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over the silver screen

[인 더 하우스]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와 욕망이 지은 집(안에서)

 

인 더 하우스 Dans la maison/ In the House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와 욕망이 지은 집(안에서)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는 중독성을 갖는다. 게다가 그 이야기가 자신의 숨은 욕망까지 일깨우기에 이른다면 그 이야기를 제외한 어떤 것도 삶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게 된다. 그게 중독의 증상일 것이다.

프랑수아 오종의 <인 더 하우스 Dans la maison/ In the House>는 그런 이야기와 그 이야기에 중독된 경우에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을 담아 관객을 끌어당긴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를 품고 있는 동시에 각자의 욕망이 깨어나며 기묘하게 (마침내) 제 짝을 찾듯 연결되는 관계를 보여주는 영화는 확실한 오종식 인증을 찍는다. 오종의 유명세에 부합하는 영화로 받아들이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제르망(파브리스 루치니)은 문학 교사다. '주말에 한 일'에 대한 작문 과제를 채점하던 제르망. 글들이 형편없다며 '

쟁이 안 일어나도 이런 형편없는 아이들 때문에 세상은 망할 것'이라고 한탄하는 그의 눈에 반짝 들어오는 글이 있다. 끌로드(어니스트 움하우어)라는 학생이 적어낸 작문이 그것이다. 친구 라파의 집에 방문했던 일을 기록한 그 글에 제르망은 묘하게 끌리게 된다. 형편없는 글들 속에서 낚아낸 글에 제르망의 아내인 쟝(크리스틴 스콧 토마스) 또한 호기심을 갖게 된다.

끌로드는 연이은 과제에도 라파의 집안 이야기를 담아 제출하며 슬슬 이 부부의 호기심과 줄다리기를 시작한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된 일은 심각한 중독에 빠지는 지경에 이르게 만들고 어느 순간 이야기의 허구와 현실의 실제를 혼동하는 일도 벌어진다. 그 안에서 관계는 더욱 꼬이고 결국 어떤 파국을 맞는다.

 

 

이야기가 주는 묘한 쾌감에 빠진 부부는 다음 이야기를 읽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교사로서의 윤리 의식은 이 중독이 자극하는 호기심 앞에서 힘을 잃는다. 타인의 사생활을 몰래 훔쳐보는 듯한 은밀한 짜릿함을 제공하는 끌로드의 이야기는 중독성이 강하다.

끌로드의 이야기에 홀리듯 끌리는 결정적인 이유는 두 가지로 보인다. 하나는 아주 사소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면 깊숙이 자리한 욕망이다. 먼저 아주 사소한 요인은 매 이야기마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다음에 계속(À suivre)'이라는 표현이다. 평범하게 지날 수도 있었을 첫 번째 이야기부터 찍혀진 '다음에 계속'은 묘하게 읽는 이를 낚아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어쩌면 굉장히 사소한 것일 수 있음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결정적으로 이들을, 특히 제르망을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드는 요인은 강렬한 욕망이다. 작가가 되고 싶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문학 교사로 살고 있는 제르망에게 소설을 쓰는 것은 오랫동안 내재한 욕망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보고 읽고 느끼는 모든 것들을 통해 상상의 나래를 펴고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글로 표현하는 것을 향한 욕망이다. 현실에 안주하며 잠시 숨어있던 그 욕망은 제자인 끌로드의 글을 통해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다시 찾아온 욕망에 제르망은 열정적으로 복종한다.

