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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예상은 시작에 불과하다, 전율하게 만드는 결말로 이끄는 강펀치 같은 영화 <고백>

 

'내 딸을 죽인 사람은 우리 반에 있습니다'

종업식이 진행되는 중학교의 한 교실. 여교사 유코(마츠 다카코)는 교탁 앞에서 학생들에게 아주 차분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여느 종업식에서나 있을 법한 그런 이야기일거라고 예상한다. 그런 교사의 말을 귀담아 듣는 아이들은 하나도 없다. 각자 자기들 얘기하기에 바쁘고 어수선하고 시끄럽다. 그런 아이들의 분단 사이사이를 거닐며 학생들을 제지하기는커녕 조용히 자신의 이야기만 하는 선생님. 그러던 어느 순간 아이들은 조용해지고 선생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얼마 전 학교 내 수영장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유코의 딸을 죽인 범인이 바로 이 교실에 있다는 사실을 폭로한 순간이다. 잠시의 조용함 후에 다시 웅성거리는 아이들. 하지만 이어지는 선생님의 발언에 교실은 순간 꽁꽁 얼어붙는다. 살인은 저질렀어도 14세 이하의 청소년은 처벌받지 못하는 청소년보호법 때문에 그 살인자는 어떤 법적 처벌도 받을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유코 스스로 그 학생을 처벌하겠다는 선언, 그 처벌의 방법으로 범인 학생의 우유에 에이즈 감염자의 혈액을 넣었고 방금 전 그 학생은 그 우유를 마셨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순간 교실은 아수라장이 된다. 범인 A는 구토를 하며 교실 밖으로 뛰쳐나가고 범인B는 충격에 몸서리친다.

 


딸의 살해범임에도 법적으로 보호 받아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 자신의 반 학생을 벌하기 위해 에이즈 감염자의 피를 그들의 우유에 몰래 넣어서 마시게 한다. 이 한마디만으로도 영화 한 편의 이야기는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영화 <고백>의 시작에 불과하다.

유코가 교실 안을 천천히 돌며 모든 이야기를고백하는 걸 보면서 조금 놀랐다. ‘, 저 이야기를 저렇게 다 해버리면 어떡해, 영화 초반에?’. 최소한의 정보를 갖고 영화를 보기 시작한 관객이 예상한 결과를, 그리고 두 명의 범인을 아예 대놓고 밝혀버리는 시작을 보며 망치로 한 대 맞은 듯 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생각하게 된다. ‘이거 만만치 않은 영화겠군’. 이런 기대를 영화는 절대 배반하지 않는다.

선생님 유코의 첫 번째 고백 후, 이제 고백의 순서는 살인범으로 지목된 두 아이와 또 다른 여학생으로 옮겨간다. 그렇게 각자의 입장에서 하는 고백을 들으며 영화는 단순한 범인 찾기를 뛰어넘어 도대체 왜 저 아이들이 살인을 저질렀는지 그 사정을 알게 되고, 도대체 우리 삶을 망가뜨리는 그의 근원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파고들기 시작한다.

 


그들은 천사인가, 악마인가
?
교사 유코의 고백 후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전, 영화는 비 내리는 하굣길을 깡총거리며 뛰어가는 아이들을 느린 화면으로 보여준다. 그 화면 안에서 아이들의 모습은 천사처럼 해맑아 보인다. 하지만 교실 안에서 예의 없이 떠들고 경악하던 아이들은 겉보기처럼 천사는 아니다. 오히려 악마에 가깝다. 그것도 분별없이 미성숙한 악마들이다. 자신들이 저지르는 게 얼마나 큰 죄악인지 모르고 알려줘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칭얼거린다. 그리고 영악하게도 그 천사의 외모를 이용할 줄도 안다. 그 모습으로 친구를 괴롭히고 선생님을 기만하고 부모님을 무시한다. 이 아이들은 날 때부터 이렇게 악했을까? 아니면 세상이 아이들을 이렇게 악마로 만들었을까? 

 

살인범인 두 학생의 사정을 들여다보면 어느 정도 연민과 동정이 발동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이 없었음이, 그들을 보듬어주는 대상이 없었음이 그들을 그 지경으로 내몰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영화의 2/3가 지나고 나면 그 생각은 사라진다. 끝까지 남은 살인범은 그저 철없는 악마일 뿐임을 알게 된다. 그 때부터 관객의 마음은 아이들에게서 여교사에게로 이동한다. 이제 저 악마와의 싸움에서 교사 유코가 이겨주기만을 바라는 마음이 생긴다. 법의 보호망을 한없이 이용해먹는 악마와의 싸움이 끝으로 치닫는 순간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면 이미 관객의 마음은 유코에게로 전이됐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결론을 보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관객은 천사인가, 악마인가? 묘한 카타르시스 후 묵직한 착잡함, 씁쓸한 맛이 감도는 혀의 느낌, 그것이 영화 <고백>의 끝이 주는 맛이다.

 


<고백>은 미나토 카나에의 소설이 원작이고 올해 일본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을 수상했다. 감독 나카시마 테츠야는 교사와 살인범 학생, 그들 주변의 여학생 등으로 교차되는 고백의 입장을 인상적인 스타일의 틀 안에서 짜임새 있게 보여준다. 내심 공정하게 모두의 사정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결국 처음 유코의 고백을 들었을 때의 그 마음으로 다시 돌아오게 만들며 선과 악, 복수와 용서에 대해 관객들이 스스로 질문과 답을 구하게 만든다. 첫 번째 교사의 고백이 펼쳐지는 교실 안 시퀀스는 관객들을 기선제압 하는 힘이 있고 그 힘을 완성하는 배우 마츠 다카코의 차분한 연기는 소름 돋게 인상적이었다. 영화를 보는 맛을 느끼게 해줄, 강력히 추천할 수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