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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

우리는 지옥섬을 탈출했는가?



1945년 일제강점기, 어리고 젊은 조선인들이 실린 배가 있다. 일본의 하시마(端島), 일본의 해상 군함 '도사'를 닮아 일명 '군함도'라고 불리는 인공섬으로 향하는 배는 '1개월만 일하면 집 한 채 살 만한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았거나, 일제가 만든 국가총동원법에 의해 강제 징집되었거나, 영문도 모른 채 길에서 밭에서 끌려온 조선인들을 싣고 있다.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실려있는 배 안은 서로의 사정이 뱃멀미한 오물과 뒤섞이며 시끌벅적하다. 이런 시끌벅적함은 군함도에 도착하자마자 쏟아지는 일본군의 무력에 짓밟혀 사라진다. 노동의 대가를 지불한다는 것은 거짓 명분일 뿐이고 바닥에 물이 흥건한 지하 숙소를 제공받는다. 남성은 1,000m 갱도에서 석탄을 캐는 강제 노동에 시달리고 여성은 유곽으로 끌려가 일본인을 강제로 상대해야 하는 지옥 생활로 내몰린다

 


그때도 있었고 지금도 남아있는 두 가지에 대한 고발 

_일본의 만행 그리고 친일파라는 적폐

 

<군함도>는 일제강점기, 일제에 의해 말할 수 없는 핍박을 당했던 우리 선조들의 아픈 역사를 필름에 담으면서 크게 두 가지를 짚어낸다. 하나는 일제의 만행이다. 강제 침략, 강제 인력 동원, 강제 수탈을 자행하며 조선인들의 삶을 망친 일제의 만행을 고발한다. 목숨을 목숨으로 여기지 않고, 인권을 인권으로 여기지 않았던 일제의 만행에 대해 지금 일본 정부도 진정으로 사과하지 않는 오늘, 이 문제는 영화를 통해 전 세계에 알려질 필요가 있다

다른 하나는 그 일제강점기에 조선인들을 괴롭혔던 조선인 내부의 암 덩어리인 친일 세력에 대한 고발이다. 일제가 내린 국가총동원법을 애국하는 것인 냥 미화하며 동족인 조선인들을 속이고 사지로 몰았던 친일 조선인, 강제 징집의 노동자로 끌려간 상황에서 좀 더 편안한 생활을 보장받기 위해 일본군의 개 노릇을 자처하며 조선인을 감시하고 짓밟았던 친일 조선인, 독립운동단체에서 밀정 노릇 하면서 조선인의 뒤통수를 쳤던 친일 조선인들에 대한 비판과 고발이다

 


일본의 만행과 친일 세력이라는 적폐는 그때에도 존재했고 지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일본은 강제 징집되었던 조선인에게는 지옥 같았던 하시마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신청했다. 그 선정 과정에서 이행하기로 한 약속이 있다. 일본 측은 1940년대 조선인들의 강제 노역을 인정하고 해당 시설의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안내 센터 설치 등을 약속했고, 2017 12 1일까지 이를 실행하여 그 결과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보고하기로 했다. 일본은 아직도 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음을 영화는 시작과 끝에 어김없이 고발한다

지옥 같은 삶을 살았던 그 시기에 동족을 뒤로하고 호의호식하며 친일 했던 세력의 고발과 척결은 아직까지도 대한민국이 해결하지 못한 부분이다. 모두가 힘든 시기였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었겠냐고 친일 세력을 옹호하는 발언이 소리를 높이는 오늘, 다카키 마사오와 그의 딸이 대한민국의 수장이랍시고 일본에 충성하고 일본과의 외교 상황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린 오늘이기에 일제강점기 친일세력에 대한 고발은 어느 때보다 필요하지 않겠는가.



<군함도>는 특히 이 친일세력에 대한 고발에 초점을 맞추는 것 같다. 영화에 반복되는 대사가 있다. '조선 종자는 이래서 안 돼.'라는 대사는 군함도로 향하는 배 안에서 벌어진 싸움 장면과 군함도 탈출을 도모하는 장면에서 등장한다. 민족이고 정의고 필요 없다는 듯 돈을 핥으며 같은 조선인을 팔아넘긴 친일 세력, 강제 징용된 조선인의 노동의 대가를 갖고 거래를 하는 친일 세력에 당할 대로 당한 사람들의 입에서 나올법한 말이다. 같은 민족끼리 등쳐먹는 징글징글한 지옥, '조선 종자는 이래서 안 돼.'는 영화 속에서만 나오는 말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에서도 유령처럼 둥둥 떠다니고 있지 않은가. 뼈 아프게 폐부를 찌르는 자성의 대사는 청산되지 않은 일본의 잔재와 친일 세력이라는 적폐가 여전히 남은 지금, 군함도에서 조선인이 겪은 고난을 단지 과거에 한정된 비극이 아닌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해결되지 못한 우리의 문제로 인식하게 한다. 이 메시지는 소희를 연기한 아역배우 김수안의 마지막 눈빛을 통해 관객에게 질문처럼 던져진다. 우리는 이렇게 죽은 듯이 지옥을 가까스로 벗어났는데 지금 거기 살고 있는 당신들의 세상은 지옥인지 천국인지 묻고 있는 것 같다

