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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롱 폴링] 그렇게 어머니와 아들의 밤은 함께 할 수 있게 된다.

 

롱 폴링

그렇게 어머니와 아들의 밤은 함께 할 수 있게 된다

 

로즈(욜랭드 모로)는 밤의 어둠 속에서 기어 나오는 남편을 차로 들이받아 죽인다.

얼마 전 남편이 음주운전으로 한 소녀를 죽게 했던 바로 그 자리에서 똑같이 여자는 남편을 들이받는다. 남편의 오랜 폭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여자는 그 일을 계기로 길을 떠난다. 떠나봐야 갈 곳은 16살에 역시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가출한 아들 토마스(피에르 모레)의 집이 고작이다. 마지못해 어머니를 받아들이는 게 역력한 아들과 어쩌면 오래 전부터 그 아들 하나만을 의지하며 살아왔으리라 짐작되는 어머니의 동거가 안정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로즈를 남편 살해 용의자로 추적하는 형사와 그 사실을 캐내려는 아들의 기자친구가 끼어들면서 어머니와 아들의 삶은 더욱 불안한 상황으로 몰리게 된다. 떨쳐내고 싶은 과거로는 한 발짝도 돌아가고 싶지 않은 아들의 밤과 가까스로 삶의 덫을 헤치고 나온 어머니의 밤은 함께 할 수 있을까.

 

 

그녀에게는 아들이 하나 더 있었다.

3살 때 익사 사고를 당한 아들이 큰 아들이고 지금 살아있는 것은 둘째 아들이다. 첫째 아들을 지키지 못한 것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러나 남편은 그 후로 돌변하기 시작했고 그녀는 이유 없는 폭력에 시달리며 불안한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그녀는 왜 그 시궁창을 벗어나지 못했을까. 곧 떠날 듯 가방을 싸고 그것을 들고 나서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저 시늉일 뿐이다. 마치 무슨 의식을 치르듯 가방을 들고 나간 여인은 거실을 돌아 다시 방으로 돌아간다. 그런 의식을 치르며 그녀가 속으로 기도를 했다면 그것은 그녀의 아들을 위한 것이었으리라.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가출한 아들 토마스가 그녀의 마음 속에는 늘 장애로 남는다.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지 못한 이유를 추궁하는 아들에게 '아들인 네가 그 이유' 였다고 말하는 어머니를 아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혼자서 도망치듯 그 늪을 빠져 나오고 그 후로도 혼자서 괴로워했던 자신과 달리 엄마의 생각과 행동과 결단에는 늘 아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 리가 없다. 그런 엄마의 등장이 아들은 편하지가 않다. 엄마조차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의 일부일 뿐일지도 모른다. 심지어 자신이 마음 속으로만 품었던 칼날을 휘두른 어머니에게조차 분노를 느낀다. 자신의 화를 제 상대에게 풀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 분풀이를 하는 전형적인 정신병이다. 하지만 어머니의 경우는 다르다. 마지막까지도 그 아들은 그녀의 마음 속 중심에서 떠나지 않는다.

 

 

감옥 같던 남편의 집에서도 짐을 싸 들고 떠나는 의식만을 벌였던 여인에게 해외로 도피하겠다는 계획은 역시나 의식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형사의 수사망을 피해 도망가던 그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는 곳마다 아들에게 전화를 걸고, 아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마치 따라와서 나를 잡으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 같다. 엄마는 어쩌면 해외로 떠나는 것이 아들을 다시는 볼 수 없는, 어쩌면 아들에게 자신의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살인을 저질렀지만 그것은 부끄러운 죄가 아니며 그것으로부터 도망가는 것도 비겁한 것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도망치지 않는 어미의 모습, 자신은 물론이요 아들을 괴롭게 했던 그 괴물을 처단한 어미가 비로소 그 모든 것을 떠안기로 결심한 마지막 순간, 그녀가 존재를 확인하려는 유일한 대상도 '아들'이다. 그 아들을 보고 하늘을 보며 당당하게 미소 짓는 표정은 마치 그 어머니의 모든 것은 아들이었다고 말하는 것 같다.

 

 

밤이 되어 어둠이 내리면 어둠은 낮의 빛이 비췄던 것들을 가린다. 여인이 겪었던 모든 상처는 그 어둠 속에서 가장 활발히 그녀를 괴롭히고 감쪽같이 모습을 감춘다. 그러면서 여인의 마음 속에도 밤을 만든다. 여인이 남편을 죽이고 도피 행각을 벌이며 아들을 만나고 또 도피행각을 벌이는 것은 순전히 여인의 마음 속에 있는 밤이 내리는 명령이다. 어둠에 가려지고 양육되어진 여인의 마음 속 밤은 도피를 계획하는 듯 하나 그 마음은 끝내 도피를 허락하지 않는다. 아들을 향한 흔적을 남기는 여인의 마음은 여인의 밤이 그렇게 암울하지만은 않음을 보여준다.

어머니의 밤은 빛을 향하고 있지만 아들의 밤엔 빛이 희미하다. 아들의 밤은 빛을 찾으라고 명령했고 그래서 아들은 가출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떠나왔음에도 아들의 밤이 지닌 빛은 희미하다. 여기에 어머니의 밤이 찾아온다. 빛을 향하는 어머니의 밤은 희미한 빛만 남은 아들의 밤을 찾아오고 자신이 찾아온 빛이 그 아들의 밤 속에 환하게 존재하고 있음을 알려주려고 한다. 이제 아들의 밤은 커다란 빛을 지니게 됐고 그렇게 어머니와 아들의 밤은 함께 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