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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드라마의 재탕만을 기대하고 본 건 아니었기 때문에 아쉬움이 남는다.

 


의사 남편, 삼수생 아들, 직장인 딸,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주부 인희(배종옥). 어쩌면 평범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법한 그녀의 삶에 자궁암이라는 병이 찾아온다. 그것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상한 말기 상태로 수술도 못하고 곧 세상을 떠냐야 한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 앞에 어쩌면 제일 덤덤한 척 하는 건 예상했던 대로 그녀 자신이다. 몸이 아파 피를 토하면서도 실직한 남편과 아직 어리기만 한 아들, 유부남과 연애하는 딸,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 도박에 빠진 동생을 먼저 걱정하고 그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해줄 것들을 정리해가며 삶을 마무리할 준비를 한다.

 

영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하 <세아이>)은 이미 1996년 특집극으로 방영이 되었던 드라마를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당시 시청자들의 요청으로 재방송까지 될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고 작가 노희경을 세상에 알렸던 드라마였다. 원작이 된 드라마에 대한 인상이 여전히 좋게 남아있고 신뢰가 가는 감독과 배우들이 모였기 때문에 영화로 다시 찾아온 <세아이>에 대한 기대치는 높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결과를 먼저 얘기하자면, 영화는 그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1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매체가 TV에서 영화로 옮겨왔을 때 좀 더 새로운, 15년 전 드라마 그 이상을 기대하는 것이 무리였을까.

    

 


원작이 있는 유명한 작품을 리메이크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생각을 바꿔 각색을 가하고 재해석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창작자로서 누릴 수 있는 자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부분이 예술가들을 자극하는 요소이기도 할 것이다. 똑같이 만들어놓는다면 리메이크의 의미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조금 막막하기도 하다. 그런 부분에서 영화 <세아이>는 아쉽다. 원작 드라마를 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고 해도 이 영화가 어떤 이야기를 할지는 쉽게 예상이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좀 더 각색의 묘미를 살렸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원작이 나왔던 96년으로부터 15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만큼 캐릭터가 처한 상황이 달라졌을 수 있고 그 환경이 달라졌을 수 있었을 터인데, 관객으로서 원작과의 차이를 잘 못 느끼겠다. 가뜩이나 이야기도 예상 가능한데 정확히 예상했던 범위 안에서만 영화가 진행되니까 사이사이 지루하기도 했다.

 

영화의 오프닝은 참신했다. 색이 고운 꽃잎을 말려서 그것을 컵에 수놓는 모습은 아름답다. 쉽게 저 작업이 극중 인희(배종옥)의 취미 또는 직업이라고 예상하게 된다. 노희경 작가의 또 다른 드라마 <꽃보다 아름다워>도 떠올려지고 어머니와 꽃을 연결한 감동적인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도 하게 된다. 그런데 그 후 영화는 이 어머니의 취미를 홀대한다. 꽃 장식된 컵을 아들이 싫어하는 장면이나 말린 꽃잎을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훼손한 장면 등이 나오고 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인희의 모습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오프닝 장면에서 나왔던 아름다운 작업이 영화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인희의 캐릭터를 더욱 풍요롭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하지는 못한다. 새로 지은 집에 인희가 만든 꽃 장식품들을 넣어둔 장이 나오는 장면도 확실하게 보여주지 않고 지나친다. 남편이 당신은 왜 그렇게 꽃을 좋아하냐고 물었을 때 인희는 그렇게 말한다. 자기는 꽃을 하나도 몰랐는데 어머니가 좋아하셔서 그렇게 됐노라고. 그렇다면 치매 걸린 시어머니와의 에피소드 중에 꽃 장식품을 만드는 설정이나 그 작업을 하면서 시어머니와 인희 사이의 이야기를 좀 더 끄집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본다. 그러나 영화는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섬세함이 강점이라고 생각했던 민규동 감독의 영화에서 이런 요소를 섬세하게 다뤄주지 않았다는 것도 조금은 실망스러운 부분이다.