<부당거래><베테랑>을 통해 현재 대한민국의 자본과 권력의 뒤틀린 모습을 고발했고, <짝패><베를린>을 통해 내집단의 배신과 비열함을 담았던 감독 류승완이 끄집어낸 일제강점기라는 아픈 역사가 남긴 비극과 문제란 바로 이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왜 류승완이 일제강점기 역사를 담은 영화를 만들고자 했는가에 대한 의문이 하나 제거되는 것 같다.  

 


<명량>의 단점을 고스란히 담은 <군함도>

많아진 인물, 그 누구에게도 깊이 몰입하기 어려운 아쉬움

 

이런 뚜렷한 고발의 메시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만듦새에 대한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일제강점기 친일 세력에 대한 고발과 그것을 현재의 문제로 인식하게 하는 점으로 이전 류승완 감독이 만들었던 영화들과 이어지는 맥을 찾아볼 수는 있다. 하지만 <군함도>가 명확하게 류승완의 색깔을 담아낼 수 있는 이야기였는지는 의구심이 든다.  큰 사건을 축으로 쫓고 쫓기는, 혹은 대립하는 구도의 이야기 안에서 인물의 상황을 1에서 10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류승완 영화의 스타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대다수가 남성의 이야기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런데 <군함도>는 인물과 상황이 극도로 넓고 다양해졌다. 주요 캐릭터 개개인마다 다른 이야기와 감동이 있기를 기대하게 하는 구성이기도 하다. 강제 징집 당해 고초를 당했던 주요 캐릭터 개개인의 한과 분노를 관객이 공감할 수 있게 그려야 하고 그것이 마지막 탈출 시퀀스에서 해소되고 감동을 이끌어내기를 기대하도록 짜여진 판인 것이다. 감정이 과잉된 신파를 원하지는 않지만 <군함도>는 이전 류승완 영화와 달리 많아진 인물들의 감정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전달하는 게 중요한 작품이 아니었을까. 그게 불가능하다면 애초에 주요 캐릭터를 줄이는 것이 나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어떤 인물에게도 크게 몰입이 되지 않고 굉장히 건조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다보니 마지막 탈출 시퀀스에 엄청난 물량이 투입되었고 고생해서 찍었다는 정보는 알고 있으나 정작 마음이 움직여지지 않음을 느꼈다.  

주요 캐릭터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담아내는 것도 아쉬운 마당에 영화는 단역, 조역들의 대사에 힘을 주며 몰입도를 흩트려버린다. 그것이 가장 큰 아쉬움을 남긴다. 이 부분은 국내 역대 관객 동원 1위를 기록한 2014년 작 <명량>의 단점과도 같다. <군함도>에서 관객이 주요하게 봐야 할 주역이 크게 5, 주요한 조역이 2~3명에 이른다. 그들에게만 초점을 맞춰도 관객이 따라가야 할 인물은 충분하다. 그런데 사이사이 단역에게 주어지는 대사들의 비중이 주요 캐릭터에게 주어지는 것보다 더 힘 있게 보인다. 그 대사들은 <명량>보다는 덜 하지만 여전히 쓸데없고 이상하게 끼어든다.

"우리가 이렇게 개고생 한걸 후손들은 알까?" 같은 노골적인 수준은 아니지만 탈출을 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둥게 둥게~' 노래 부르게 하는 설정이나 그 두려움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모든 인물을 다 담아내려는 과욕이자 오지랖으로 느껴진다. 단체로 모여 있다가 자기 대사 할 때 앞으로 나와서 대사하고 뒤로 들어가는 듯한 인상, 관객이 시선을 두지 못했던 낯선 영역에서 툭 튀어나오는 대사가 마치 무대 연극의 리허설처럼 느껴져서 이질감을 준다. 2016년 작 <부산행>에서 좀비 무리를 연기한 단역들의 퍼포먼스처럼 말없이 그 고통과 수난의 시기를 겪어낸 사람들을 표현하고 대사 표현은 주연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게 낫지 않았을까. 다들 애쓰는데 그 대사들 때문에 그만큼의 집중 효과가 사라지는 게 아쉽다.  

