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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미스터 고] 기술의 쾌거, 그러나 인간 사이에 통역이 절실해 보이는

 

미스터 고

기술의 쾌거,

그러나 고릴라와 인간이 아닌 인간 사이에 통역이 절실해 보이는

 

서커스단을 운영하는 할아버지(변희봉)와 함께 살아온 웨이웨이(서교). 갓난아기 때부터 함께 해온 고릴라 링링과는 서로 말이 통한다고 할 정도로 친밀한 관계이다. 야구를 좋아하는 단장 할아버지 덕에 '야구하는 고릴라'로 훈련 받고 인기를 얻게 되는 링링. 하지만 빚더미에 허덕이는 위기를 맞고 끝내 대지진으로 인해 할아버지는 목숨을 잃는다. 슬퍼할 여유도 없이 할아버지를 대신해 서커스 단장 역할을 해야 하는 웨이웨이. 사채업자들에게 협박을 당하면서도 링링을 지켜내기 위해 애쓰는 소녀 앞에 한국 프로야구 스카우트 에이전트인 성충수(성동일)가 나타난다. 괴력으로 야구 공을 쳐내는 링링을 스카우트하기 위한 그의 제안에 웨이웨이는 링링과 함께 한국행을 결정한다. 그녀의 꿈은 링링을 통해 한국에서 돈을 벌어 빚을 갚고 '태양의 서커스'를 하고 싶은 것 뿐이다. '헌터'라고 불릴 만큼 돈과 성공 앞에 냉혈한인 스포츠 에이전트와 서커스단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픈 소녀의 꿈은 링링을 통해 이뤄질 수 있을까?

 

 

<오 브라더스><미녀는 괴로워><국가대표>까지 내놓는 작품마다 흥행 불패 기록을 달성하고 있는 김용화 감독이 CG로 탄생한 고릴라 캐릭터와 3D 기술을 전면에 내세우며 완성한 <미스터 고>. 예고편이나 사전 정보를 통해서 가장 관심이 갔던 부분 역시 이 3D CG 기술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표현됐는가 하는 부분이었다. 국내 순수 기술팀인 덱스터 스튜디오를 통해 표현된 기술은 손색이 없어 보인다. CG캐릭터임에도 고릴라와 실제 배우들이 연기하는 모습은 매우 자연스럽고 최소 3회 이상 날아오는 공을 피하면서 깜짝 놀라게 할 만큼 3D 요소도 효과적으로 활용됐다. 국내 기술로만 완성해내겠다는 의지와 도전이 결실을 맺었다고 보여진다.

Dire Straits 'Walk of Life' 'Danny Boy'의 친숙한 멜로디를 활용한 것도 (너무 익숙해서 새롭지는 않은 방식이지만) 친근했다. 우정출연 식의 카메오가 너무 많아서 정신이 없긴 하지만 추신수, 류현진 선수를 필두로 김정은과 마동석, 오다기리 죠에 이르기까지 깜짝 등장하는 인물들을 감상하는 재미도 적재적소에 활용됐다.

 

 

기술적인 완성도는 돋보이지만 이야기가 아쉽다는 기존의 평에 대해서도 <미스터 고> 편에서 옹호할만한 요소는 있다. 가령 웨이웨이를 통해 훈련을 받았던 링링의 본능이 조장하는 첫 번째 위기 시퀀스는 전형적이긴 했지만 잠실 구장의 곳곳을 규모 있게 활용하며 볼거리를 제공한다. 국내 구단 내 갈등을 넘어 일본 프로야구 경쟁 팀들의 구단주까지 등장시켜 경쟁 구도와 갈등을 만들어내고 여기에 링링에 대적하는 또 다른 고릴라 레이탕을 배치해서 갈등의 동기를 부여하고 이야기를 쌓아가는 점은 좋았다.

 

 

그런데 이런 면으로 상쇄하기엔 역부족인 요소는 결정적으로 여주인공인 소녀 웨이웨이의 캐릭터와 존재감에 있다. 위기에 처한 서커스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이 어릴 적부터 훈련시킨 링링을 데리고 한국에 온 소녀는 영화 속에 묘사된 것보다는 훨씬 영리하고 반짝거려야 했다. "연변에서 살아내려면 한국어를 이 정도는 해야 한다"라고 영화 속 인터뷰에서 말할 정도로 소녀의 한국어 실력은 크게 문제 없어 보인다. 그래서 초반에는 에이전트인 성충수를 쥐락펴락하며 주도권을 잡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그런 웨이웨이의 기력은 중반부를 지나면서 점점 소멸한다. 서커스단을 협박하는 사채업자들의 비디오를 받았을 때도 그걸 보고 그녀가 보이는 반응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다는 느낌이다. 그 와중에 링링과 성충수는 잠실구장에서 난리를 벌이고 있는데 웨이웨이가 하는 행동은 극의 흐름을 늘어지게 한다. 이후 결정적인 위기의 순간에도 그녀가 하는 행동이라고는 링링과 자신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TV를 통해 바라보는 것이 전부이다. 그것을 통해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이 설정이었을 텐데 여지없이 그녀는 그저 칭얼대기만 하는 영리하지 못한 소녀로만 비쳐진다. 이는 링링과 웨이웨이 사이에서 보호자 역할을 하는 것이 결국 소녀 웨이웨이가 아니라 고릴라 링링이었다는 결론으로 이어지게 하기에 효과적이긴 하지만 초반에 영리해 보이고 강인해 보였던 소녀가 한순간 너무 둔하고 의존적인 캐릭터가 되어버린 것 같아 납득하기 어려웠다.

 

 

성충수와 웨이웨이의 관계에서도 계약과 처우 문제 등으로 끊임없이 갈등과 감정적 줄다리기가 일어나긴 하는데 그 관계에 탄탄함이 부여되지 않는다. 그것은 그 둘의 관계가 관객들에게 이해되고 스며들게 하는 설정들이 전혀 힘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웨이웨이는 한국어를, 성충수는 중국어를 꽤 알아듣는 것처럼 묘사되지만 그 둘이 진짜 소통이 되는지 의아할 정도로 둘이 대화를 나눌 때 서로의 리액션이 부조화를 이룬다. 성충수와 고릴라 링링에게는 술판을 벌이는 등의 에피소드를 통해 소통의 계기가 부여되는데 오히려 성충수와 웨이웨이 사이에서 불통이 느껴지는 것은 영화의 집중도를 떨어뜨린다. 고릴라와 사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통역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묘한 순간을 체험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