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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나답게, 나로 사는 충만한 삶

 

또 다른 나를 만나고 싶었다. 그 다른 나는 어떻게 살았을지 확인하고 힘을 얻고 싶었다. 72억 지구인 중에 나처럼 사는 사람이 한둘 있어도 되는 것 아니냐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살아가는 방식에 불안함이 없을 수 없다.

한마디로 아직 덜 된 것이다. 그래서 참고할 만한 삶을 산 사람의 이야기를 훔쳐보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비비안 마이어라는 인물의 삶을 추적하는 이 다큐멘터리를 보러 극장에 들어가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그것이다.

시작은 경쾌했다. 작업 중인 책에 쓸 옛 사진 자료를 찾던 중 경매에서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이 담긴 네거티브 필름을 380달러에 사들였다는 존 말루프의 이야기가 방정맞은 인터넷 강의 강사의 말투처럼 지나가고 주루룩 화면에 쏟아져 나오는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들은 짧은 탄성이 터져 나오게 할 만큼 압도적으로 아름다웠다.

 

도대체 이 사진을 찍은 사람은 누구이며, 왜 이런 사진을 찍었으면서도 명성을 얻지 못했는가를 파헤치는 감독의 여정에 저절로 동참하고 싶게 만들었다.

늘 롤라이플렉스 카메라를 목에 걸고 어떠한 순간에도 사진 찍는 것보다 우선시 되는 것은 없었던 여인, 자신의 이름과 출신조차 밝히지 않고 늘 자물쇠 잠근 방처럼 단단하게 자신을 감췄던 여인의 형상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낸다.

유모로, 간병인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일을 하면서 늘 사진 찍는 일을 쉬지 않았던 그녀. 유모라는 직업 때문인지 ‘내니 맥피’나 ‘메리 포핀스’의 모습까지 상상하게 만드는 증언들이 갖은 사물들을 병적으로 수집하고 자신이 맡았던 아이를 학대했다는 증언으로까지 이어지면서 그녀에 대한 판도라의 상자까지 열어버리는 게 아닌가 싶은 불안한 마음까지 들게 했다. 폐쇄적인 삶의 끝에 홀로 남은 말년은 쓸쓸해 보이기도 했다.

결국 비비안 마이어 본인을 통해 들을 수는 없기에 그녀가 왜 이토록 사진을 찍었는지, 왜 좀 더 적극적으로 이런 사진들을 세상에 선보이기 위해 힘쓰지 않았는지 명확하게 알 수는 없었다.

 

 

 

그녀의 본의를 알 도리가 없는 마당에 마치 마땅히 공개되어야 할 보물이 숨겨졌다는 것이 크나큰 오류이기라도 한 냥 그녀의 사진을 활발하게 세상에 공개하고 있는 감독의 방식이 비비안 마이어가 진정 원했던 방식인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분명한 것은 카메라로 세상과 사람들의 순간을 포착하고 담아냈던 것이 비비안 마이어 스스로 그녀답게 살 수 있는 하나의 방식이었다고 짐작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진을 찍는 일로 유명해지거나 돈을 벌려는 것이 아니라 생업은 따로 두고 늘 제 방식대로 즐길 수 있는 상태로 사진 찍는 행위를 둔 것은 살아있는 동안 그녀의 삶을 충만하게 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바로 그 점이 이 영화를 통해 내가 보고 싶었던 또 다른 나의 모습이기도 했다.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지 않더라도 늘 편안하게 제 방식대로 즐길 수 있는 상태에 두는 것, 무엇보다도 내가 하는 모든 것을 꼭 공유해야만 할 것 같은 압박이 없는 상태에서 오롯이 즐길 수 있는 상태로 두는 삶도 가능하다는 증거를 만날 수 있었다.

나를 나로 만드는, 나답게 살게 만드는 그 무엇을 갖고 있는 삶은 충만할 것이다. 그것이 직업이어도 좋겠지만 직업이 아니어서 더 충만할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삶을 충만하게 만드는 그 무엇, 여러분 곁에는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