4>가 생각나지만 부산에서 마카오박과 홍콩 일당이 벌이는 줄타기 시퀀스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모습으로 느껴진다. '줄을 잘 타야 살아남는다' 한 줄 평을 남길 법도 하다.

 

어느 한 부분 빠지지 않고 모두 만족스러웠으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을 주는 요소는 각 캐릭터에게서도 느끼게 된다.
감독이 가장 공들였을 것 같은 마카오박과 대사 몇마디로도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예니콜과 씹던껌은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캐릭터라 할 수 있다.
반면 뽀빠이(이정재)와 팹시(김혜수)는 비중에 비해 다소 밋밋하다. 그래도 가장 아쉬운 캐릭터는 양국의 가장 젊은 남자 배우들일 터. 홍콩의 젋은 남자 조니(증국상)는 존재감이 너무 약하다. 한국의 젊은 남자 잠파노(김수현)는 예니콜과 붙는 장면에서는 존재감을 드러내나 두번째 덩이(홍콩편) 끝 부분부터 거의 '행방불명'수준으로 자취를 감춘다. 이 캐릭터에 조금만 더 힘을 줬더라도 그걸 못 살릴 배우가 아니었을텐데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것 같아 아쉽다. 그것도 소위 '요즘 대세' 김수현인데 말이다. 감독은 영화의 마지막 쿠키에라도 잠파노를 등장시켰어야 했다. 쿠키 조차 없었기에 잠파노가 더 아쉽다.
전체 캐릭터에 대해 한마디 더하자면, 최동훈의 전작들과 비교했을 때 완전히 새로운 캐릭터가 탄생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예니콜과 씹던껌은 <범죄의 재구성>의 인경(염정아)의 분신같고, 팹시는 <타짜>의 정마담의 분신같다. 마카오박, 뽀빠이 등 남자 캐릭터 역시 최동훈의 전작에서 보았음직한 캐릭터다.
최근에 한 블로거가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을 그의 <배트맨시리즈 2.5편>이라며 감독의 전작들의 캐릭터를 연결시켜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스토리와 인물관계를 예측한 것이 화제인데, <도둑들>을 봐도 어떤 부분에서는 최동훈식 캐릭터의 활용과 각 캐릭터들간의 상호작용이 그의 전작과 최근작에까지 연관성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케이퍼무비라는 장르 안에서 더 어떤 캐릭터가 나와야할 이유가 있을까도 싶지만 비슷한 캐릭터를 대사의 포인트를 주며 재활용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겠다.

 

정리하자면 중반부에 살짝 지루해지는 부분이 있지만 초반과 후반부에는 반짝거림이 분명한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최동훈 표 케이퍼무비 세 작품에 대한 개인적 감상에 순위를 매기자면 <범죄의 재구성><도둑들><타짜> 순이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도둑들>의 흥행력은 어느정도일까? 여름 블록버스터의 경쟁 속에서 <도둑들>은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 놈>의 흥행수준 정도까지는 다다르지 않을까 예측해본다. <연가시> 정도의 영화가 5백만을 동원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소비심리가 위축된 현실이라 해도 영화 한 편에 대한 관객들의 지갑이 아직까지는 열려있는 것 같다. 그러므로 <도둑들>이 <놈놈놈> 수준인 740만명까지도 가능하지 않을까 예측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