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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BIFF2012] 부산에서 만난 영화 1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10월 4일부터 13일까지 열렸다. 올해는 두 번의 주말을 포함하여 행사가 진행되어 더 많은 관객들이 영화제를 즐길 수 있었을 것 같다.

숨가쁜 예매 전쟁과 숙소 확보, 교통편 마련에 끼니마다 먹을 것을 고민했던, 그러나 영화와 바다, 좋은 사람들과 즐거웠던 5일간의 영화 여행이었다.

10월 5일 <베이징 양아치>를 시작으로 5일간 부산에 머무르며 총 15편의 영화를 관람했다. 간략한 감상과 함께 만족 지수를 표기하는 것으로 17회 BIFF를 정리하고자 한다. ( )의 숫자는 10점 만점을 기준으로 표기한 만족 지수.

 

 

<정원사>(The Gardener) / 모흐센 마흐말바프 / 갈라프리젠테이션-월드프리미어

 

 

종교란 무엇인가. 종교의 자유는 지켜져야 하는가. 종교는 인간을 위한 것인가, 신을 위한 것인가.

종교는 종교로서 순수함과 정결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종교를 어떤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입장을 강요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종교를 사용하는 것을 신은 분명 원하지 않을 것이다.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은 '문화와 사상이 변해야 사회가 달라진다'는 것을 실천할 수 있는 수단으로 영화를 찍고 있다. 이번에는 170여년 전 이란에서 시작된 종교인 '바하이'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방식은 그의 아들과 함께 그 종교의 단점과 장점을 각각 나눠서 촬영하도록 하는 것으로 정한다. 두 개의 카메라는 두 사람의 생각을 담아내고 그 영상물은 둘의 대화 즉 소통을 이끈다. 평화와 후세에 좋은 것을 남기자는 신념을 지닌 바하이교는는 이란에서 탄압을 받는다. 다른 것이 탄압받는 억압의 시대에 그는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이고, 카메라를 통한 소통은 그의 의지대로 문화와 사상을 바꿔나갈 수 있을 것이다.

영화를 만드는 행위와 그 형식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 의지가 있다면 카메라를 들고 나가 찍으라고 고래고래 외쳤던 누군가의 말처럼 의지가 있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카메라를 들고 나가 찍어 만들 수 있는 게 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세상엔 영화 찍는 형식의 구애는 없고 그것을 틀 수 있는 영화제는 (어쩌면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 (7/10)

 

 

<유령>(Apparition) / 빈센트 산도발 / 뉴 커런츠-인터내셔널 프리미어

 

 

1971년, 필리핀은 마르코스 대통령의 독재정치가 극에 달한 시점이다. 산 속에 위치한 수녀원은 외부 사회로부터 완전하게 차단된 수녀원이다. 이 곳에 루르데스 수녀가 들어오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충격적이고 강렬하다.

영화의 제목인 '유령'이 암시하는 것은 복합적이다. 유령을 봤을 때 너무 놀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몸이 경직된 채로 멈춰버리는 상태는 예상치 못한 무엇인가를 맞닥뜨렸을 때 몸이 굳어버리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영화 속 수녀의 입장에서는 성모나 예수와 같은 신성한 존재를 영접했을 때 마치 '유령'을 만난 순간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몸이 굳어버릴 것이다. 커다란 힘이 휘두르는 기운에 압도당해서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 또한 유령을 만난 것과 같은 상태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사회악에 저항하지 못하고 움츠린 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을 '유령'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독재정치에 항거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소리없이 끌려가고 사라지는 세상을 외면한 채 '신에게 기도할 것'만을 강요하며 침묵하던 수녀원. 그러던 중 수녀 루르데스가 수녀원 밖 숲에서 강간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그 밤에 숲 속에 있었던 사람들의 모습이 하나하나 밝혀지는 영화의 끝은 사회악에 저항하지도 않고 저항하는 자들도 외면하는 사람들을 모두 유령같은 존재라고 말하는 듯 하다.  사회의 축소판으로서 수녀원을 그려낸 의미있는 수작이다. (8/10)

 

 

<무게>(The Weight) / 전규환 / 한국영화의 오늘

 

 

'나는 내 몸에 불만이 있다.' 올해 부산에서 유일하게 만난 한국영화 <무게>를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말일 것이다.

몸에 대한 불만의 무게는 어느 정도일까. 단순히 얼굴 어느 구석이 마음에 들지 않아 성형을 고민하는 수준의 불만이 아니라 장애로서의 몸에 대한 불만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장애는 신체적인 장애에서 오는 것 뿐만 아니라 살아가고 싶은 지향점 안에서 장애가 되는 몸의 모든 생김에서 나오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모두 불만의 대상이다. 없었으면 하는 것은 있고 있었으면 하는 것은 없다. 그 불만의 해소를 위해 꿈을 꿀 수는 있으나 삶은 꿈꾸고 있을 만큼 녹록치 않다. 몸에 대한 불만과 그 불만이 해결점을 찾는 길은 영화 속에서 거침없이 표출된다. 그것은 아주  적나라하기도 하고 매우 아름답기도 하다. 이 적나라함이 무사히 대중에게 전달되기를 바란다. (8/10)

 

 

<흔적>(Chiri/Trace) / 가와세 나오미 / 와이드앵글

 

 

 

영화는 어려서부터 할머니 손에서 자란 가와세 나오미 감독이 돌아가신 할머니와 나눴던 시절에 대한 기록이자 할머니에 대한 고백이다. 영화의 처음 벗은 할머니의 몸을 비추는 카메라에 '나도 할머니 젖을 먹고 자랐나요?'라고 묻는 장면부터 나는 영화를 본 것인지 개인적 회상에 빠진 것인지 헛갈린다. 차분하게 깔리는 감독의 내레이션과 투박하게 때론 찬란하게 화면에 담긴 기록들은 어느새 개인의 기억을 헤집게 만들었다. 45분 동안 나의 할머니를 생각하게 만든 영화였다. (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