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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시장] 아버지 세대의 비극을 어디에 호소해야 하는가?

 

 

 

 

국제시장 Ode to my family

 

 

아버지 세대의 비극을 어디에 호소해야 하는가?

 

 

 

아버지는 골방에서 웁니다

 

아버지는 홀로 골방에 들어와 흐느껴 웁니다.
무뚝뚝하고 퉁명스럽고 고집스럽기만 했던 모습을 걷어내고
힘겨운 삶을 살아낸 고통과 슬픔과 서러움과 그리움,

그 한을 쏟아내려고 골방에 들어옵니다.

아버지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명, 아버지의 아버지입니다.
아버지의 자식도 장성해 역시 아버지가 됐지만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는 건 오직 아버지의 아버지 뿐,

자식은 아버지라도 자식일 뿐입니다.

피난길에 아버지와 했던 굳은 약속을 품고 살았던 60여년,
생과 사를 오가며 희노애락이 교차됐던 그 시간들을 생각하며 아버지는 웁니다.

 

 

 

 

 

윤제균 감독의 <국제시장>.

영화를 다 보고나서 딱 떠오른 문장이 '아버지는 골방에서 혼자 웁니다.'였다.
그래서 끄적거려본 글로 감상을 시작했다.


한국 전쟁, 파독 광부, 베트남 전쟁, 이산가족 찾기 그리고 개발의 시대.
영화는 굵직한 한국현대사의 사건들 속에 덕수(황정민)와 그의 가족, 지인들을 끼워넣어 굴곡진 때를 힘겹게 살아낸 세대를 향한 송가를 만들어냈다. 영화의 영문 제목도 Ode to my family(내 가족에게 바치는 송가)로 표기되어 있다.

전쟁과 가난, 억압과 강요의 시대를 힘겹게 살아온 세대에 대한 존경과 이해는 분명히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시대를 살아온 것에 대한 분노와 한을 갖고 비난해야 하는 대상과 해소하는 방법은 제대로 제시되어야 한다. <국제시장>의 의도는 그 세대를 살아낸 어른들에 대한 존경과 이해를 표하는 것이었겠지만 영화에 담아낸 방법과 방향은 적합하다고 동의하기 어렵다. 최소한 영화 속 그 세대의 대립각 또는 적 처럼 지금의 젊은 세대를 묘사한 대목은 잔인하리만치 끔찍한 관점으로 보였다. 그것이 <국제시장>을 윤제균 감독 영화 중 최악이자 현 시점에 나온 가장 부적합한 작품으로 보게 만든다.

 

 

 

 

 

 

자신을 위한 인생을 살 수 없었고 가족을 위해 희생해야만 했던 세대에 대한 애처로움과 꿋꿋하게 살아온 의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늘 갖고 살지만 그것이 그 세대의 모든 것을 온전히 수용하게 하지는 않는다. 그 세대가 현 세대와 소통하지 못해 문제가 되는 경우를 무시하지 못하겠다.
영화는 그런 걸 따져묻는 걸 통제하고 온전히 그 시대를 힘겹게 거치며 살아온 비극적인 주인공을 내세워 대놓고 눈물샘을 자극하려 든다. 이병우 음악감독의 음악은 자체로는 무척 좋았지만 영화 안에선 감정을 이끌려고 과도하게 쓰인 인상을 남겼다. 


고통받는 비련의 주인공은 관객의 마음 또한 울리기 쉽다. 하지만 단순히 비련의 주인공이어서가 아니라 그 시대에 대한 공감이 있어야 하고 영화가 그 공감을 설득력 있게 이끌어내야만 완성도가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국제시장>은 보여주는 그 시대에 대한 깊은 공감을 이끌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영화가 다루는, 덕수가 거치는 그 굵직한 시대의 사건들을 모두 알고 있고 이산가족 찾기부터는 생생하게 겪은 세대이기에 그 기억은 또렷하게 남아있다. 그런데 영화는 그런 향수를 자극할만한 소재를 잔뜩 끌어왔음에도 강력하게 활용하지는 못한다. 익히 알고 있는 내용 그 이상을 다루거나 보여주지 못하고, 그런 사건 속에 처한 주인공의 상황 또한 새로울 것이 없다. 

흥남부두 시퀀스에서부터 인물을 극단적 비극의 상황으로 너무 안이하게 몰아부치려는 작위적 장치가 거슬린다. 강제규 감독의 <마이 웨이>를 보면서 준식(장동건)이 일제의 계략으로 마라톤의 승리를 빼앗기고 강제 징집되는 처음부터 작위적인 설정이 거슬려 내내 몰입하기 어렵게 만들었던 악몽이 <국제시장>을 보면서 다시금 떠올랐다. 처음 거슬린 장치는 이후 모든 설정을 소화할 수 없게 만들었다. 충분히 가능성 있는 소재와 배우, 스텝, 예산을 끌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인물과 상황을 드라마틱하게 뽑아내는 데 심혈을 기울인 결과물로서 이 시나리오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 이 시나리오가 얼마나 공들여 만들어졌는지 확신하기 어렵다.

