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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케르크  Dunkirk

 

이렇게도 영화가 된다! 그것도 아주 훌륭하게

 





기대 그 이상, 천재, 갓놀란


1년 전인 2016년 여름에 공개된 한편의 영화 예고편은 금세 화제가 됐다. 잔교 위에서 대기하고 있는 군인들이 공포에 질린 얼굴로 전투기 소리가 가까워오는 하늘을 바라보며 몸을 움츠리는 장면에 뜨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이름만으로도 기대감은 상승했다. 만드는 작품마다 놀라움을 선사하는 이 감독이 이번에는 어떤 작품을 보여줄 지 기대가 컸다.

 

2017 7 20, 마침내 개봉한 작품을 본 후 그 기대는 헛되지 않았음을 느꼈다. 그리고 소리와 인물의 표정만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예고편이 이미 감독이 담고자 했던 작품의 형식을 나타내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란 허투루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계획되고 준비된 방향성을 지녔음을 다시금 믿게 하는 깨달음이었다.

 




<덩케르크> 1940 5 28일부터 6 4일까지 진행된 덩케르크 철수 작전을 소재로 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에 몰려 프랑스 북부 해안인 덩케르크에 고립된 40만 명의 영국군과 프랑스군 등 연합군을 구해내기 위한 철수 작전이다. 고작 30여 킬로미터 거리에 위치한 눈에도 선한 집을 앞에 두고 계속되는 적의 공격에 살 길을 찾지 못했던 젊은 군인들을 집으로 무사히 데려오기 위한 철수 작전을 담아낸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25년 전 영국해협을 항해하며 덩케르크로 향하던 중 이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한다. 오랜 기간 준비한 프로젝트인 만큼 그저 평범한 2차 세계대전 배경의 전쟁영화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역시나 결과물은 놀란의 비상한 머리가 만들어낸 철저한 계획과 음악, 촬영, 미술 등 완벽한 재능이 모여 전에 본 적 없던 방식의 영화로 완성됐다. 이 프로젝트의 시작은 분명 엄청난 도전이었을 테지만 그 결과물은 수많은 영화 만드는 이들에게 도전 정신을 깨우쳐주게 할 정도의 놀라운 성과로 나타난 것 같다. 철저하게 기존의 공식을 벗어났지만 그것으로 또 하나의 공식을 만들어버린 놀란의 이 도전은 기술적 성취 뿐만 아니라 엄청난 감동으로 관객을 놀라게 한다. 철저한 계획과 계산이 만들어낸 작품인 것은 알겠지만 그 공식을 찾아볼 정신 없이 놀라고 감동하기 바쁜 관객인 나는 그저 놀란에게 두 손 두 발 들고 항복할 뿐이다.  머리 좋은 사람이 좋은 생각과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엄청난 성과를 내는 걸 보면서 우린 그를 천재 또는 갓놀란이라고 부르게 되는 것이리라.

 

 



공식을 깨고 새로운 공식을 만들다

처음부터 끝까지 클리셰는 없다


<덩케르크> 3가지의 관점 또는 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3가지의 관점은 각자 다른 길이의 시간을 부여 받고 영화 속에 공존한다. 첫째는 덩케르크 해안에 고립되어 철수를 시도하는 군인들이 위치한 땅의 일주일이고, 둘째는 고립된 군인들을 구출하기 위해 개인 선박을 띄워 덩케르크로 향하는 민간인이 위치한 바다의 하루이며, 셋째는 탈출하려는 군인들을 쉼 없이 공격하는 적의 전투기에 맞서는 전투기 조종사가 위치한 하늘의 한 시간이다.

이 서로 다른 길이의 시간을 부여 받은 3개의 시점과 관점이 덩케르크 철수라는 실화를 축으로 단단하게 달라붙어있다. 주요한 사건을 중심에 두고 시간의 흐름 같은 절차대로 플롯을 짜고 거기에 각각의 인물이 갖고 있는 사연을 집어넣어 살을 붙인 내러티브를 만들어내는 게 많이 보아온 영화들의 흐름이었다. 그런데 <덩케르크>는 그 흐름이라는 공식 따위는 애초에 관심도 없어 보인다. 동일 시간대를 공유하며 클라이막스를 향하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길이의 시간을 품고 클라이막스로 향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동일한 시간대에 있는 것 같다.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할까 싶다. 나로선 상상도 하지 못했던 구성이다.

 



플래시백의 희한한 응용? 영화를 봐야 알 수 있는 마법


사실 '플래시백'이란 기법을 활용하여 영화는 관객이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시간을 재배치하곤 한다. 현재의 순간에 과거의 결정적 순간을 끼워 넣고 관객에게 힌트를 던지는 방식이다. 어쩌면 <덩케르크>는 이 플래시백을 아주 희한하게 응용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3개의 시점의 출발점이 다르더라도 결과적으로 같은 시점에 만나게만 한다면, 그리고 그 만나는 시점이 영화가 다루는 소재의 핵심이자 전부여도 상관없다면 이렇게 구성해도 영화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니 낮의 하늘과 바다를 비추다 갑자기 밤의 덩케르크 해안을 비춘다고 해서 이상하게 보여지지 않는 마법이 펼쳐진다.

