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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똑같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공간의 개발이 시민의 계발로 이어지기를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DDP

개발이 계발로 이어지기를


과거와 현재, 보존과 개발, 역사와 미래라는 관점이 부딪히며 논란이 있었던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파크(DDP)가 지난 3월 개관했다. 

동대문 운동장이 오랫동안 자리하고 있었고 노점 등 상권이 형성돼 늘 북적이던 공간은 대표 거점이었던 지하철역의 이름이 동대 문운동장역에서 동대문 역사문화공원역으로 탈바꿈한 것처럼 변화를 꾀했다. 

이라크 출신이면서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건축가 자하 하디드에게 이 공간의 디자인을 의뢰했고 12개월간의 디자인 작업과 66개월간의 시공기간을 거쳐 완성됐다. 애초 예상했던 공사비용의 2배에 달하는 약 4,900억원의 비용이 들었고 이런 저런 비용을 감안하면 총 1조원의 예산이 투입된 결과라고 한다. 




서울성곽을 형성하는 흥인지문과 광희문을 품고 연결하는 공간이기에 이 공간의 개발은 초기 논란이 있었다. 동대문 운동장을 들어내면 그 안에 무수히 파묻힌 유적들이 드러날 것이기에 그것을 보존하고 가꾸어 역사적인 터로 만들었어야 한다는 주장도 들려온다. 실제로 공사 과정에서 '이간수문(二間水門, 도성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물을 빼기 위한 장치)' 등 유적들이 발견되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의미있고 서울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공간인데 해외의 건축가를 섭외해 12개월만에 디자인을 완료했다는 것은 너무 성급한 개발논리의 결과가 아니었냐는 지적과 우려는 설득력이 있다. 그런 지적과 우려를 의식한 듯 완성된 공간은 이 곳이 어떤 공간이었고 무엇이 존재했던 곳이었는지 표시하는 것에도 신경을 쓴 것같다. 동대문 운동장의 조명탑을 유지하고 과거 성화로도 전시해뒀다. 이간수문처럼 발굴된 유적은 정비하여 그 흔적을 느낄 수 있게 했고 기와로 수로나 집터를 잡아뒀던 흔적 또한 훼손하지 않고 유지하려는 흔적이 보인다. 자하 하디드 또한 이 공간의 역사적 의미를 보존하고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연결고리로서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를 디자인했다고 한다. 


"우리의 목표는 가장 분주하며 또한 역사적인 서울 도심 한가운데에 문화적 허브를 세우는 것이었다."

"동대문 디자인 공원은 다양한 문화적 프로그램과 그 곳의 역사를 새로운 경관 속에 중첩시키고, 수없이 많은 빈공간과 층위가 다른 여러 공간들을 포개어 놓음으로써 이 곳을 찾은 사람들로 하여금 디자인의 혁신성, 동시대의 문화, 역사적 유물 그리고 새롭게 생성되는 자연을 잠시 바라보게 한다."

_자하 하디드 아키텍츠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는 전시와 이벤트를 진행할 수 있는 공간과 쉼터로서의 공간, 사무 공간 등으로 마련됐다. 개관과 함께 서울패션위크 행사가 이 공간에서 열렸고 현재와 이후에도 다양한 이벤트의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겠다. 특히 개성있는 외관을 지닌 공간은 여러모로 시선을 끌만하기에 가볼만한 곳에 목마른 서울 시민들의 발길도 끌 것으로 보인다.


논란과 우려, 재개발에 대한 의지, 미래를 향한 비전 등이 만나 완성된 공간은 역사적 공간에 외계에서 온 무언가가 정착한 듯 이질적으로 보이긴 한다. 국민의 혈세가 쏟아부어져 완성된 공간이기에 투입된 비용이 주는 부담을 어떤 식으로 해소하고 유지해나갈지에 대한 책임 또한 따르는 공간이다. 이제 첫발을 내디딘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가 우려를 불식시키고 서울의 역사와 정체성을 지키는 공간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앞으로의 고민과 노력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개관 기념으로 진행되는 전시들은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의 생성에 대해 가졌던 우려를 불식시키고 이 공간의 지향점을 선포하기 위해 기획된 것처럼 보인다. 매년 5월과 10월 두 차례에만 전시를 진행하는 간송미술관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귀한 기회를 개관기념 특별기획전 <간송문화:문화로 나라를 지키다>로 마련한 것은 서울의 역사이기도 한 이 공간에 대한 의미를 부각하는 전시로 보인다. 역시 개관기념 특별 기획전인 <스포츠 디자인:과학,인간,패션 그리고 승리>는 동대문 운동장의 터였고 패션상가가 밀집했고 이제 아시아의 패션 허브로 칭해지는 이 공간의 의미를 담은 전시로 보인다. 

개관기념 세계 디자인 초대전인 <자하 하디드_360˚><엔조 마리 디자인><울름디자인과 그 후:울름조형대학 1953-1968>은 각기 이 공간의 정체성을 나타내고 디자인과 건축의 기본을 사명처럼 지키면서 새로운 도전을 행했던 디자이너와 건축가의 정신을 전한다. 정체성을 변질시키지 않고 기본을 잃지 않겠다는 각오를 이 공간을 개관하며 피력하기에 맞춤인 기획전으로 보인다. 



