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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운전사


송강호가 필요한 이유, '강호 공감'!



1980 5월의 광주가 다시 한 번 스크린에 그려진다. 민주주의를 무시하고 권력을 향한 야욕에 불탄 신군부에 저항하는 국민들을 무력 진압하고 학살했던 현대사의 비극. 언론에 제대로 보도되지도 못한 채 왜곡되고 은폐되었고 그 시간 동안 군부의 총탄과 곤봉에 민중은 쓰러져갔다. 아직도 민중을 향해 최초 발포 명령한 장본인을 비롯해 진상 규명도 제대로 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해소되지 않은 아픔, 규명되지 못한 진실, 처벌을 피해간 죄인들이 공존하는 현재인만큼 계속된 문화 예술 속 5∙18광주민주화운동 불러내기가 필요한 것이리라.   

 


두 이방인, 광주를 목도하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다시 소재로 삼은 영화 <택시운전사>는 어떤 이야기를 담으려고 했을까. 그 출발점은 광주의 실상을 전혀 몰랐던 두 명의 이방인에 있다. 제대로 된 언론보도 한 줄 없었기에 광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몰랐던 서울의 택시운전사 김만섭(송강호)과 심상치 않은 문제가 발생했음을 직감하고 실상을 취재하기 위해 광주로 향하는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가 그들이다. 광주의 실상을 몰랐던 두 이방인이 광주에서 벌어지던 비상식적이고 부정한 실상이 만든 아픔을 목도하게 되고 그것이 두 사람을 어떻게 움직이게 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이 영화가 담고 싶은 이야기로 보인다. 그 이야기 안에서 사람을 사람이게 하는 공감의 힘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영화의 주인공이 된 두 이방인은 80 5월의 광주를 목도한 실존 인물이다. 독일 방송국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의 현장을 필름에 담아 서방국에 폭로한 인물로 2003'2회 송건호 언론상'을 수상했다. 당시 수상 관련 인터뷰에서 그는 말했다. "용감한 한국인 택시 기사 김사복씨와 헌신적으로 도와준 광주의 젊은이들이 없었다면 다큐멘터리는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의 모티브가 된 이 기사에서 언급된 택시 기사 김사복씨가 서울의 택시 운전사 김만섭으로 영화에 담겨졌다. 그리고 그 김만섭을 통해 공감의 힘을 더욱 크게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독일 기자 힌츠페터는 분명한 이방인이다. 외국인으로 한국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인물이다. 한편 서울의 택시 운전사 만섭은 이방인이 아닌 것 같지만 힌츠페터보다 더한 이방인이다. 영화가 조명하는 광주의 실상에 대해서는 말이다. 같은 한국에 사는 한국인이지만 서울에서 300km 남짓 떨어진 광주에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알 수도 없게 만드는 환경에 처해진 더 없는 이방인이다. 그에게 광주란 왕복 운전 비용으로 10만원을 받으면 밀린 월세를 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해주는 목적지였을 뿐이었다. 기자 정신에 충실한 힌츠페터에 의해 우여곡절 끝에 광주에 진입하게 되고 통금 전에 서울로 돌아오는 것에 집중하지만 광주의 실상을 목격한 후 심리적으로 가장 요동치는 인물은 힌츠페터가 아닌 만섭이다. 힌츠페터의 서사는 용감한 기자 정신을 발휘하여 광주의 실상을 세상에 알린 위대한 인물로 묘사된 것으로 역할을 다한다. 그러나 만섭의 서사는 홀로 어린 딸을 키우며 생활비에 쪼들리고 집주인 눈치 봐야 하는 소시민이 한 나라의 다른 한 쪽에서 벌어지는 비극을 경험하고, 국민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입을 틀어막는 정권의 실체를 목격하며 롤러코스터를 탄 듯 변화무쌍하게 묘사된다. 이에 관객은 두 사람의 이방인 중에 만섭에게 포커스를 맞추게 된다. 광주의 실상에 대해서 눈,,입이 막히고 살기에 급급했던 만섭도, 그 실상을 알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만섭도 곧 영화를 보는 우리 자신의 모습임을 느끼게 되고 그가 느끼는 감정의 변화에 공감하게 된다. 그것은 이 영화의 제목이 '푸른 눈의 목격자'가 아닌 '택시운전사'가 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송강호라는 배우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했을 것이다.

