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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런닝맨] 시리즈를 이어갈만한 오합지졸 캐릭터들, 달리기 시작하다

 

런닝맨(2013)

(첫술에 배부르지는 않지만)

시리즈를 이어갈만한 오합지졸 캐릭터를 안착시킨 것은 수확

 

잡혔다 하면 수갑도 풀고 도망치는 '도망전문가' 차종우(신하균). 하지만 낮엔 카 센타 직원으로, 밤엔 콜 전문 기사로 나름 바르게 살아가려 한다. 이유는 전과자 아버지 덕에 일찍 철이 든데다 관계까지 소원해진 아들 기혁(이민호)과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함이다. 어느 날, 거액의 콜비를 제안하는 '대박손님'을 만나 들뜨지만 그 손님이 차 안에서 숨진 것을 발견하게 되고 졸지에 살인자로 누명을 쓰게 된다. 엉겁결에 도망자 신세가 된 차종우. 그를 쫓는 조직들의 실체가 하나씩 드러나며 '대박손님'의 죽음 뒤에 국가적 비밀이 숨겨져 있음이 드러난다.

 

 

영화 <런닝맨>은 헐리웃 스튜디오인 '20세기폭스'에서 (공동)제작, 투자, 배급을 시도한 첫 한국영화라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1989년 톰 행크스 주연의 <>을 시작으로 국내 직배를 시작한 '20세기폭스'가 한국영화의 제작,투자,배급을 하게 된 것이다. 직배에 대해서 날 선 경계를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런 직접 투자 형식을 환영하게 된 것이 현실의 시장 상황이 되었다. 어쨌든 그런 화제 속에 공개된 영화는 잘 빠진 헐리웃 시리즈물의 시작을 보는 듯이 매끈한 매력이 있지만 단점을 확실히 드러내는 시나리오의 단면 때문에 맥 빠지게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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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남은 것은 캐릭터이다. 향후 최소 3편까지는 시리즈로 이어갈 만한 활용도 높은 캐릭터와 (전형적이긴 하지만) 캐릭터간 관계도를 구축한 것은 이 영화의 득이다.

십대 때부터 시작된 각종 전과와 그로 인해 '도발 전문'이라는 명성(?)을 얻었고 18살 차이 나는 아들과 함께 사는 평범하고 철없는 30대 아빠 차종우(신하균), 똑똑하면서 싸움 잘하고 아버지와 감정적 대척점에 선 아들 차기혁(이민호), 정의감 넘치지만 허술하고 빈틈 많은 형사 안상기(김상호), 용감하고 거친 B급 매체 여기자 박선영(조은지), 변태 성향이 다분한 에로영화의 '본좌'이자 컴퓨터 네트워크 전문가 장도식(오정세)의 조합은 사건을 달리하여 어떤 적들과 붙여놔도 이야기를 이어가기 좋은 캐릭터들이다. 캐릭터들간에 정, 의리, 애정, 질투, 배신 등의 감정을 녹여내기도 좋은 이른바 '런닝맨 오합지졸'이라고 하고 싶은 조합이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완성도면에서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이 조합이 다시 뭉쳐 등장하는 2편이 나온다고 해도 극장을 찾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치 <미션 임파서블4:고스트 프로토콜>의 엔딩에서 이단 헌트의 팀이 다시 구성될 것 같아 뿌듯했던 때와 같고 (역시 아쉬운 점이 있었지만) 저 사기꾼 점쟁이들이 뭉친 걸 또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했던 <점쟁이들>과도 유사한 감정이었다.

 

 

도망과 추격을 골격으로 캐릭터의 장점이 부각되는 영화인 탓에 뤽 배송의 <택시> 시리즈가 연상되기도 하는데 그보다 전반적으로 브루스 윌리스의 <다이하드>를 연상하게 한다. <다이하드>의 제작사 역시 '20세기폭스'이다 보니 더 연결 짓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만, 보통의 형사가 거대한 조직의 테러에 계속 연루되며 일이 꼬이고 죽지도 못하고 죽을 만큼 고생만 하는 <다이하드>의 존 맥클레인의 인상은 고스란히 차종우에게 입혀진 느낌이다. 형사와 도발전문 전과자라는 차이는 있으나 뭔가 거칠면서도 귀여운 구석이 있는 부드러운 마초의 인상을 두 캐릭터 모두 갖고 있다. 차종우가 존 맥클레인보다 좀 더 갖고 있는 것이라면 코믹한 설정이라 하겠다. 특히 티격태격 소원한 아들과 얽혀 의기투합하는 후반부에서는 저절로 <다이하드5>가 연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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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액션은 기대 이상이었다. 광교 사거리와 종로 일대, 상암 월드컵 경기장 등 서울 도심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액션 시퀀스는 스탭과 배우들의 고생이 대단했겠다 싶을 만큼 볼거리를 제공한다. 액션과 코미디를 절묘하게 섞어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포인트도 좋았다.

차종우를 위기에 처하게 만든 적의 실체가 공개될 때는 조금 놀랍기도 했다. 무기 수입의 비리를 다루며 미국과 프랑스 정부 그리고 대한민국 국정원까지 비리의 온상으로 그리는 것이 꽤 과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이지 않는 국가 조직의 비리에 의해 피해를 보는 민간인과 그로 인해 엄청 고생을 하게 되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오합지졸'이 거대 조직을 이겨내는 이야기는 흡인력이 있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허술한 이야기의 개연성에서 발견된다. 영화에서 좋았던 것으로 코미디와 액션을 말할 수 있다면 가장 실망스러웠던 것은 미스터리이다. 이 부분에는 논리와 치밀함을 느끼기 힘들다. 너무나도 우연하게 일이 풀리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설정이 어느 부분에서는 실소를 금치 못할 만큼 황당하다. 덕분에 국정원 요원을 비롯한 적들은 갈수록 우스꽝스럽고 허술해 보인다. 팽팽하게 대립하지 못하고 허술하게 무너지는 적의 묘사까지 쉽게 쉽게 가려는 헐리웃 영화의 단점을 고스란히 가져온 듯한데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을 듯 하다.

 

영화의 엔딩씬은 그 모든 난리법석을 겪고 난 후 구급차에 실리기 전 차종우와 이른바 '오합지졸'이 함께 사진에 담기는 장면이다.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손가락으로 V자를 만들고 환하게 웃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 번 그 캐릭터에 넘어갔다. '에이, 이 오합지졸이 등장하는 속편이 나오면 한번 더 보러 와야겠다.'. 이 정도로 느꼈다면 <런닝맨>은 시리즈의 시작으로서 해야 할 최소한은 했다고 봐야겠다. (마치 당연히 시리즈로 나올 것이라고 확신하며 김칫국 마시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