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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에서 만나는 욕망

 

 

영화는 항상 목적지에 도착한다 : 정신분석학으로 풀어 읽는 영화

- <안개> 관람 후, 신형철 교수의 강연을 듣고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KOFA의 기획전인 [영화는 항상 목적지에 도착한다 : 정신분석학으로 풀어 읽는 영화]가 진행 중이다. 지난 8 15일 시작돼 31일까지 진행된다. 다수의 김기덕 감독의  영화와 라스 폰 트리에의 최근작, 김수용, 강대진 감독의 한국 고전 영화 등을 관람할 수 있고 영화 상영 후 각 주제별로 총 7회에 걸친 강연도 진행된다.

 

 

 

 

 

이 기획전을 통해 김수용 감독의 1967년작 <안개>와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1993년작 <M. 버터플라이>를 관람했다. <안개> 상영 후에는 문학평론가이자 문예창작과 교수인 신형철 선생의 강연이 준비되었다. 강연의 제목은 '연애는 언제나 네 사람이 함께 할 수밖에 없다는 난감한 사실에 대하여 : 어째서 이 사실은 정신 분석학, 페미니즘, 탈식민주의의 공통관심사인가' 이다. 다소 긴 강연 제목이지만 영화를 보고 강연을 들으면서 내내 머리를 끄덕거리는 공감의 표현을 멈출 수가 없었다.

 

 

                                    <안개>의 하인숙(윤정희)과 윤기준(신성일)

 

김수용 감독의 67년작 <안개>는 작가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을 원작으로 각색한 것이다. 각색 작업은 원작자인 김승옥 선생이 직접 했고 그는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

한국 전쟁 후, 폐병을 앓고 징집을 피해 숨어 지내던 윤기준(신성일)은 제약회사 사장의 딸인 과부와 결혼해 서울에서 살고 있다. 무진에서의 답답하고 무기력하고 피폐했던 삶으로부터 언제라도 벗어나고 싶었지만 서울에서의 삶은 퍽퍽하고 권태롭다. 무엇보다도 재력을 지닌 아내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당신의 주인 아내'라는 표현을 망설임 없이 들을 정도다. 그를 전무이사로 승진시키기 위한 주주총회를 꾀하는 아내는 그 틈을 타 잠시 휴식을 내 고향인 무진에 다녀올 것을 권한다. 다시 고향 무진을 방문한 기준은 그 곳에서 옛 지인들을 만나고 그 곳에서 음악 교사라는 여인 하인숙(윤정희)을 만난다.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했고 졸업 공연에서 <나비 부인> '어떤 개인 날'을 불렀음을 공공연히 밝히나 모임 술자리에서 유행가 '따위' 불러대고 있는 인숙은 기준에게 줄곧 "서울로 데려가 주세요" 라며 부탁하고 안개처럼 척척 감긴다. 안개가 가실 줄 모르는 무진을 배경으로 그 곳에서 벗어났던 남자와 그 곳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여자의 짧지만 강렬한 시간을 보여준다 

 

 

영화는 [무진기행]을 고스란히 옮겨냈다. <안개> [무진기행]을 놓고 신형철 교수가 전한 강연은 남성과 여성, 그 관계 속에서 각자의 욕망과 그 욕망이 바라보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고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난다는 것

 

남자가 여자를 만나 여자에게서 보는 것은 그 여자 자신과 같지 않고

여자가 남자를 만나 남자에게서 보는 것은 그 남자 자신과 같지 않다

 

 

성구분(sexuation) 공식 by Jacques Lacan (Seminar 20)

 

 

남자가 여자에게서 보고자하는 것과 그 여자의 실체, 여자가 남자에게서 보고자하는 것과 그 남자의 실체는 각각 다르고 그것이 네 가지 항을 이룬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강연 제목에 나온 것처럼 '언제나 연애는 네 사람이 함께 할 수밖에 없는 난감함'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자크 라캉의 '성구분 공식' (위 사진) 에 의하면 남자와 여자는 서로 많이 다르다. 남자는 모두 같다 할 수 있고, 여자는 모두 다르다 할 수 있다. 남자는 완벽하게 남성의 욕망을 향유하는 것이 어딘가에는 있다는 환상을 갖고 있고, 여자는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여자를 통해 자신을 확인하고자 한다. 주체로서 남자와 여자는 대상인 여자와 남자를 통해 욕망하는 것도 완전히 다르다. 

