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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t light on the stage

뮤지컬 <위키드>_오즈의 시련이 현실로 느껴진다

 

 

뮤지컬 <위키드>는 고전 <오즈의 마법사> 그 이전 이야기이자 그 이후 이야기이다.

대학에서 만나게 된 금발의 글린다와 초록 피부의 엘파바. 두 친구가 우정을 쌓게 되고 같은 취향의 사랑을 만나게 되는 과정이 일으킨 내적 갈등은 부패한 마법 세계의 실체를 알게 되고 선과 악이 만들어지는 세상의 실체를 경험하게 되면서 극대화된다. 글린다가 북쪽의 선한 마녀가 되고 엘파바가 서쪽의 악한 마녀가 되는 것도 결국 그 갈등의 결과다. 개인적 갈등이 사회적 갈등으로 확대되는 모습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비극적인 요소는 이 뮤지컬이 동화에 근거를 두고 있음에도 성인들이 더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한편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의 집이 어떻게 오즈로 날아오게 됐는지, 마녀를 찾아 나선 노란 길 위에서 도로시가 만난 겁쟁이 사자와 양철인 그리고 허수아비의 탄생 비화는 무엇인지, 서쪽의 마녀의 최후에 담긴 비밀은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데 이는 물론 다 만들어진 이야기다. 2003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뮤지컬은 그레고리 머과이어의 소설 <위키드-사악한 서쪽 마녀의 인생과 시대>를 기반으로 하고, 머과이어의 소설은 (당연히) 1939년작 영화 <오즈의 마법사>와 소설 <놀라운 오즈의 마법사>를 기초로 한다. 창조에 재창조를 거듭한 이 콘텐츠는 영화와 소설, 뮤지컬과 연극을 넘나들며 ‘원 소스 멀티 유즈’의 성공적인 예가 된다.

 

3층 높이까지 알차게 활용되는 화려한 무대와 완벽한 음악은 주요 배역과 앙상블의 뛰어난 재능과 만나 잘 조합되어 소문대로 볼 가치가 넘친다. ‘오리지널 내한공연’이라 하여 제공되는 한글자막도 위트 있게 잘 짜여졌다.

아쉬운 점은 (여전히-대부분의 뮤지컬이 갖는 장르적 단점인 듯) 2막에서의 호흡이다. 많은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풀어내지만 공연 시간의 제약을 극복하기엔 무리가 있어보였다.

1시간 30분 동안 펼쳐지는 1막은 초록마녀 엘파바의 탄생부터 글린다와 엘파바의 만남, 그리고 마법 세계의 실체와 엘파바가 서쪽의 악한 마녀가 되는 순간까지를 알차게 보여준다.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가 담겨져 있기 때문에 보통 2막에서 찾아올 수 있는 지루한 순간이 오히려 1막에 찾아올 정도였지만 1막의 구성은 흠잡을 데가 없다. 반면 1시간 동안 펼쳐지는 2막은 오즈라는 세계를 지탱하는 부패한 공권력과 거짓된 마법 세계의 실체가 핵심인데, 그런 묵직한 배경을 전면으로 내세우는 한편 각 인물들의 이야기 또한 클라이막스에 다다르고 <오즈의 마법사>에서 가져온 요소들까지 한꺼번에 버무려지는 통에 보기에 숨이 찰 지경이다. 하지만 그것은 제한된 시간에 대한 아쉬움을 더할 뿐 공연 자체의 질을 떨어뜨리지는 않는다. 휘몰아치는 2막을 보면서 극 전반을 이해하게 되고 관객의 감정도 클라이막스에 다다르게 되는 것 같다. 숨 가쁘게 극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니 감동의 징후는 커튼콜에서 터져 나왔다. 마지막 암전 후 커튼콜의 끝, 함께 손을 잡고 무대에 등장하는 엘파바와 글린다를 보니 눈물이 터져 나왔다. 어쩌면 다시는 함께 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둘의 진정한 우정이, 그 둘을 시련 속에 던진 세상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련을 통해 서로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노래하는 그들의 모습이 <위키드>라는 뮤지컬에 온전히 담겨있고 현실감 있게 전달되었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