 

 

제르망은 끌로드에게 계속 글을 쓰도록 독려한다. 책을 빌려주고 특별히 문학 과외를 해주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주도권은 늘 끌로드에게 있다. 제르망에게 끌로드는 제자를 초월하여 욕망을 다시 일깨워준 사람이니 그럴 만도 하다. 끌로드는 한마디로 옴므 파탈 캐릭터다. 그의 과감하고 도발적인 행동 역시 그의 욕망에서 비롯한다. 그의 가정환경으로 인한 결핍은 친구인 라파 가족을 향한 욕망을 만들어낸다. 그런 욕망에서 시작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그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호의적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곁에 남는 건 제르망이다. 제르망은 그 선택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게 되었음에도 그의 곁에 끌로드가 남았다는 것에 만족한다. 제르망과 끌로드는 각자의 욕망이 이끄는 어떤 지점에서 강렬한 공존의 이유를 발견한 듯 하다. 그들의 욕망이 서로를 알아본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부부인 제르망과 쟝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좀 더 확실해진다.  

제르망과 쟝은 친구처럼 편안한 부부로 보인다. 제르망은 문학 교사이고 쟝은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으니 서로 문화적으로도 통할 것 같은 이상적인 모습으로 보인다. 제르망이 작문 과제 중에서 끌로드의 글에 관심을 보일 때 쟝은 객관적으로 냉철한 조언을 해주는 듯 하지만 역시나 그 이야기에 호기심을 갖게 된다. 같이 영화를 보러 갔을 때도 영화가 시작된 줄도 모르고 끌로드의 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정도이다.

여기서 재미난 것은 그들이 보러 간 영화가 우디 앨런의 <매치 포인트>라는 점이다. 그 영화 속 크리스(조나산 리스 마이어스)는 결핍이 키워온 욕망에 충실하고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해 과감하게 돌진하는 캐릭터다. 결과는 조금 다르지만 <인 더 하우스>의 끌로드처럼 그 역시 욕망에 충실한 옴므 파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제르망과 쟝 부부가 끌로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매치 포인트>를 관람한다는 것은 재미있는 설정으로 보인다.

제르망과 쟝 모두 끌로드의 이야기에 끌리기는 했으나 끌로드의 욕망과 통했던 것은 제르망이었고 결국 오묘하게도 각자 제 짝을 찾아가는 관계도를 그리게 된다. 문화적으로 소통이 되는 이상적인 부부로 보이지만 제르망은 (농담이긴 하지만) 쟝의 갤러리를 '성인용품점'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쟝은 제르망의 교육관에 대해 공감하지 못한다. 끌로드의 이야기에 점점 빠져들수록 그런 차이는 영화 속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결국 제르망의 취향에 맞는 짝은, 그 모든 호기심을 충족할 수 있도록 주고 받음이 가능한 끌로드가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도록 관계망이 그려진다. 각자의 욕망이 드러나는 가운데 오묘하게 연결되어 결국 제 짝을 찾아가는 그림은 '그래, 이건 정말 오종의 영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인 더 하우스>는 기묘하지만 서로에게 맞는 짝을 찾게 된 영화 <세크리터리>의 두 인물 리(메기 질렌할)와 그레이(제임스 스패이더)을 떠올리게도 한.

 

 

끌로드의 이야기는 타인의 집 안에서 벌어지는 은밀한 이야기, 건물 속에 가려진 세밀한 이야기들을 훔쳐보게 한 매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제르망을 매료시켰다만 그런 매력은 비단 글로 쓰여진 것에만 담긴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문학이 될 수도 있고 영화나 연극, TV 프로그램이 될 수도 있다. 그 어떤 형태이든 재미난 이야기, 호기심을 자극하며 끌어당기는 이야기를 담아낸 것이라면 이렇게 중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욕망과 통하여 욕망을 일깨우기까지 한다면 예외없이 그것의 노예가 되어 생활 속에서 의미 있는 것은 오로지 그것 또는 그것과 연결된 것뿐이라고 생각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즐거움을 공유할 수 있거나 제공해주는 사람과의 관계만을 최고로 여기게 되는 상태에 이르게 할 것이다. 그렇기에 <인 더 하우스>를 재미나게 보고 나온 관객의 입장에서도 어떤 면에서는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나 역시 그런 이야기에 몰입을 넘어 중독에 빠질 수 있는 아주 연약한 대상임에 틀림없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