 


"아빠 어떡해"

송강호라는 배우가 짓는 공감이라는 집

 

'5∙18의 엄마가 4∙16의 엄마에게'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기억한다.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군부의 폭력과 흉탄에 자식을 잃은 부모가 4.16세월호 참사로 자식을 잃은 부모를 향해 보내는 위로와 용기의 메시지가 담긴 현수막이다. "당신 원통함을 내가 아오. 힘내소. 쓰러지지 마시오."라는 문구는 여전히 진상 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은 현대사의 두 비극을 공유하는 부모의 마음이 담긴 공감의 메시지다. 그 공감의 힘이 세상을 변화시키리라고 믿는다.



영화 속 만섭의 심리 변화도 이런 공감의 힘이 요인이 된다. 광주에서 벌어지는, 눈 앞에서 벌어졌지만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한 만섭은 복잡한 심경을 뒤로 하고 어린 딸이 혼자 있는 서울로 향해 간다. 그러나 주먹밥을 건네던 손길, 자식 잃고 정신 잃은 짐승처럼 흐느끼던 어미의 모습이 그의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가 다시 광주로 돌아가 독일 기자 힌츠페터를 돕게 되는 추동력은 자식을 사랑하고 염려하는 아비의 자식을 염려하고 슬퍼하는 부모를 향한 아픔의 공감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그 공감이 힘이 되고 그 힘이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향하게 하는 힘이 되어준다는 믿음을 다시금 다지게 한다. 사람 사는 세상에 사람을 사람이게 하는 힘이 그런 공감에서 시작됨을 생각하게 한다.

도로 사정을 복잡하게 만들어 자신의 영업을 방해하는 대학생 시위대를 보면서 혀를 차던 만섭이 택시에 영어책을 두고 내린 대학생의 뒷모습을 안쓰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깊은 눈에서도 그 공감의 힘이 느껴진다.  

 


관객에게 이 공감의 힘을 전달하는 공의 9할은 송강호라는 배우에게 마땅히 돌아가야 한다. 소위 '강호 공감'이라고 부르고 싶은 송강호식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연기가 이 작품에서도 어김없이 빛을 발한다. 익숙하고 똑같은 것, 평범한 것을 펼쳐놓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송강호가 담아내는 캐릭터는 결국 늘 감탄하게 만든다. 섬세하지 않을 것 같은 그 얼굴에서 나오는 섬세한 감정의 묘사는 시간이 갈수록 놀랍다.   


영화는 기대했던 것보다 투박하고 꽤나 상투적이다. 장훈 감독의 <영화는 영화다><의형제><고지전>을 되돌아 볼 때 소재나 캐릭터의 힘이 영화적 구성보다 앞서 있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극중 80년을 기억에서 불러내기 위해 사용한 노래가 <단발머리> <3한강교><나 어떡해> 인 것도 익숙한 대중성에 기댄 안일한 선택처럼 느껴진다. 후반부 어디까지가 팩트이고 어디부터가 픽션인지 궁금하게 만드는 판타지적 추격 시퀀스도 기대했던 서스펜스와는 결이 달라 의아하기도 했다. 이런 아쉬움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 영화를 지지하게 만드는 이유는 단 하나다. 송강호의 공감을 이끄는 연기가 그것이다. 문화재로 보호해야 할 연기력이다.

 


나쁨과 아픔이 남아있는 오늘, 함께 나눠야 할 영화의 가치

 

앞서 언급한 위르겐 힌츠페터의 인터뷰에 언급됐던 택시 운전사 김사복이 누구인지는 드러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힌츠페터 기자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꼭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던데 그 만남이 현실이 되지는 못했다.

김사복은 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일까.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겸손함 때문이거나 그 시대가 몸에 배게 한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봤다. 그 겸손함에는 광주에 가기 전에는 실상을 알지 못했고 대학생들의 시위를 보면서도 문제를 문제로 이해하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자성의 시간도 포함되지 않았을까.

다른 한편으로 추측해본 시대가 몸에 배게 한 두려움이란, 80년 광주의 비극을 만들었으면서도 여전히 죄를 부정하고 왜곡하는 그 세력이 아직도 살아서 활개를 치고 있는 세상에서 자신을 드러냈을 때 닥칠 수 있는 보복에 대한 경계심으로 설명할 수 있겠다. 억압의 시대를 살아온 우리 부모 세대들의 몸과 마음에 공포와 경계심을 배게 한 그 시대의 나쁨 때문에 말이다.

그런 나쁨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오늘이기에, 아직도 1980 5월의 광주를 부정하고 왜곡하는 사람들이 숨 쉬는 오늘이기에, 본분을 망각하고 권력에 충성하며 펜을 칼 휘두르듯 하는 언론인들이 잘 먹고 잘 사는 오늘이기에, 여전히 자신은 발포 명령을 내리지 않았고 무고하다고 주장하는 그냥 죽이기에도 아까운 생명체가 사람인 척 하는 오늘이기에 영화적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이 영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공감되어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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