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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고령화 가족] 식구는 함께 나눈 밥그릇 수가 쌓이며 가족이 된다

 

고령화 가족

'식구는 함께 나눈 밥그릇 수가 쌓이며 가족이 된다'

원작소설을 그대로 옮긴 듯한 안이한 각색의 아쉬움 남지만

원작보다 더 잘 정리된 각색은 장점

 

 

천명관 작가의 원작소설을 영화로 옮긴 <고령화 가족>은 원작의 장점을 고스란히 가져오면서도 나름대로 단점을 극복하려 했던 각색의 고민이 보이는 작품이다. 하지만 말 그대로 원작을 옮긴 흔적이 강해서 영화를 만든 사람들만의 개성이 드러나는 각색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뿔뿔이 흩어졌던 가족이 엄마의 집으로 모여들게 되는 설정과 그 안에서 드러나는 캐릭터들의 면모는 원작에 이미 완벽하게 녹아있고 영화는 그것을 고스란히 옮겨왔다. 영상 매체의 특징을 등에 업어 원작에서 느꼈던 것보다 더욱 생명력 있게 캐릭터가 보여진다.

한편 원작을 읽으면서 몇몇 장면에서 갸우뚱했던 부분을 영화는 정리하고 보충하며 채워내려는 노력을 한 것이 느껴진다. 함께 밥을 먹은 오랜 식구가 서서히 가족으로서 굳건해진다는 큰 틀을 보여주는 것에 있어서도 원작에 없는 장면까지 추가하며 반복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더욱 강조한다. 이는 이야기를 쉽게 풀어서 관객에게 전달하려는 과한 친절로 읽혀 안이한 각색으로 볼 수도 있겠고 좀 더 꼼꼼하게 이야기를 채워내려던 고민의 결과로 볼 수도 있겠다. 

 

 

캐릭터와 주요한 상황, 갈등을 일으키는 것과 해소되는 것들은 원작 안에서 정수라고 여겨질 요소들만 선명하게 가져왔다. 인생 막장에 머물렀다고 생각했는데 엄마의 닭죽 요리 얘기에 군침을 흘리며 집으로 기어들어온 영화감독 인모(박해일), 전과자로 집에서 빈둥거리는 건달 한모(윤제문), 두 번째 결혼에 실패하고 엄마의 집으로 들어온 미연(공효진)과 그녀의 되바라진 딸 민경(진지희), 그리고 이 모든 자식들을 품어 매일매일 밥과 고기를 먹이느라 바쁜 엄마(윤여정). 이 다섯 명의 캐릭터는 소설이 그러했던 것 이상으로 스크린에서 팔팔하게 제 역할을 해낸다. 인물들은 집 안에서 치고 받고 욕하고 다투면서 각자의 상황과 캐릭터를 경쟁이라도 하듯 팽팽하게 드러낸다. 역시 그 안에서 한 밥상을 두고 모여 앉으면서 그들이 변함없이 식구임을 부각시킨다. 한정된 공간에서 여러 인물들이 모여 캐릭터를 드러내고 상황을 전개해나가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 영화는 소설 속에 잘 묘사된 그런 것들의 온도를 잘 유지하며 스크린에 담아냈다.

놀라운 것은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의 힘이다. 영화에서 실체의 인물과 그들의 육성을 통해 전달되는 그 대화는 소설을 읽었을 때보다 더 힘있게 전달되어 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대화 사이사이에 미묘한 기운, 표정의 변화, 대화 주도권의 이동 등이 굉장히 생생하게 표현됐다. 배우들의 앙상블이 상당히 훌륭하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하게 만들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비중이 적다는 인상이 들었던 미연은 공효진의 차진 대사를 통해 훨씬 더 생명력을 얻게 됐다. 무엇보다도 엄마를 연기한 윤여정은 영화 안에서 그 캐릭터가 더욱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탁월한 인상을 준다.

 

 

소설의 단점을 극복하려는 노력으로 읽히는 부분은 대사를 통해 이야기를 좀 더 이해하기 쉽게 풀어낸 점과 원작에서 가지치기 하고 남긴 것들은 좀 더 풍성하게 표현해서 이야기를 완결되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소설에 없는 야유회 시퀀스나 가족들이 민경의 실종 전단을 함께 배포하는 장면 등 가족이 함께 모이는 장면을 추가하여 이 고령의 식구들이 가족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쉽게 받아들이게 한다.

눈에 띄게 소설과 다른 선택을 하는 모험을 강행한 엔딩 부분 역시 이런 각색의 의도를 느끼게 한다. 소설 속에서 한모가 선택한 마지막은 물음표를 만들었었다. 그런 선택이 분명 가족에게 해를 가할 수 있는 선택임을 모르지 않았을 텐데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갸우뚱했었다. 물론 소설 자체에서도 한모의 선택과 그로 인해 린치를 당하는 인모의 상황이 자연스레 연결되면서 이야기가 매끄럽게 마무리되긴 한다. 하지만 영화는 각색을 통해 한모라는 인물에 더욱 적합한 옷을 입혀준다. 이렇게 변형된 엔딩은 아내의 내연남에게 폭행을 가하는 인모의 모습이 보이는 영화의 오프닝(프롤로그)과 자연스레 연결되며 관객에게 일종의 감동을 전하는 효과를 극대화한다.

어찌 보면 너무 친절하게 이야기를 풀어 관객에게 떠먹여주는 과한 각색으로 보이기도 하고 달리 보면 캐릭터간 관계를 좀 더 촘촘하게 하고 강렬한 엔딩을 위한 고심의 결과로 보이기도 하다.

 

 

만났다 하면 싸우고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데다가 속속들이 드러나는 정황이 갈수록 콩가루인 이 고령의 가족 이야기는 소설에서나 영화에서나 그 모든 풍파 속에서도 이들을 가족으로, 식구로 엮을 수 있는 힘은 함께 나눈 밥에 있음을 분명하게 전한다. 함께 찌개 뚝배기에서 숟가락을 부딪히며 밥을 먹고 서로 고기 한 점이라도 더 먹으려고 눈을 부라리고 입을 쩝쩝거렸던 이 식구들을 지탱했던 힘, 가족이게 했던 동력은 바로 그 밥에 있었음을 말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새롭게 식구가 된 인물과 라면을 끓여먹는 인모와 여전히 삼겹살을 사 들고 집으로 들어오는 엄마의 모습은 함께 밥을 나누어 먹는 식구가 결국 가족으로 탄생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