 

 

 

 


영화를 보고 눈물 흘리는 것에 인색하지 않은, 오히려 눈물에 헤픈 관객임에도 이 영화를 보고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아주 살짝 눈가가 촉촉해지기는 했지만 울컥 올라오는 순간은 의외로 없었다. 그래도 극장 곳곳에서 훌쩍훌쩍 우는 소리가 계속 들리긴 했다. 영화가 표현하는 시대의 초상에 대한 공감과 수용에 따라 영화에 대한 호불호, 흘리는 눈물의 양에 갈림이 있지 않을까 싶다.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주인공 덕수의 삶이 흐르면서 만나게 되는 정주영, 앙드레 김, 남진, 이만기 등의 묘사와 오프닝과 클로징에 날아오르는 무언가 등 '한국의 포레스트 검프'라고 불릴 수 있는 요소는 충분하다. 하지만 그건 이 영화의 거죽만 봐도 붙일 수 있는 표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진정한 한국의 <포레스트 검프>라고 불릴 만큼의 깊이는 부족하다 하고 싶다.
좋은 소재, 관객을 울릴 수 있는 최루탄을 분명 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제대로 터뜨리지 못한 느낌이다.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겉만 훑은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물론 좋았던 점도 분명히 있다. 윤제균 특유의 유치하지만 효과적인 유머 코드와 '애국심'을 강요받은 시대의 모습에 대한 풍자, 김윤진 배우의 감정연기와 황정민 배우의 에너지는 좋았다. 막순이 성인 역할을 한 배우의 연기는 실제인 것처럼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본 윤제균 감독의 영화( <두사부일체><색즉시공><해운대><국제시장>) 중에서 감정적인 울림이 가장 약했다. 그런 면에서 가장 기대했던 작품이었음에도 말이다.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에 인물을 끼워넣고 그것도 비극적인 사건에 휘말리게 하느라 작위적인 인상을 지울 수 없었던 것이 문제였던 것 같다.

무엇보다 이전 세대에 대한 이해와 공감, 존중을 표현하려 했음에도 이전 세대에게 강요와 억압의 삶을 제공했던 국가와 권력에 대한 저항체로서 그 세대의 모습을 보여주기는 커녕 오히려 그 세대를 이해하지 못하고 매순간 반대편에서 대립하는 축으로 현재의 젊은 세대를 세움으로써 이전 세대에 대한 적으로 지금의 젊은 세대를 묘사한 것에는 강한 반감이 들게 만들었다. 길에서 부딪히고 싸움하고 가게를 팔라고 강요하고 자식들을 부모에게 맡기고 가족여행을 떠나는 몰지각하고 파렴치한 모습으로 젊은 세대와 자녀 세대를 묘사한 이 작품이 어느 면에서 균형이 잡힌 시각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 힘겨운 시대를 살아온 분들은 지금의 젊은 세대들도 그런 힘겨운 시대를 겪지 않도록 가르치고 돕는 것으로 좋은 유산을 대물림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영화는 덕수로 대표되는 이전 세대의 캐릭터를 '우린 이렇게 힘겹게 살아왔는데 너희 젊은이들이 뭘 아느냐?'고 따져묻는 인물로 담아냈다. 이해와 공감이 아닌 원망의 시선을 서로에게 드리우도록, 원망과 비판의 대상인 국가와 권력은 저 쪽에 있는데 그 대상을 엄한 방향으로 설정하도록 물을 흐리는 모양세다. 영화를 정치적, 사회적 측면에서 보느냐 가족적, 인간적 측면에서 보느냐에 따른 차이를 모두 떠나 이 영화에 묘사된 모습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오해와 왜곡이 가능하지 않을까.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아니, 영화는 많은 부분 영화 속 설정을 현실로 일반화 해 가져오게 하는 마력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히 경계해야 할 것이기도 하다. 

 
얼마전 <인터스텔라>를 보고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도킹하는 감동'이라는 표현을 썼었는데 <국제시장>은 '가슴으로 도킹하고 싶은데 머리로만 이해되는 시대의 초상'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정작 마음을 울리는 요소를 지녔을 거라고 예상한 것은 <인터스텔라>가 아니라 <국제시장>이었는데 관람 결과는 예상과는 완전히 빗나가버렸다.

 

 

 

 

 

 

* 올겨울 한국영화 최고 흥행 기대작 중 한 편으로 <명량>을 성공시킨 CJ엔터테인먼트의 겨울 시즌 힘이 대규모로 실릴 이 작품이 과연 어떤 흥행성적을 올릴 지 궁금하다. 이건 영화의 감상과는 별개의 문제인 것 같다. 흥행이란 그렇게 모르는 법이니까.

 

*황정민 배우의 식스팩 복근은 C.G.의 힘을 빌린 거라고 영화 정보 프로그램에서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