'DDP 개관기념 전시 통합권'은 9,000원의 입장권으로 <자하 하디드_360˚><엔조 마리 디자인><스포츠 디자인:과학,인간,패션 그리고 승리><울름디자인과 그 후:울름조형대학 1953-1968>전을 모두 관람할 수 있다. 4개의 전시를 하루에 봐야하는 부담이 있지만 3~4시간의 투자로 전시를 알차게 즐길 수 있는 통합권으로서 이용 가치가 있었다. 

각 전시는 전통의 보존과 역사적 유적의 유지, 올곧은 정신과 지향이 반영된 디자인과 건축의 근본을 생각하게 만들어 새롭게 탄생한 이 공간이 혈세를 쏟아부은 겉멋으로 치장한 공간이 아닌 근본을 지키며 현재를 만들어나갈 공간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듯 하다. 이 공간의 개발이 시민의 계발로 이어지도록 하겠다는 포부같은 것이 담겨있다고나 할까.   



<자하 하디드_360˚>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를 디자인한 건축가의 작품 세계를 만날 수 있다. 특유의 선과 재료의 사용, 전등과 테이블, 구두와 장신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디자이너와 협업하며 이룩한 자하 하디드만의 정체성을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엔조 마리 디자인>

이탈리아의 건축가 엔조 마리는 실용적인 디자인, 사용자를 배려하는 디자인의 기본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여 전시를 보는 동안 정신이 번쩍 들고 머리가 맑아지는 체험을 선사했다. 

판자에 망치로 못을 탁탁 박으며 완성되는 의자와 함께 '디자인 자급자족-아우토프로제타지오네'를 설명하는 공간부터 허세의 마음가짐을 저멀리 보내버리게 만든다. 겉멋을 부리며 그것을 디자인이라고 착각하고 팔아대는 속물들을 향한 이 할아버지의 따끔한 일침에 정신이 번쩍 든다. 

IKEA제품을 사용했을 때 침대와 책장을 조립하고 분해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실용적인 디자인은 단순함에서 나온다는 것을 느꼈고, 간단한 구조를 알게 되자 자급의 가능성 또한 느꼈던 것이 떠올랐다. 그 때의 깨달음과 의지가 엔조 마리 전을 보면서 다시금 고개를 들었던 것이다. 나에게 망치와 못과 판자를 허하라, 물론 설계도면과 함께^^








<스포츠 디자인:과학,인간,패션 그리고 승리>

이 전시는 운동 경기장이었고 패션의 중심인 동대문이라는 공간에 어울리는 기획전이다. 이 공간은 바닥과 벽, 천장을 각종 스포츠 기구들을 전시하며 채우는데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스포츠의 가능성에 압도되는 인상을 받았다. 동시에 크기를 체험하는 것에 이 전시의 특장점이 있다. 자동차 레이싱에 사용되는 차, 카누와 카약 등의 실제 사이즈 앞에 입이 벌어진다. 벽면에는 펠프스, 샤라포바, 메시, 야오밍 등의 신체를 본 뜬 그림이 그려져 있어서 그들의 체구를 짐작할 수 있다. (실사이즈 밀랍 인형이 전시됐다면 더욱 인기 있었을 듯, 동시에 입장료도 올랐겠지만...)

이상화, 박태환, 황선홍, 김태균, 박찬호 등 스포츠 스타들의 의상과 기구 등이 전시되어 있어서 역시 실제 사이즈를 체험할 수 있다. 김태균 선수의 유니폼을 보면서 박물관에 전시된 장군의 갑옷을 보면서 그 거대함에 감탄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울름디자인과 그 후:울름조형대학 1953-1968>

현대 디자인 교육의 산실이자 영화 등 다양한 미디어로의 확장을 주도했던 독일의 울름 조형 대학. 16년이라는 짧다면 짧은 기간동안 이룩한 토대와 그것이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디자인 사조임을 느낄 수 있다. 엔조 마리가 그러했던 것처럼 실용성에 새로운 시각을 더했던 이들의 디자인은 이미 과거의 것임에도 활짝 웃는 그들의 흑백사진처럼 여전히 생동감을 전하고 있다. 

'문제해결을 위해 직관에서 방법으로, 세부에서 체계로, 제품에서 과정으로, 개인에서 다학문적인 디자인팀으로' 실무와 이론을 균형 잡아 현대 산업디자인 및 디자인 교육의 새 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소의 요소로 최선의 기능을 최대한 활용'하는 그들의 디자인 철학은 현재에도 여전히 힘을 발휘한다. 

엔조 마리와 마찬가지로 사회적인 변화, 사회 참여의 목소리를 거두지 않았던 울름 조형대학은 그런 요소들 때문에 정치적 공격의 대상이 되고 후원이 더이상 이뤄지지 않아 폐교에 이르렀다. 정의와 휴머니즘, 정신의 가치를 교육하던 이 학교의 시작과 끝, 그 영향력을 전시를 통해 접하며 정신의 올곧음과 지향하는 바의 올곧음의 가치를 다시금 깨닫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