남자와 여자가 다르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강연을 통해 정신분석학적으로, 심리학적으로 파고 들어가는 내용이 무척이나 흥미롭고 크게 공감할 수 있었다.

 

 

 

<안개>에서 '노래하는 여인' 으로 설정된 하인숙의 경우 호메로스의 [오딧세이]에 등장하는 (남성)뱃사공을 홀리는 '세이렌'처럼 남성을 파멸로 이르게 만드는 소위 '팜므 파탈'형 여인의 성격을 갖고 있다. 남성의 환상의 구조를 보면 남성은 환상의 틀 속에 여성을 데리고 오면서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분명하게 알지만 그 욕망의 면모가 아닌 여성의 실제 모습에 대해서는 불안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때문에 욕망하는 것으로 불안의 요소를 억압하려 하고 그로인해 파생된 캐릭터가 '팜므 파탈'적 여성 캐릭터라고 한다. 이는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분석해볼 수 있는 요소가 된다.  

 

 

아울러 전쟁 이후에 무진이라는 곳을 벗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했으나 그 곳에서의 삶 또한 '재력을 지닌 자' '노예'같은 삶을 살고 있는 인물을 통해 탈식민주의를 적용한 분석도 가능하다. 신형철 교수가 <안개>의 후속편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고 설명하며 추천한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M. 버터플라이>야말로 탈식민주의를 적용한 분석이 더욱 유효한 작품이 될 것 같다.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 부인> 1960년대 베트남전이 벌어지고 중국과 프랑스의 혁명기를 배경으로 데이빗 크로넨버그 식으로 재해석, 재창조한 작품이 <M. 버터플라이>. 1964년 베이징, 프랑스 대사관에 세무관으로 근무하는 르네 갈리마드(제레미 아이언스)는 우연히 경극 배우 송릴링(존 론)이 공연하는 오페라 '나비부인' 을 본 후 그녀에 매혹된다. 송릴링에 빠져드는 르네는 유부남이라는 상태도 포기할 듯이 관계에 빠져든다. 그러나 송릴링은 중국 공산당에서 부여한 특별한 임무가 있었고 그것을 위해 르네를 이용한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겪으며 이별을 해야 했던 두 사람은 68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파리에서 재회한다. 그 사이 이혼도 하고 경력에도 상처를 입은 채 살아가고 있는 르네는 '버터플라이'라고 불렀던 여인과의 재회에 다시 행복한 삶을 꿈꾼다. 그러나 그 둘의 관계는, 남자의 삶은 충격적인 말로를 맞게 된다.

 

영화의 배경도 그러하고 송릴링이 백인 남자인 르네를 만나 입에 단 듯 '제국주의'에 대한 비난과 경계심을 보이는 것에서 더욱 '탈식민주의적' 관점에서 영화를 분석해볼 만 하겠다.

그 전에 <안개>와 같이 남성의 욕망, 남성이 상대방인 여성에게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욕망과 대상에게서 느끼는 불안감을 담아냈다. 욕망이 치솟으며 결국 남자의 삶을 파멸로 이르게 한다는 점에서는 <안개>가 담아낸 것보다 파국의 길로 몇 발짝 더 나아간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제레미 아이언스가 연기한 르네의 마지막 장면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으나 남성의 욕망, 그 끝을 보는 것 같아 무척이나 강렬했다. 그런 면에서 신형철 교수가 언급한 것처럼 <안개> <M. 버터플라이>를 연결 지어 보는 것도 재미난 관람법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