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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소스 코드] 낭만적이고 인간적인 맛이 나는 SF, 반복되는 8분이 지루하지 않은 반짝이는 영화


시카고를 향해 가는 기차 안, 잠에서 깬 듯한 남자 콜터 스티븐스(제이크 질랜할)는 기차 안 풍경이 낯설기만 하다. 심지어 맞은 편에 앉은 낯선 여자 크리스티나(미셸 모나한)는 자신을 잘 아는 듯 말을 건다. 가만 보니 그 여자가 부르는 이름은 자신의 이름이 아니다. 나를 나로 부르지 않는 이상한 기운의 기차 안, 도대체 이 남자에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이런 미스터리한 설정으로 시작한 영화는 곧 이 남자 콜터가 처한 상황을 설명한다. 이 남자의 정체는 공군 헬리콥터를 조종하는 대위인데 소스 코드라는 프로그램에 의해 선택된 션 펜트레스라는 남자의 몸을 통해 현실 세계에서 벌어지는 폭탄 테러를 막고 그 범인을 잡아내기 위해 투입된 것이다. 그가 선택된 이유 역시 션 펜트레스와 가장 조화가 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콜터는 일단 현실의 의식 세계에서 좀 멀리 떨어진 상태에 처해있기도 하고 말이다. 즉 콜터는 션의 몸을 통해 폭탄 테러가 벌어질 기차 안으로 보내지게 된다. 이 남자가 폭탄 테러의 실마리를 찾고 범인을 찾아내도록 주어진 시간은 8분이다. 8분 안에 일을 해결하지 못하면 다시 처음의 순간으로 돌아가 다시 8분을 부여 받게 된다. 마치 영화 <사랑의 블랙홀(Groundhog day)>의 주인공처럼 그렇게 같은 순간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한하게 8분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테러범이 시카고 전체를 공격하는 2차 폭탄테러를 일으키기 전에 문제를 모두 해결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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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 코드>는 미스터리, 테크노스릴러, SF장르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소스 코드>의 탄생은 근래 만들어진 미스터리 SF영화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 같다. 미래의 전사들이 과거로 돌아와 미래의 적을 제거하려 했던 <터미네이터>, ‘매트릭스안에서 인간을 뛰고 싸우게 했던 <매트릭스>, 예지력이 있는 인간의 능력과 프로그램을 통해 범죄를 예방하는 미래사회를 그린 <마이너리티 리포트>, 다른 행성에 다른 종으로서 존재할 수 있도록 만들었던 <아바타>와 인간의 꿈 속을 활동의 주 무대로 영화화한 <인셉션>이 연상되는 작품들이다. 이런 SF 장르의 소설과 영화들이 있었기에 <소스 코드>의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소스 코드>는 이런 SF 전작들의 요소를 조금씩 느끼게 하기에 그런 대작들로부터 기인한 SF 소품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엄청난 특수효과를 과시하는 영화가 아니고 그 아이디어를 갖고 맛나게 버무린 영화이기에 그런 인상을 준다. 그러나 이는 단점이 될 수는 없어 보인다. 그 요소들을 잘 버무려서 독창성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고, 관객들의 긴장감과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도 충분하다. 오프닝에 흐르는 음악과 장면들이 히치콕의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것도 초반에 미스터리한 설정으로 관객들을 자연스레 몰입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소스 코드>의 감독 던칸 존스는 SF와 미스터리 스릴러에 재능이 있음에 틀림없지만 동시에 그 시선이 인간적이고 낭만적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영화의 후반에 콜터는 굳이 다시 소스 코드를 통해 기차 안 8속으로 보내달라고 애원한다. 그 장면에서 사실 갸우뚱해진다. 꼭 저렇게 로맨스 설정으로 가도록 영화를 이끌어야 하는지 의문이 생긴다. 전형적인 헐리웃 장르의 모양을 하려는 모습에 한참 몰입했던 집중력이 흐트러진다. 그러나 이내 그것이 감독이 전하려던 메시지를 위해 꼭 필요했음을 느끼게 된다. 바로 그 설정으로 인해 보여지는 한 장면 때문에 조금 예민한 관객들이라면 찡한 눈물을 흘리게 될지도 모른다. 보통 삶의 마지막 모습은 비극적이고 처참하리라고 상상하게 된다. 영화 속에서 몇 번씩 되풀이되는 그 8분의 끝도 여지없이 끔찍하기만 했었다. 그런데 콜터가 마지막으로 다시 돌아가 보내는 8분이 지나고 잠시 화면이 멈추는 순간은 그 뻔한 상상을 뒤집는 찡한 감동이 있다. 죽음의 순간은 절대 아니지만 어쨌든 뭔가 멈추는 그 순간 기차 안에 모든 사람들이 기쁨과 즐거움에 환하게 웃고 있는 그 장면을 보면서 앞에 가졌던 의아함은 사라지고 감독의 의도를 깨닫게 된다. 세상이 저렇게 행복했으면 하는 생각에 감독의 인간적인, 낭만적인 시선으로 관객이 빠져들게 된다. 그 장면은 정말 큰 감동을 준다.

 

그리고 영화는 다시 이어진다. 만약 그 감동의 순간에 영화가 끝났다면 이 영화를 SF라고 하기에 어색함이 있었을 것이다. 감독은 영화의 마지막에 소스 코드프로그램의 개발자도 파악하지 못했던 소스 코드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개발자의 입장에서는 버그가 될 수도 있겠지만 여기엔 또 다른 메시지가 담겨있다고 본다. 결국 인간의 지능으로 인해 만들어진 과학적 창조물이 미치지 못하는 그 어떤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인간이 알 수 없는 그 차원, 과학으로 인해 발생했지만 과학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그 차원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로서 영화는 진정 SF영화다운 멋들어진 엔딩을 선사한다. 프로그램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 안에 투입된 존재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고, 그 안에서 휴머니즘과 프로그램 사이에서 고민하고 갈등을 겪다가 마지막엔 그 휴머니즘의 깊은 힘을 통해 정체성도 찾게 되고 과학 그 이상의 세상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 앞서 언급한 수많은 SF 소설과 영화들을 통해 반복됐던 이야기들 아니겠는가. <소스 코드>역시 그 흐름을 고스란히 담고 있고 그에 걸맞게 멋진 엔딩을 보여준다. 결론에 대한 관객들의 일종의 논쟁도 불러올 만한 영화라는 점도 근래 화제가 됐던 SF영화들과 나란한 선상에 놓일 수 있는 요소가 된다.

 


SF장르처럼 어쩌면 현실과 동떨어진 영화를 관객이 몰입하면서 볼 수 있게 하는 힘 중 하나는 정말 진짜처럼 연기하는 배우들의 연기다. 제이크 질랜할은 <페르시아의 왕자>로 불안했던 헐리웃 주류 영화에서의 입지를 다시 만회하는 기회가 될 것 같다. '8분 안 기차'에서 계속 만나게 되는 여인을 연기한 미셸 모나한과 콜트를 소스 코드 안으로 보내는 역할을 하는 베라 파미가는 작지만 임팩트가 강한 연기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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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 코드>의 감독은 던칸 존스라는 영국 감독이다. 살펴보니 그는 유명한 락스타 데이빗 보위의 아들이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던칸 존스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하고, 2009년에 발표한 데뷔작 <더 문(Moon)>으로 그 해 영국 최고의 독립영화로 선정되기도 했던 감독이다. 이참에 놓쳤던 그의 전작 <더 문(Moon)>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할만큼 <소스 코드>는 기대보다 훨씬 잘 만들어진 SF 테크노 스릴러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