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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제인 에어] 어둠 속에 울리는 사랑의 소리를 받아들이는 제인 에어


제인 에어(미아 와시코브스카)는 부모를 잃고 숙모와 사촌오빠에게 구박을 당하며 산다. 가혹하고 잔인하게 제인을 구박하던 숙모는 그녀를 엄격하게 학생들을 통제하는 기숙학교로 보내버리고 그 곳에서의 생활도  제인에게는 시련의 나날이다. 그렇게 18살이 되어 기숙학교를 나와 손필드 저택에 가정교사로 들어가게 되는 제인 에어. 그리고 그녀는 까칠한 그 집의 주인 로체스터(마이클 패스밴더)와 사랑에 빠진다. 어렵게 마음을 열고 결혼식을 하게 된 날, 그 결혼을 반대하는 하객이 서신을 들고 찾아온다. 로체스터는 이미 15년 전에 혼인을 한 유부남이었던 것이다. 충격에 휩싸인 제인은 비통한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로체스터 가에서 몰래 도망쳐 나온다. 제인 에어의 시련은 언제쯤 멈출 수 있을까. 그녀의 상처받고 얼어붙은 마음을 녹일 사랑을 그녀는 만날 수 있을까?

 

영화 <제인 에어>는 한 소녀의 영혼이 어둠과 그늘 속에서 빛이 있는 곳으로 나오는 이야기다. 특별히 잘못하는 게 없음에도 괴롭힘 당하고 가혹한 벌을 받으며 자라야만 했던 어린 시절은 그녀의 마음 속에 그늘을 드리웠다. 선하고 정의로운 천성과 지성을 통해 그 그늘을 억누르려고 하지만 소녀의 무표정 속에 그 그늘이 드러난다. 그녀의 자존감은 완벽한 행복의 기회를 만날 수 있을 때까지 그녀의 마음을 가두는 것, 마치 그녀의 드레스 안에서 몸을 조이고 있는 코르셋과도 같다. 특히 사랑이 찾아오는 순간에 대해 그녀는 더욱 더 조심스럽다. 마음을 열기까지 조심스레 하나하나 살핀다.

그러던 그녀가 마음을 열었던 로체스터의 비밀을 알고 다시 한 번 받은 상처는 그녀에게 살아야 할 의지를 빼앗았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거기에 있었다. 로체스터의 비밀이 밝혀지자 제인은 다시 마음을 닫아버린다. 로체스터에게 변명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건 제인 스스로 다시 상처받는 걸 두려워하고 현실을 도피하려는 모습으로 보인다. 그러나 <제인 에어>는 그런 그늘 속에 살았던 제인이 빛으로 나오는 이야기이다. 로체스터를 떠나 생사의 갈림길에 있던 그녀를 도와준 선교사 존 리버스(제이미 벨). 그녀는 그의 도움으로 다시 한 번 안정된 삶을 살아가기 시작하지만 마음 속에 들리는 로체스터의 목소리는 떨치지 못한다. 그리고 존으로부터 프로포즈를 받고 고민을 하는 시간, 그녀는 비로소 마음의 그늘이 만들어놓은 두려움이 그녀가 빛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걸 막았다는 걸 깨닫는다. 그녀를 부르는 소리, 그 마음 속에서 울리는 소리를 믿지 못하고 억누르려던 그녀는 그제서야 깨닫는다. 그녀의 불행은 그녀의 문제도 아니었고, 환경의 문제도 아니었다는 것을 말이다. 사랑과 행복은 그녀의 마음이 가는 곳, 그 깊은 곳에서 들리는 소리를 따르고 선택하고 움직였을 때 온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 그녀는 그 마음의 소리를 찾아갈 수 있는 성숙함과 자유가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이 영화의 절반은 어둠 속을 헤맨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기도 없이 촛불로 어둠을 밝힐 수 밖에 없는 시대,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미친 여자의 울부짖음은 어쩌면 제인 에어의 마음 속 그늘에서 나오는 소리와도 같다. 영화는 제인의 마음이 서서히 열리는 순간, 그녀가 행복을 받아들이는 순간에 환한 봄볕과도 같은 정원을 보여주고 그녀가 마음의 상처를 안고 행복을 경계할 때   줄곧 어둠 속에 있다. 이 어두움과 밝음의 대비를 통해 영화는 효과적으로 제인 에어의 심리를 묘사한다.

사실 <오만과 편견>같은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의 분위기를 예상하고 영화를 보게 됐었다. 영화 속 봄볕은 충분히 비교가 가능한 부분이다. 하지만 영화는 어둠을 보여줄 때 그 차이점을 명확히 드러낸다. 실내의 어두운 장면, 비바람이 몰아치는 손필드의 풍경, 제인에게 들리는 로체스터의 환청은 당장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폭풍의 언덕>을 떠올리게 한다. <폭풍의 언덕>이 그러했듯 에밀리 브론테의 언니인 샬롯 브론테의 소설 <제인 에어> 또한 진실을 알 수 없을 것 같은 정체를 지닌 어쩌면 나쁜 남자가 등장하고 그 어두운 미궁 속에서 진정한 사랑을 표현하는 작품이다. 그런 면에서 브론테 자매의 작품들이 제인 오스틴의 작품과 분명한 차이가 있음을 느낄 수 있다.

 


2011년에 찾아온 <제인 에어>는 플래시백을 통해 제인 에어의 어린 시절과 손필드가에서 있었던 일들을 보여준다. 영화의 시작은 로체스터로부터 도망치듯 벗어나는 제인 에어의 모습이다. 그 장면에서 시작된 관객의 의문 는 플래시백으로 이어지는 답변을 만나게 된다. 제인은 그녀의 마음 속 그늘이 드리운 두려움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것이라는 답이 그것이고, 이야기의 중반 이후의 시점에서 시작하여 플래시백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법은 관객으로 하여금 제인 에어의 심리를 훨씬 잘 이해하도록 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결국 이 이야기의 포인트가 그 그늘을 벗어나 빛이 있는 곳으로 나오게 되는 제인 에어의 선택에 있다는 것임을 표현할 수 있는 효과적인 각색이었다고 생각된다.

 

제인 에어를 연기한 미아 와시코브스카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로체스터로부터 도망쳐나오면서 비를 맞는 장면을 찍으며 그녀는 저체온증을 경험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만큼 촬영 당시의 컨디션은 제인 에어를 둘러싼 상황처럼 혹독했다고 한다. 그 상처투성이 소녀를 연기하며 웃음 한 번 보이지 않은 미아 와시코브스카. 그녀의 모습은 2세기가 지난 후에 또 만나게 된 제인 에어를 좀 더 새롭게, 더 깊이 관객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모습이었다고 생각한다. <오만과 편견>을 키이라 나이틀리의 봄볕처럼 환한 미소로 기억한다면, <제인 에어>는 미아 와시코브스카의 어둠 속 촛불 같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기억하게 될 것 같다. 결국 그녀의 그 무뚝뚝함도 마지막에 빛으로 나오면서 다 풀어지는 게 사실이긴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