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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모와 이라이트 사이 어딘가

[소년이 온다] 되풀이 되어선 안 될 아픔을 알리려 소년이 온다

 

소년이 온다  _ 한강 저 |  창비

 

 

결코 되풀이 되어선 안 될 아픔을 알리려 소년이 온다

 

 

얼마 전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을 보면서 기억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경험이 남긴 기억을 되짚다 보면 불행한 기억이 나올 수도 있고 행복한 기억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불행한 기억이 현재의 삶을 잠식하게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행복한 기억의 홍수에 불행의 기억을 가라앉히라'는 마담 프루스트의 말처럼 선택이 희망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모든 불행한 과거가 남긴 기억을 극복한다는 것이 영 불가능한 상태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작가 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 1980 5월 18일, 광주 민주화 운동의 때를 지면에 되살린다. 그 때를, 그 때를 지나온 사람들의 기억을 끄집어내 낱낱이 묘사하는 소설은 결코 치유할 수 없는 상처가 있음을, 결코 잊어서도 안될 과거가 있음을 묵직하게 전한다. 또한 용서와 극복, 유행어처럼 되어버린 힐링이라는 단어를 조언이랍시고 내뱉는 것들에 얼마나 함부로였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정권을 휘어잡은 신군부세력의 비열한 의지와 비인간적인 지시로 내려진 계엄령. 그 계엄 하에 이유도 없이, 잘못도 없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갔던 무고한 광주의 시민들. 무참히 짓밟는 무장한 계엄군에 저항하고 앞장섰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하고 끌려가 말로 표현할 수도 없을 고문을 당했던 사람들. 가족과 친구의 죽음을 목격하고 그 죽음을 수습해야만 했던 사람들. 같이 걸었던 친구의 시체를 찾아 헤매다 주검을 보고 넋을 잃었던 사람들. 그 때 죽은 사람도, 그 때 고문을 당했던 사람도 비참하고 억울한 사람들이지만 아직까지 살아남아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고 사는 게 사는 것이었을까.

 

 

<소년이 온다>는 그 때, 5월 광주의 처참한 10일과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까지 이어가며 이야기를 풀어낸다. 각기 다른 화자와 시점으로 6개의 장을 펼치고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작가가 이어받는다. 마치 옴니버스처럼 구성되어 있지만 모두 그 순간 거기에 있었고 서로 이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어느 어머니의 아들의 이야기이자, 그 아들의 친구와 그 친구의 누나의 이야기이고, 그 친구 누나가 아는 언니들의 이야기이며, 다시 그 아들이 만난 형, 누나의 이야기다.

 

 

에필로그를 읽으며 다시 놀랐던 것은 이 소설에 등장하는 그 때 그 사람들이 그저 실제 사건에 입각한 참고 자료를 통해 만들어진 허구의 인물들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소설 속 ''이자 '동호'이자 '소년'은 작가가 어린 시절 살았던 집에 이어 살게 된 가족의 아들로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이었다. 나이 10살 때, 광주의 5월을 몇 달 앞두고 서울로 이사 온 작가는 어른들의 대화를 엿듣는 것으로, 어른들이 감춘 사진집을 몰래 찾아보는 것으로 알게 됐던 80년 광주의 처참했던 기록과 기억을 더듬고 더듬어 '너이자 동호이자 소년'인 인물을 찾아냈다. 그리고 찾아낸 자료를 토대로 이 소설을 써내려 갔다.

광주에서 서울로 이사를 오지 않았다면 그 때 광주의 처참함이 작가의 가족을 그냥 스쳐 지났을까. 한 두 다리만 건너면 모두가 연결되는 사람들이 바로 그 광주의 희생자, 피해자였다. 그건 다시 말하면 소설을 읽은 나를 포함한 이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그 때 그 광주의 사람들과 가깝고 멀게 모두 연결이 되었으리라는 것이다. 당장 해외에 나가기라도 한다면 만나는 한국인들은 사촌이라도 만난 것마냥 반가워하고 형님, 아우 하는 마당이니 한민족이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광주의 그들로부터 연결된 끈을 끊을 수 없는 게 아니겠는가.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 우리 모두가 잊지 말아야 할 과거이자 품고 해결해야 할 과제로서 광주를 생각해야 한다.