그렇기에 <군함도>를 대규모의 제작비와 인력이 투입된 한국형 블록버스터로 설명은 가능하겠지만 류승완에게 꼭 맞는 영화라고 하기는 어렵겠다. 어쩌면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관객 동원이 가장 잘 된 작품이 될 수는 있겠지만 결코 그의 최고작이라고 꼽을 수는 없겠다는 것이다

 


최고의 조합이 곧 최상의 결과는 아닐 수도 있음을 

황정민, 소지섭, 이정현, 송중기, 김수안 등 주연 배우들의 연기는 고루 좋다 . 각 배우가 지닌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노력한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연기다.  

다만 이경영 배우의 발성에는 적잖게 실망했다. 명배우이긴 하나 큰소리로 외치듯이 내뱉는 대사를 할 때 이경영의 발성은 거의 뭉개져 들린다. 캐릭터 때문에 더 그렇게 보이지만 권위만 내세우는 꼰대가 듣기 안 좋은 목소리로 소리치는 것 같다. 같이 붙는 장면에서 송중기의 발성이 더 좋다고 느껴질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다. 여러 작품에 출연하며 한국영화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내는 이경영 배우의 사용법을 좀 더 연구해주면 좋겠다

 


아역 김수안 배우의 연기는 강렬하게 남아 다시 한번 언급하게 된다. 배우가 영리해 보이기도 하고 감독이 소희라는 캐릭터가 보여줄 수 있는 것도 많이 만들어놓은 것 같다. 영화의 마지막을 김수안의 표정으로 짓는 것은 이 영화 전체 중 가장 좋은 부분이다. 앞서 언급했던 그때의 지옥이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지, 우리는 지옥을 정말 탈출한 것인지 관객에게 묻는 듯한 인상적인 장면이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탈출 시퀀스에서 엔니오 모리꼬네의 Ecstacy of gold를 배경음악으로 사용했다. 이 곡은 세르지오 레오네의 영화 <석양에 돌아오다(The Good, The Bad and The Ugly)>의 음악이기도 하다. 클래식 음악을 사용하거나 다른 영화를 위해 만들었던 음악을 배경음악으로 사용할 수 있다. 영화의 분위기에만 어울린다면 말이다.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은 산타 에스메랄다의 Don't let me be misunderstood 를 편곡해서 사용했고, 윤종빈 감독의 <군도>도 리즈 오톨라니의 Days of anger 를 편곡해서 사용했다. 두 곡 모두 오리지널 영화 외에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 빌> 시리즈와 <장고> 등에도 사용됐던 곡이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군도> 모두 서부영화 장르의 성격을 담은 작품이라서 이 음악들의 사용이 어색하지 않았다. 그런데 <군함도>에서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이 나오는 내내 어색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왜 이 결정적인 장면에 이 음악을 쓰고 싶었을지 아직도 의문이다. 좋은 곡이지만 영화에 어울리지 않는다.

 


제작의 규모가 만든 소용돌이

차분하게 영화를 볼 여유가 필요

 

류승완 감독의 <군함도>는개봉하기 전에 이미 기대감으로 폭발 직전까지 간 작품처럼 보인다. 전작 <베테랑>으로 1,3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여 천만 감독이라는 수식을 달게 된 감독 류승완은 어깨가 무거웠을 것이다. <베테랑>으로 모 영화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수상했을 때도 류승완 감독은 <군함도> 작업을 하고 있던 중이라 시상대에 오르지 못했다. 대리수상자가 수상 소감으로 했던 말이 기억난다. '지금 류승완 감독이 반드시 잘 만들어야 하는 작품을 작업 중이라서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다.' 이렇게 얘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반드시 잘 만들어야 하는 작품' <군함도>였으니 감독의 의지가 느껴짐과 동시에 그 부담감도 짐작할 만하다

티저 예고편이 공개됐을 때의 반응도 대단했다. 황정민, 소지섭, 송중기, 이정현이라는 톱스타를 한 영화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것, 엄청난 제작비가 투여된 대작처럼 보인다는 것이 대중의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렸다

개봉 전 마케팅과 홍보도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대규모 일반 시사회와 인터뷰 등 이폭 격처럼 쏟아졌다

이 모든 것은 일종의 소용돌이처럼 느껴졌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 엄청난 각오와 엄청난 기대감이 충돌하고 바로 만들어져 배포되는 홍보 내용과 바로바로 쏟아지는 반응들이 대중에게 여유를 주지 않고 폭격처럼 쏟아졌다. 영화가 담고 있는 역사관에 대한 논란, 감독의 연출력에 대한 논란, 배우의 연기에 대한 논란에 스크린 과대 독식의 문제까지 차분하게 테이블에 놓고 논의를 하기도 전에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소용돌이 속에서 서로에게 꽂히는 것 같다. 그 때문에 이 영화를 보고 차분하게 생각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고 떠도는 평가들에 각자의 의견을 얕게 덧붙이며 같이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 소용돌이에 휩쓸리지 않고 좀 더 차분하게 영화 <군함도>를 영화로 볼 수 있는 여유가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 같다. 최소한 영화 세상은 지옥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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