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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황당한 외계인 폴] 덕후의, 덕후에 의한, 덕후를 위한


그램(사이몬 페그)과 클라이브(닉 프로스트) SF와 코믹북에 푹 빠져 사는 소위 오덕후’(이후 덕후). 이들은 미국에서 열리는 코믹콘에 참여하고 외계인이 방문했던 흔적이 있는 외계인 성지 순례를 위해 영국에서 날아왔다. 한껏 신나게 여행중인 이들의 눈 앞에서 느닷없이 자동차 전복 사고가 벌어지고 그 후에 더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인간처럼 말하는 외계인 폴(세스 로건)이 그들 앞에 나타난 것이다. 아무리 외계인 신봉자인 그들이지만 눈 앞에 펼쳐진 사실을 믿기는 어려운 법. 이 때부터 폴과 함께 여행 아닌 도주를 하게 되는 이들은 과연 정부 요원으로부터 쫓기고 있는 폴이 그의 별로 잘 돌아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까?

 

덕후의, 덕후에 의한, 덕후를 위한

<황당한 외계인 폴> SF와 코믹북에 빠진 사람들 덕후를 위한 영화다. 각본과 주연을 겸한 사이몬 페그와 닉 프로스트는 덕후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그들이 상상하고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그들의 취향대로 스크린을 뒤덮고 있다. 코믹콘에서 좋아하는 코믹북 작가의 사인회에 참석하고 캠퍼밴을 몰고 외계인 방문지를 여행하는 것은 많은 덕후들의 이상일 것이다. 거기에 그들의 상상, 아니 굳건히 믿는 현실을 그럴싸하게 그리고 아주 웃기게 그려내는 이 영화를 덕후들이 싫어할 리가 있을까?

분명 이 영화를 위해 아이디어를 내고 제작하는 그 모든 과정에서 만드는 이들 또한 무척이나 행복했을 것 같다. 영화 속에서 묘사되는 외계인 폴의 정체와 그가 지구에 공헌했다고 주장하는 것들은 분명 덕후들에게 짜릿한 쾌감을 선사할 것이다. 예를 들어, 영화 <E.T>의 아이디어를 스필버그에게 제공했고, <X-FILE>의 폭스 멀더를 창안한 게 폴이라는 설정은 정말 코믹북 덕후들에겐 팝콘을 던지며 환호할만한 요소 아니겠는가. 폴이 펼치는 기행과 죽은 새를 살리는 그의 묘술(?), 영화 <타이타닉>로즈를 패러디하는 장면 등은 굳이 코믹북 팬이 아니라도 박장대소할 부분이다.


이 덕후들은 그들의 세계관, 가치관을 영화에 담으며 기존의 보수적인 사상을 비꼰다. 그 중 창조론과 기독교에 대한 비아냥은 강도가 세다. 하지만 그들이 기본적으로 비웃는 대상은 탐욕스럽고 편견에 젖은 인간의 본성으로 보인다. 그래서 (국내 번안 제목이긴 하지만) ‘황당한이라는 표현은 외계인 폴이 아닌 인간들에게 더 어울리는 표현이다. 여행을 하는 그램과 클라이브는 물론이고 외계인 폴에게도 늘 뻔한 질문들이 던져진다. 그런 현상을 두고 폴이 이런 대사를 한다. ‘도대체 왜 모두가 그걸 물어보는거지?’ 이건 인간이 얼마나 편견 속에 사는지를 되묻는 대사처럼 들린다. 겉만 보고 멋대로 단정짓고 왜 그러냐고 묻는 것, 진실은 뭐든 상관없다는 듯한 태도를 비웃는다.

혹자는 이 영화가 기독교에 대해 너무 비꼬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이해할 수 있는 지적이다. 대놓고 육두문자 날리면서 기독교를 비웃기 때문이다. 허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 이 영화는 지극히 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정말로 마음대로 펼치고 있는 장이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코미디이며 기독교나 창조론을 비웃고 있지만 그렇다고 외계인을 믿고 신봉하는 그들의 태도에 대해서 논리적인 정당성 또한 부여하지 못한다. 그저 믿고 싶은, 믿기 좋은 걸 믿고 그들이 믿는 걸 신나게 스크린에 뿜어내고 있는 것이다. 신나게 놀고 있을 뿐 논리적으로 내가 옳고 너는 틀렸다라고 덤비지는 않는다. 그럴 목적도 없어 보인다. 그러니 영화를 보는 관객만 꼿꼿하게 눈 부라리며 그들을 노려볼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그저 가볍게 그 덕후들이 펼치는 그야말로 황당한 이야기를 코미디로 즐기면 될 것이다. 진정 그들이 <E.T>의 아이디어를 주고 멀더를 만든 존재가 외계인 폴이라고 주장하며 그 기밀을 퍼뜨리겠다는 것도 아니고, 관객이 그걸 믿는 것도 아니지 않겠는가. 이건 그저 육두문자 실컷 날리며 보수적인 문화를 조롱하는 좀 심한 장난인 것이다.

                    


영화의 엔딩을 보면 이건 정말 코믹스 덕후들의 꿈의 결정체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결국 그들은 폴과 함께 한 경험을 토대로 코믹북을 발간하고 일약 스타가 된다. 그래서 코믹콘의 관객이 아닌 작가로서 공로상을 받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덕후들의 꿈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이쯤 되면 영화 속에서 그들이 만난 외계인 폴 마저도 영화 속 그들의 꿈 이야기가 아닐지 한 번 생각하며 극장을 나서게 된다. 뭐 그러든지 말든지.

영화 속에서 폴을 쫓도록 요원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수장이 있다. 계속 목소리만 나오다가 영화의 끄트머리에 모습을 드러내는 그 배우를 보고 하고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가 없다. 정말 이 사람들 제대로 한 판 놀기로 했구나 생각되는 순간, 그 아이디어에 유쾌해진다.

 

왠지 반드시 쿠키가 있을 것 같은 영화지만 엔드 크레딧이 모두 올라간 후에도 쿠키는 나오지 않는다. 왠지 후속편이 나올 것도 같은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