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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의 연기력은 8할이 감독의 역량


배우의 연기력은 8할이 감독의 역량에서 나온다





영화 <장수상회> 홍보 차 JTBC '뉴스룸'에 출연한 배우 윤여정씨 인터뷰 중에 인상적인 대목이 있었다. 손석희 앵커가 윤여정 배우의 연기가 좋았다는 얘기를 하자 '만약 그렇게 생각했다면 그건 감독이 잘해서 그런 것이다, 배우의 연기를 뽑아내는 것은 감독의 역량이다' 라고 말한 대목이었다. 이 말은 지나치게 감독을 칭송하는 것 아닌가 싶으면서도 이내 납득의 끄덕임을 불러오는 말이었다. 참으로 배우의 연기를 끌어내는 능력은 감독에게 꼭 필요한, 감독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자 능력이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나는 것이다.

 


연기라는 특기를 지닌 직업인으로 배우를 생각할 때 경력이 쌓이면서 노하우를 알고 경험을 통해 감정을 잘 표현해내면서 기능적인 발전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배우도 동시기의 어떤 작품에서는 참 인상적으로 보였는데 다른 작품에서는 실망을 안겨주기도 한다. 배우가 지닌 연기력이나 연기에 대한 생각이 갑자기 달라지지는 않았을 텐데 각각의 작품마다 다른 온도의 인상을 남기는 것도 결국 연기는 작품 그리고 연출의 힘이 좌우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증거가 되지 않을까. 적절한 캐릭터와 그것이 잘 담긴 시나리오, 영화의 플롯 등이 모두 어우러질 때에 명작이 되겠지만 배우의 연기가 특별하게 돋보이는 영화가 있다면 그것은 다른 작품보다 더 정확하게 배우의 기량을 뽑아낸 감독의 능력 덕이 아닐까.

 


       사진출처 : 그린나래미디어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greennarae.movie


가령 올해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마침내' 수상한 줄리앤 무어의 경우를 보자. 그녀가 오스카를 비롯한 수십 개의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게 한 <스틸 앨리스>가 가장 호평 받는 부분도 사실 그녀의 연기이다. 영화의 홍보를 위해 세계 3대 영화제로 칭해지는 칸, 베니스, 베를린에서 모두 주연상을 수상한 배우가 역대 5명 뿐이고 그 중 한 명이 줄리앤 무어라는 내용의 SNS 포스팅을 본 적이 있다. 그 포스팅에 담긴 다른 4명의 배우는 잭 레먼, 숀 펜, 이자벨 위뻬르, 줄리엣 비노쉬다. 이름만 들어도 연기력이 느껴지는 명배우들이다. 그렇다고 이 배우들이 출연한 모든 작품에서의 연기가 오스카, , 베를린, 베니스에서 상을 받아 마땅한 연기라고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명세기 누구라 한들 그들이 출연한 모든 영화에서 연기가 최고였다고 할 수 있겠나. 그렇다고 연기라는 특기를 지닌 직업인으로서 배우인 그 사람의 연기력 자체가 그 영화를 할 때 유독 떨어졌다고 할 수 있을까. 그 배우는 이 영화를 할 때나 저 영화를 할 때나 동일한 배우일 뿐이다. 그렇다면 각각의 영화에 따라 다른 인상을 남기는 배우의 연기의 비밀은 작품의 완성도를 이끌어내고 배우의 연기를 뽑아내는 감독의 연출력이 아닐까 생각된다. 유독 배우들을 연기상 후보에 잘 올리는 감독들이 있다. 최근엔 <파이터><실버라이닝 플레이북><아메리칸 허슬>을 연출한 데이비드 O. 러셀 감독이 예가 될 것 같다. 배우들과의 불화설로도 꽤 유명한 감독이지만 그가 최근 연출한 영화 속 배우들은 주/조연 가리지 않고 각종 영화제에서 연기상 후보로 지명됐다. 다른 것은 차치하더라도 배우의 연기력을 뽑아내는 감독으로서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진출처 : SBS <풍문으로 들었소>

요즘 가장 주목해서 보는 드라마 두 편이 있다. <풍문으로 들었소> <착하지 않은 여자들>. 두 작품 모두 뛰어난 연출과 개성 있는 극본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데 그 좋은 연출력과 극본을 직접적으로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모름지기 배우들이다. 등장하는 주/조연 캐릭터는 물론이고 단역 캐릭터까지 결코 버릴 게 없는 완벽한 구조를 만들어내는 안판석-정성주 콤비는 <풍문으로 들었소>에서도 연출과 극본 이상으로 배우들의 연기에 주목하게 만든다. 허세 가득한 상류층의 모습을 연기하는 유준상, 유호정의 연기는 발군이고 그들의 손과 발이 되어주는 비서진들의 연기 역시 어디 하나 빠질 수 없는 연기이다.



사진출처 : KBS <착하지 않은 여자들>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어떤가. 이미 정평이 나있는 배우 김혜자, 장미희, 채시라를 한 드라마에서 만날 수 있게 한 것부터 외면할 수 없는 조건을 만든 이 드라마는 이미 너무 익숙해졌을 수도 있는 이들의 연기를 전혀 지루한 맛이 없이 신선하고 재미있게 뽑아낸다. 12화에서 죽은 줄만 알았던 남편/아버지 이순재의 살아있는 모습을 맞닥뜨린 배우들의 연기는 보는 것만으로도 그 감정선에 감탄하게 만들었다. 특히 놀라움에 이어 만감이 교차하고 과거와 현재가 겹치며 눈 앞에 펼쳐진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부정하려는 듯 오열하는 김혜자 배우의 연기는 봉준호 감독의 <마더> 이후 오랜만에 그녀의 연기를 보면서 희열을 느끼게 해주었다. 놀라움으로 시작한 감정의 선을 분명 여러 번의 테이크로 나눠 찍었을 텐데도 전혀 흐트러짐 없이 표현해냈다.

유준상, 유호정, 김혜자, 채시라, 장미희 배우. 모두 연기 면에서 욕 듣는 연기를 하는 배우들은 아닐 정도로 오랜 경력과 감각으로 연기력을 갖춘 배우들이다. 하지만 유독 그들의 연기 그 자체가 사람들의 감탄을 이끌어내는 작품들이 있다. 그것은 오롯이 배우의 연기를 뽑아내는 작가의 힘이자 현장에서 연기 디렉팅을 하는 감독의 능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보는 관객이자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쾌감을 주는 연기력을 뽑아내는 감독의 능력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