다시는 그 때 광주의 모습이 세상 어디에서도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하고, 그 때 광주의 사람들이 안고 있을 상상도 할 수 없고 가늠도 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함부로 대해서도 안 된다. 여전히 제 살 길 찾기에 급급하고, 국민과 시민을 먼저 생각해야 할 선거 출마자가 정치인이 되기 위한 명분을 무슨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것마냥 출사표의 앞머리에 내세우고 그런 사람이 결국 선거에 당선이 되는 세상,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는 변명을 늘어놓고 저 뒤로 숨은 채 주변 세력들이 조작해낸 불법행위로 떡 하니 윗자리를 차지한 정치인이 있는 세상, 수백명 어린 아이들이 희생된 참사에 오직 진상을 밝혀달라는 요구에도 감출 게 많아 뒤로 빼고 나 몰라라 하는 정치계 꼭대기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있는 세상. 그런 세상에 살고 있고 그런 세상이 되도록 선택을 한 세상이니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얼마나 많은 것인가. '훼손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무참히 무너지던 그 때보다 지금 나아진 건 무엇이란 말인가. 다시 그 때 광주의 모습이 재현되지 않으리라 안심할 수 있겠는가. 냉철함과 투철함으로 다시 마음을 다잡게 만든다.

 

 

<소년이 온다>를 준비하면서 작가는 두 달 동안 관련 자료만을 읽고, 다른 건 쓰지도 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그 작업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고 고백한다. 왜냐하면 꿈 속에 무장한 군대에 쫓기고 위협당하는 꿈을 꾸기도 하고 광주 시민의 다급한 도움 요청을 받아 얼른 해결하지 못한 채 발을 동동 구르는 악몽 때문이다. 온몸에 땀이 흐르고 눈물이 흐르고 몸이 덜덜 떨리는 체험을 한 후 작가는 관련 자료를 보는 작업을 멈췄다고 한다. 마음에 묵직하게 진동이 인다. 고작 이 소설을 읽고 잠든 잠자리에서도 나는 꺼림칙한 악몽을 꿨다. 뭔가에 쫓기고 눌리는 듯한 꿈. 하물며 그 과거의 사건과 사람에 바짝 다가서려던 작가의 심리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조금은 짐작이 간다.   

 

 

작가 한강은 군더더기 없이 사건 그 자체를 미화도 과장도 아닌 정확한 필체로 표현해내며 온 힘을 다해 죽은 영혼을 위무하는 듯 하다. 여섯 개의 장은 ''가 도청 상무관으로 들어오는 시민들의 시체를 수습하는 현장에 가게 된 이야기, 너가 찾아 헤매던 친구의 영이 뒤덮는 밤의 이야기, 그 때 광주를 겪어내고 여전히 서슬 퍼런 검열에 뺨을 얻어맞은 그녀가 ''의 이름을 부르는 이야기, 광주를 겪어내고 살아남았지만 그게 산다고 사는 게 아닌 형의 이야기, 처참한 고문으로 정신과 육체 모두가 피폐해졌으나 여전히 살아남은 누나의 이야기, 시간이 지나고도 ', 동호, 소년'인 아들을 잊지 못하고 한으로 품고 사는 어머니의 이야기로 펼쳐진다. 그 때 그 광주를, 영의 세계를, 끌려간 자들의 지옥보다 더한 고문의 순간을, 모든 게 지났지만 결코 끝을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작가는 각자 다르지만 어느 하나 어설프지 않게 조심스레 꾹꾹 눌러 표현해낸다.

 

 

<소년이 온다> 200페이지 남짓의 두껍지 않은 소설이다. 그러나 그 어떤 르포나 어떤 고백, 어떤 영상에서 다룬 것 이상으로 '훼손되어서는 안될 것들이 무참히 훼손되었던' 그 때와 아직 남은 그 흔적을 담는다. 단순히 그 순간의 고발이 아니라 그 때, 그 사람들을 결코 잊을 수 없도록, 잊지 말고 우리 시대에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일깨우기 위해서 그렇게 소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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