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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똑같다

샹딸로 가든에서

 

그렇게 이야기가 잘 통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우연히 샹딸로 가든(Chantallo Garden)에서 만난 녀석과 나눈 두 시간여의 대화. 몇 년간의 이야기를 몇 년 만에 만났다 한들 정신 없이 나눌 만큼 친밀한 사이는 아니었는데, 샹딸로 가든의 힘이었을까. 어쨌든 예상치 못한 맛있는 대화의 끝에 우리는 다음 여행의 목적지로 같이 향하기로 결정했다.

중앙역으로 가는 길, 기차시간이 10여분 남았으니 여유를 부릴 틈은 없었다. 갑자기 같은 여행지를 정한 일행이 생기자 혼자 다닐 때보다 긴장이 덜 되기도 더 되기도 하는 묘한 기분이 들었으나 그 기분의 정체를 분명하게 할 여유가 없이 역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복잡한 중앙역의 계단을 올라 플랫폼을 내려다보니 총 4개의 레일이 보인다. 그리고 두 레일에 기차가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다. 1번 레일엔 샹딸로 달라스 익스프레스가 3번 레일엔 샹딸로 달라스 프리미엄이 세워져 있었다.

우리의, 그렇다 졸지에 우리가 되어버렸다, 목적지로 향하는 기차는 무엇일까? 비슷한 이름이지만 각각 정지하는 역이 달라 헛갈릴 뿐이었다. 순간 질문해야 할 사람은 나라는 것을 직감했다. 똑같이 헛갈려 하고 있었지만 이 때 나서야 할 사람은 나라는 걸 알고 있었다.

10미터쯤 앞에 갈색과 검은색이 섞인 머리를 느슨하게 땋은 두 명의 10대 소녀가 지나간다. 피크닉을 다녀오는 건지 피크닉 박스를 손에 들고 있었다. 그 소녀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언어를 흉내(그래, 흉내가 맞다. 흉내라도 됐다면 다행이었다)를 내며 '샹딸로 블라블라블라~?' 했다. 내 흉내가 어색하다는 건 그 소녀들의 반응으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뭔가 재미난 걸 발견했지만 드러내 웃지 못한 채 서로 속닥이고 키득거리며 수줍은 듯 이방인을 바라보는 두 소녀. '샹딸로 블라블라블라...!' 돌아온 대답은 예상보다 길었지만, 진지한 두 소녀의 표정을 더해 답을 유추해낼 수 있었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두 소녀를 보내고 뒤돌아 녀석을 봤다. 내가 열심히 흉내 내고 있던 모습이 뭔가 재미있었던지 피식 웃고 있었다. 뭐가 웃긴 건지, 날 보고 웃는 건지 그 웃음의 정체를 분명하게 할 여유가 없이 우리는 플랫폼을 향해 내달려야 할 시간이었다.

샹딸로 달라스 프리미엄이 있는 3번 레일에선 벌써부터 기차가 경적을 울리기 시작했다. 키만큼 커다란 배낭을 단단히 메고 녀석에게 오라는 신호를 보낸 후 3번 플랫폼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3번 플랫폼을 향해 뛰는 사람은 없었다. 오직 나와 그 녀석뿐인 듯, 기차의 경적 소리 사이로 뛰는 나의 호흡과 뒤에서 따라오는 녀석의 호흡이 번갈아 박자를 맞출 뿐이었다._<샹딸로 가든에서>

 

 

꿈이라는 게 참 오묘하다. 요 며칠 사이 꾼 꿈들이 현실과 접하는 부분이 신기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피곤한 일정 후 잠시 빠져든 초저녁 잠에 꾼 꿈의 잔상이 남아 그 꿈 이야기를 적어봤다.

있는지도 가 본 적도 없는 '샹딸로 가든'이라는 곳에서 벌어진 초저녁 꿈이야기.

그러나 그 꿈 속에는 10여년전 떠났던 유럽 배낭여행의 추억이 조각조각 담겨있었다.

신기한 나와 꿈의 대화. 그래서 이렇게 기록을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