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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모와 이라이트 사이 어딘가

『태연한 인생』어둠 속에서도 노래할 수 있도록, 태연하게

『태연한 인생』은희경 (2012)

 

 

낯선 여인에게서 발견한 찰나의 매혹을 사랑이라 믿었던 남자, 그리고 그 남자가 말하는 사랑을 택하는 여자. 그러나 둘의 행복은 매혹에 빠졌던 찰나만큼이나 오래가지 않았다. 그리고 남자는 여전히 또 다른 매혹에 빠져 살고 여자는 매혹이 떠난 자리에서 자신이 구축한 삶의 이데올로기 틀 안에서 고독을 먹는다. 이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여자 류는 그런 부모의 감정적인 영향을 수용하며 자란 나무와 같다.

소설은 이런 '류의 서사'로 시작하지만 실상 몸체는 한때 류를 만났고 그 추억을 품고 사는 소설가 요셉의 이야기이다. 요셉은 제 멋에 사는 제 멋대로의 소설가인데 그 냉소적임과 속물 같음이 마치 홍상수 감독의 영화 속 강사 같다. 그런 요셉에게 앙심을 품은 과거의 조교이자 현재의 영화감독(지망생) 이안이 등장하며 이야기의 방향이 달라지는 듯 보인다. 첫 장에서부터 매혹시켰던 류의 서사는 언제쯤 다시 등장할지 궁금해지는 동시에 이안의 복수 '씨나리오'에 몰입하다 보면 이야기는 끝을 향해간다.

류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베일에 가린 채 요셉과 그 주변 이야기를 주로 하는 듯 하지만 그를 통해 류의 부모와 류의 삶을 연상하게 된다.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집을 떠나 지낸 시간이 많은 류의 아버지는 요셉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삶이 주는 매혹을 찾으러 다녔을 것 같고 류의 어머니는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는) 요셉의 와이프 또는 류의 모습이었을 거라 추측할 수 있다.

 

"천년 뒤에 태어날 모르는 사람을 위해 침향을 만드는 허무와 낙관의 스케일이 그때의 요셉에게는 욕망의 서사로 다가왔다. 가장 먼 것에 대한 욕망이야말로 가장 완벽하게 소유할 수 있는 욕망이었다."_p.255

 

한편 요셉의 이야기는 태연한 삶의 표본처럼 보인다. 남한테서 듣는 말이 싫어서 시계의 알람 기능까지도 쓰지 않는 이 남자는 패턴에 빠지는 삶을 거부한다는 기준이 있어선지 순간순간 자유롭게 생활을 선택한다. 그러므로 요셉은 다양한 패턴의 조각모음처럼 보이나 류의 삶처럼 흐름 속에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류의 서사'는 있으나 요셉에게는 그 서사가 허락되지 않고 오직 '테마'만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요셉과 류는 욕망의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요셉에게 류는 결국 '가장 먼 것에 대한 욕망'이 되고 가장 완벽하게 욕망으로서 존재하게 만든다.

 

소설의 열고 닫음을 담당하는 '류의 서사''노래'와 달리 중심을 가득 채우고 있는 요셉과 이안, 도경과 이채와 그 외 인물의 이야기는 각기 다른 패턴과 흐름 속에서 진전되지만 결국 그 모두의 이야기는 하나의 큰 덩어리 속에 있다. 마치 '다섯 말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종마, 암말, 시정마, 새끼말과 잡종 암말 중 어떤 말에 시점을 두느냐에 따라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지만 결국 말의 '교배소'에서 벌어지는 일로 틀을 규정할 수 있듯이 사람들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연하게 살아지는 삶'으로 이야기를 모을 수 있다.     

 

"살아오는 동안 류를 고통스럽게 했던 수많은 증오와 경멸과 피로와 욕망 속을 통과한 것은 어머니의 흐름에 몸을 실어서였지만 류가 고독을 견디도록 도와준 것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삶에 남아 있는 매혹이었다. 고독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적요로운 평화를 주었다. 애써 고독하지 않으려고 할 때의 고립감이 견디기 힘들 뿐이었다. 타인이란 영원히 오해하게 돼 있는 존재이지만 서로의 오해를 존중하는 순간 연민 안에서 연대할 수 있었다. 고독끼리의 친근과 오해의 연대 속에 류의 삶은 흘러갔다."_p.265

 

"'류의 서사' 부분 참 좋더라" 했던 게 벌써 한 달이다. 소설의 프롤로그격인 부분만 읽고 나서 이 책을 추천한 지인들에게 했던 말이었다. 그로부터 진척이 없다가 거의 한 달이 지나서야 다시 이 책을 집어 읽게 된 것은 내 마음이 태연해지기를 원해서였을까. 결과적으로 태연해졌는지는 모르겠으나 심정적으로 위안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일종의 연대감을 느꼈다고나 할까. 느닷없이 밀려든 어떤 감정에 의해 주체할 수 없도록 고독이 밀려오는 순간이 있었고 여느 때와 달리 그 고독을 다스리지 못해 주춤거렸던 현재였다. 소설을 읽은 감상은 최소한 고독이 나에게만 찾아온 몹쓸 것만은 아님과 그것을 타고 흐를 수 있는 자질이 내게도 있다는 것이다. 요셉과 류, 이안과 이채의 감정을 골고루 흐르며 공감을 할 만큼 심상이 너울거렸던 나는 최종적으로 '어둠 속에서 노래할 수 없었던' 요셉에서 '어둠 속에서도 노래할 수 있다'는 류의 감정의 배로 갈아탈 수 있음을 확인했고 그것이 지금 이 순간 내게는 견디는 힘이 될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