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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차이나타운] 내 모든 걸 버리더라도 지키고 싶은 빛

 

 

 

‘차이나타운’은 그간 너무나 익숙하게 남성의 땀내로 범벅이 됐던 누아르에 남성 대신 여성을 배치하며 강한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대부’의 말론 브란도가 그랬던 것처럼 실제로 등장하는 장면의 시간이 길지도 않고 현란한 액션을 보여주는 것도 아님에도 극 전반을 휘어잡고, 대사도 몇 마디 안 되는데 대부분의 명대사가 그녀의 입을 통해 나온다는 점에서 ‘엄마’를 연기한 배우 김혜수가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좋은 배우라는 믿음을 쌓아가고 있는 김고은은 물론이고 엄태구, 조현철, 고경표 등 독립영화에서 만날 수 있었던 젊은 배우들의 연기를 포용하는 미술과 조명, 촬영이 만든 미장센만으로도 느와르임을 증명한다.

보통 누아르에 등장해 남성을 파멸로 이끄는 신비로운 여성 캐릭터를 ‘팜므 파탈’이라 일컫는다. 파멸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껏 유지하던 삶에 파문을 일으키며 모든 걸 버리고 변화를 일으키게 만드는 캐릭터 말이다.


 

 

 

 

차이나타운’은 테스토스테론 대신 에스트로겐을 배치한 누아르답게 ‘팜므 파탈’의 자리 또한 ‘옴므 파탈’로 대체했다. 박보검이 연기한 ‘석현’이라는 캐릭터가 바로 그것이다. 사채업자로 맞닥뜨린 일영(김고은)을 마치 반가운 손님 대하듯 하고 일영이 경험한 적 없는 평온한 삶의 모습을 선보이는 이 환환 미소의 캐릭터는 얼굴에 난 상처에 연고를 바르는 터치 하나로 일영의 삶을 뒤흔든다.

차이나타운’이 관객에게 보여주는 그 모든 비극의 연쇄는 석현으로 인한 일영의 변화에서 비롯된다.

그런 면에서 ‘차이나타운’은 선우(이병헌)를 통째로 흔들리게 했던 보스의 연인 희수(신민아)가 등장했던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과 더욱 비교할만한 작품이다. 어쩌면 석현이 희수보다 더 확실히 주인공을 흔드는 순수함을 지닌 치명적인 캐릭터가 아닐까.

 

 

석현 캐릭터를 두고 혹자는 ‘생불(生佛)’이라고 일컬을 만큼 현실에 존재하기 힘든 캐릭터로 보이지만, 그만큼 일영의 삶에 파장을 일으키는 것을 영화적으로 납득하게 만든다. 빛 세계에서 온 듯한 석현의 낙천적이고 환한 미소를 볼 때마다 관객의 마음도 치유의 언덕을 만난 냥 평온해졌다면 그만큼 관객이 일영의 변화에 공감을 하게 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저 묘하게 존재했다 사라졌던 ‘달콤한 인생’의 희수보다는 주인공과 확연히 대비되는 방점을 찍은 ‘차이나타운’의 석현이 한 수 위가 아닐까. 삶에 지쳐 위로가 필요한 관객, 특히 여성이라면 일영에게도 그 모든 걸 버리더라도 지키고 싶게 만든 빛을 만나러 극장에 가도 본전은 뽑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