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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성탈출:반격의 서막] 유감스러운 국내 번역 제목

 

 

제목, 내용 유감있다

 

<혹성탈출:반격의 서막 Dawn of the Planet of the Apes>은 볼거리,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잘 빠진 블록버스터다. 초반 20여분 정도의 살짝 지루한 틈을 지나면 금새 롤러코스터를 탄 듯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2011년 <혹성탈출:진화의 시작 Rise of the Planet of the Apes>으로 새롭게 시작된 프리퀄이 3부작이라면 1편과 3편을 잇는 연결작품으로서도 의미가 있다. 유인원들의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표정 등은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울 만큼 흡족하다.

 

 

                                      1968년 작 <혹성탈출 Planet Of The Apes >

 

그러나 몇가지 유감스러운 부분이 있다. 먼저 제목, 특히 부제에 대한 유감이다.  1968년 오리지널의 국내개봉제목이 <혹성탈출>이다. 영어제목 Planet Of The Apes는 '유인원의 혹성(행성)'이라 할 수 있으나 어쨌든 국내 제목은 원제에는 어디에도 없지만  영화 내용을 반영하여 '탈출'을 갖다붙였고 내용을 설명해주는 나쁘지 않은 번역제목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제목이 프리퀄이 만들어진 2011년에도 유효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이러니다. 프리퀄인 <혹성탈출:진화의 시작>은 위에 적은 영어 제목에도 그렇고 영화 내용에도 그렇고 '혹성 탈출'을 붙일만한 구석이 없다. 유인원들이 갇혔던 우리에서 탈출한다고 해서 '탈출'이 붙었다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리고 이 점은 굳이 꼬투리 잡을 만한 것은 아니기도 하다. 유명한 원작을 다시 부활시킨 시리즈격인 프리퀄을 개봉하면서 원작의 제목으로 유명한 이름을 포기하는 것은 인지도를 고려할 때도 바람직한 방향은 아니니까.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갖다붙인 부제에 대해서는 단연코 유감이라 할 만하다. (물론 원 제작자의 허락을 받았겠지만) 갖다붙인 부제에는 갸우뚱 하게 된다. 그나마 2011년 작의 'Rise'를 '진화의 시작'으로 만든 건 영화 내용으로 봐서 수긍할 만하다.

그러나 이번에 개봉한 작품에서 'Dawn'을 설명하는 부제로 '반격의 서막'이라는 표현을 붙인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영화 내용을 보면 도대체 이 부제가 말하는 '반격'은 무엇이고 그 반격의 '대상'은 누구인지 물음표를 갖게 된다. 좋은 인간 윌(제임스 프랭코) 가족과 지내면서 인간을 좋은 존재로 여기고 인간과 유인원이 통한다, 같다라고 여겼던 시저(앤디 서키스)는 윌과는 다른 인간들의 탐욕스럽고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모습에 유인원들과 인간은 다른 적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인간과 유인원의 존재 차이를 드러내며 대립이 시작되었던 <혹성탈출:진화의 시작> 이후 10년이 지난 시점의 이야기를 다루는 <혹성탈출:반격의 서막>에서 시저는 "유인원은 인간과 다르고 인간보다 더 낫다고 생각했으나 지금 보니 인간과 참 같구나"라는 말을 한다. 그리고 '신뢰'로 통하고 약속했던 말콤(제이슨 클락)에게 "유인원이 먼저 시작했고..."라는 말로 처참한 사태에 대한 미안함을 말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인간과 유인원의 평화로운 공존은 깨졌지만 그 원인은 인간이기도, 유인원이기도 한 주고받음이 그려졌고 특히 <혹성탈출:반격의 서막>만 보자면 여기에서 원 공격의 주체가 누구인가를 생각할 때 도무지 '반격'이라는 표현을 이해하기 어렵다. 유인원이 반격하는 것인지, 인간이 반격하는 것인지. 마지막 장면에서의 시저의 눈빛을 봐도 이것이 분노와 슬픔을 담고 있는데 인간을 향한 분노라기 보다는 이 지경을 만든 같은 유인원에 대한 실망 또한 크게 담고 있기에 이 영화의 국내 수입사에서 갖다붙인 '반격의 서막'이라는 부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난감하다.

 

 

                                    2011년 작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 Rise of the Planet of the Apes>

 

 

다른 하나는 영화에 대한 유감이다. 우리가 이미 봐서 알고 있는 오리지널 <혹성탈출>, 그러니까 완벽하게 인간이 멸종하고 유인원이 지배하는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진 건지 보여주기 위한 프리퀄을 3부작이라고 생각할 때 이번 <반격의 서막>은 1편과 3편을 잇는 역할을 하지만 1편이나 3편에 흡수되어도 될만한, 그러니까 1편과 3편만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볼거리, 생각할 거리가 충분한 작품이긴 하지만 마치 길게 늘어뜨린 대하소설 같달까. 빠른 호흡으로 만든다면 한 챕터로도 가능할 이야기를 늘여서 길게 뽑아낸 결과물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2011년작 <진화의 시작> 이후 감독도 교체하고 배우도 앤디 서키스를 제외하고는 모두 물갈이를 한 모양새가 마치 2011년작을 뒤로 하고 프리퀄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을 하나 더 만들면서 이렇게 다시 시작하겠다는 의미부여는 아닐까. 이어서 2016년에 공개될 3편의 감독도 이번 <반격의 서막>을 만든 매트 리브스로 확정되었다고 하니 더더욱 그런 생각을 품게 된다.

 

 

여튼  탈출은 하지 않는, 필요치도 않은 <혹성탈출>이긴 하지만 평화적 공존을 깨는 인간과 유인원들을 보며 우리가 사는 세계와 정치의 구조와 순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블록버스터로서 볼만한 작품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