반대로 드라마의 설정을 살짝 바꾼 부분도 있는데 그 장면마저도 드라마보다 강렬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인희가 수술 후 화장실에서 피를 토하는 장면이 있다. 드라마에선 아들 정수가 이런 엄마를 먼저 발견하게 되고 그로 인해 철 없는 아들이 엄마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하는 계기를 부여한다. 그런데 영화에선 그 아들의 역할을 남편이 대신한다. 남편은 가족 중 인희의 상태를 가장 먼저, 가장 잘 알게 된 후인데 굳이 한 번 더 남편을 그런 상황에 처하게 한다는 게 과연 더 나은 선택이었는지 모르겠다.

아들과 딸의 캐릭터도 한마디로 철 없음을 강조하는 장면이 늘었을 뿐 큰 매력이 없다. 드라마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은 설정과 효과적이지 못한 변형 사이에서 지루하게 흐르는 것을 염려하고 넣은 장치가 남동생 부부의 설정으로 보인다. 도박에 빠지고 룸살롱에서 사는 남동생(유준상)과 억척스런 올케(서영희)의 에피소드들이 격하게 묘사되어있고 그나마 웃음을 주는 요소였을텐데 그것도 영화 속에 자연스레 녹아들지 않는다. 서영희가 연기한 캐릭터가 병원에서 환자들을 모아놓고 남편의 룸살롱 사건을 설명하면서 환자들을 웃기는 장면 등도 좀 과하다 싶다. 둘이 소위 육탄전을 벌이며 주고받는 대사는 잘 안 들리기까지 한다.

원작으로부터 15년이 흘렀지만 변화가 없는 것이 우리가 사는 보통 가족의 풍경일까. 영화는 정말 드라마의 설정으로부터 관객을 설득할만한 효과적인 변화를 전혀 가하지 않는다.

이런 요소들 때문에 영화는 아쉽게도 관객의 집중력을 흐트러지게 하고 지루한 느낌마저 준다.


 

 

이 영화를 보고 눈물을 참기는 어렵다.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드라마만큼 확실히 존재한다.  근래 들어 관객이 흐느끼는 소리를 이렇게 정확하게 들었던 영화는 드물었던 것 같다. 하지만 감동이 곧 영화를 보고 흘리는 눈물의 양과 비례한다고 할 수는 없겠다. 울고 나서 느끼는 카타르시스라는 것 때문에 이 영화 정말 감동적이야라고 생각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 영화 정말 잘 만들었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눈물로 인한 착각일 수 있다. <세아이>는 분명 통곡을 하게 만들 만큼 눈물을 흘리게는 하지만 드라마 역시 그랬다. 브라운관 앞에 있는 많은 시청자들을 울렸었다. 영화가 그러했던 드라마 이상을 이루지는 못했다. 드라마가 먼저 있었으니 같은 설정으로 울리는 걸 갖고 기술이 좋다고 할 수도 없겠다. 같은 이야기를 다시 보고서도 울었다면 영화를 잘 만든 거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이야기는 언제 어떻게 되풀이 되어도 사람을 울리는 게 아닐까라고 답하고 싶다. 가족의 달 특집으로 5월마다 TV에서 보여주는 소위 가족 다큐라는 것에서나 인간극장에서나 아침마당에서나 이런 이야기는 언제라도 보는 이를 울릴 수 있다. 이 영화가 잘 만들어졌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려면 그건 눈물을 흘리게 하는 요소 때문이 아니라 앞에 언급했던 드라마를 능가하는 각색력, 창작력, 영화라는 매체로 오면서 그 특징을 살린 설정, 섬세한 연출 등에서 설득력 있는 장점을 드러냈기 때문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큰 틀에서 문제될 만한 부분이 없다 하더라도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아쉬움을 남긴다. 감독의 역량, 배우들의 역량, 원작의 화려함 등 그야말로 강한 스펙을 지니고 있기에 관객으로서 기대치가 컸었는데 그 기대 이상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그저 보통 수준에 머문 게 아쉽지 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