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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얘네들 쟤네들 아닌 '우리들'



아이들 세계에서 벌어지는 매우 흔한 상황에 아이들의 심리, 감정을 풋풋한 연출력으로 잘 담아낸 작품이었다. 10대 초반, 그 유년에도 얼마나 많은 감정들이 관계 속에서 오고가는지 모르는 자 있겠는가.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나와 내 친구, 우리들의 10대를 끊임없이 떠올렸다. 

KMDB(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에 올라온 윤가은 감독의 칼럼은 <우리들>의 제작기를 담고 있다. 폭염 속에서 1억5천만원의 저예산으로 이 풋풋하면서도 마음에 여운을 남기는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섬세한 감성의 사람들이 모여서 진심을 다해 만들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글이다. 

그 글을 보면서 더욱 <우리들>이란 영화가 보고 싶었다만 사실 이 영화에 끌린 최초의 이유는 제목 때문이었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나를 끌어당겼던 제목이었다. 나, 너도 아니고 너네들, 쟤네들, 걔네들도 아닌 이 '우리들'이란 제목이 의미하는 것을 짐작해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의 메시지가 짐작이 된다고 해야 할까. 위의 저 칼럼까지 읽으면 '우리들'이란 제목에서 영화를 만든 사람의 감성까지 다 느껴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 10대 초반, 내 친구와 가끔 가서 구경했던 선물가게 이름이 '우리들'이었다는 점이 이 영화를 묘하게 나의 유년기와 연결지어 생각해보게 했다. 테디베어 캐릭터로 만든 상품도 많았던 '우리들'이란 선물가게, 감독은 그 선물가게의 존재를 알고 있을까? (그 세대는 아닌 것 같으니 전혀 모를 것 같기도 하다만) 





김밥이 먹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선이의 엄마가 김밥가게를 운영하시고 김밥 마는 장면이 자주 나오기 때문이다. 지아가 좋아하는 모양인지 선이가 엄마한테 오이김밥을 만들어달라는 장면도 나온다. 오이김밥은 오이맛으로 먹으라고 만들었겠지만 왜 좋아하는지 나로선 알 수 없는 부분이다. 공교롭게도 그 때부터 비뚤어 나가는 지아가 미워지고(원망스러워지고) 그런 지아에게 아무 말도 못하는 선이가 답답해지기 시작한다. 오이맛 김밥에 대한 나의 반감이 묘하게 영화 속 주인공들의 관계에 적용되는, 일종의 영화 속 오이김밥적 기능인지도 모르겠다. 




영화 잘 만들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좀 더 인상적일 수는 없었을까 싶기도 했던 것은 내가 너무 자극에 둔감해진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들>을 보다 보면 고현정 배우가 아이들을 완전히 통제해버리는 선생님으로 등장했던 드라마 <여왕의 교실>이나 린제이 로한, 레이첼 맥아담스 주연의 <퀸카로 살아남는 법>이 떠오른다. 왕따를 만들고 왕따를 견디는 그 서늘한 아이들의 상황을 묘사하는 면에서 그렇고, 그릇된 자존심의 표상이며 왕따 만들기의 온상이 되는 보라 일당의 행태는 나이만 어릴 뿐 <퀸카로 살아남는 법>의 레이첼 맥아담스 일당이 벌였던 행테와 다르지 않다. 이 두 작품을 떠올리다 보니 <우리들>에서 가령 말다툼 끝에 아이들이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우는 장면이 심심하다고 느꼈던 모양이다. 서로 따귀를 때리거나 김밥을 집어 얼굴에 던지는 설정이었다면 더 쾌감이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그런 생각을 하는 나를 깨닫고 살짝 놀랐다. 폭력적 설정에 익숙해져 둔감해진 내가 이 아이들 영화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스스로 상태에 대해 반성해봤다. 따귀를 때리지 않았어도 아이들의 마음엔 이미 생채기가 났음을 모르지 않으니 말이다. 



<우리들>을 보고 나면 선이의 동생 윤이 하는 한마디에 관객은 망치로 얻어맞은 듯 멍해지는 순간을 맞을 것이다. 너무 아무렇지 않은 것인데 목숨 걸고 자존심 세우며 서로에게 날을 세우는 우리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해법이 그 어린 아이의 말에서 나오니, 그 대사는 두고두고 회자가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