<메멘토>,<인셉션>,<다크나이트>시리즈,<인터스텔라>를 보면서 크리스토퍼 놀란이 수학적, 과학적 두뇌가 비범할 것이라는 짐작은 했었다. <덩케르크>를 보면 그가 계획하고 계산해서 완성된 이 마법 같은 구성 역시 그 비범한 두뇌였기에 가능한 게 아니었나 감탄하게 된다. 이유는 이렇다. 덩케르크 해안에서 적이 퍼붓는 폭격의 공포와 싸우던 군인들에게 일주일을 배치하고, 긴박하게 그들을 구출하고 철수하는 데 도움을 주려는 민간인의 항해에는 하루을 배치하고, 창공에서 적기를 추적하는 긴박한 조종사에게는 한 시간을 배치한 것은 다시 계산해보면 일반적인 영화의 시나리오가 각각의 시점에 배분할 시간의 비율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가령 누군가가 덩케르크 철수의 긴박함을 담은 전쟁액션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그 누군가는 연합군이 어떻게 덩케르크 해안에 포위되다시피 한 상황이 되었고 그 공간에서 탈출을 시도하며 무수히 포격의 공포에 떨었을 시간을 가장 많은 비율로 시나리오에 담았을 것이다. 그 사이사이에 그들을 구출하는 작전을 세우고 결정하는 영국군과 정치인들의 모습과 비장한 얼굴이 양념처럼 들어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구출하려고 준비하는 민간인의 모습과 슈퍼마린 스핏파이어를 조종하는 공군의 활약을 배치했을 것이다. 그 개개인의 사연을 관객에게 친절히 풀어내는 것도 빼놓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영화가 2시간 남짓한 러닝타임의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할 때 덩케르크 해안의 연합군의 모습이 5, 바다의 사람들과 공군의 활약이 드라마틱하게 나머지 3할을 나눠 가졌을 것이다. 나머지 2할은 정치인, 군 사령부, 그 외 사람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풀어내는 데 할애했을 것이다. 일반적인 시나리오의 공식대로 해도 분배될 법한 비율을 <덩케르크>의 놀란은 아예 그들의 시간의 길이를 처음부터 다르게 부여해서 자유자재로 배치했다. 그리고 쓸데없이 구구절절한 개인 사연들을 모조리 빼버렸다. 그것이 정치인이든, 군 사령부든, 일반인이든 애초에 전쟁영화 또는 감동을 주는 영화가 갖춰야 할 요소라고 생각될 '클리셰'들을 모조리 빼버렸다. 결국 그렇게 해도 덩케르크 철수라는 역사적 사실 속에서 그들은 모두 클라이막스를 향해 가고 하나로 만나게 된다. 이렇게 해도 영화는 완성된다는 것이다, 그것도 이렇게 훌륭하게 말이다. 굉장히 수학적, 과학적으로 영리한 사람이 플롯이라는 기둥에 내러티브를 어떻게 붙여보는 게 가장 효과적일까를 고민하다가 발견한 방식으로 영화가 완성된 느낌이다.

<덩케르크>가 매우 새롭게 느껴지는 이유 역시 어디서 보아왔음 직한 익숙한 장면들, 기능도 없이 여기저기 다 들어가는, '클리셰'를 감독이 의도적으로 배재한 이유도 클 것이다.

 



가치 있는 인간상으로 같이 산다는 것이란


<덩케르크>는 결국 나를 울렸다. 후반부 20분 정도는 거의 흐르는 눈물과 흐느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무엇이 나를 울렸는가. 견뎌내고 배려하고 참아내는 묵직한 인간성이 나를 울렸다. 무시무시한 전장에서도 결코 소멸하지 않는 배려와 용기, 먼저 난 사람들의 나중 난 사람들을 향한 어른스러운 보살핌과 책임감, 인간을 몸뚱이가 아닌 숨쉬는 생명체로 받아들이고 살았든 죽었든 동등한 인격체로 인정해주고 존중하는 마음, 이 모든 옳고 그름의 플러스와 마이너스 극에서 플러스 극을 향하는 인간성의 묘사가 나를 울렸다.

 

집이 보이는 곳에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집으로 데려가기 위한 사람들의 힘겨운 움직임이란 언제나 마음을 울리는 법이다. 그런데 <덩케르크>에서 돌아간 집이란 가족들이 뛰어나와 부둥켜 안고 눈물 흘리는 클리셰 소굴이 아니기에 더욱 감동을 준다. 응원의 술병으로, 응원의 모포로, 응원의 신문으로 존경의 마음까지 표현된다.

 




징글징글한 감독, 독한 감독, 관객을 울리다


후반부 20분은 거의 그런 인간성의 묘사와 감동을 폭격만큼이나 쉬지 않고 쏟아낸다. 얼마 전 재개봉한 <다크 나이트>를 우연한 기회에 다시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단 한가지였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정말 징글징글하게 극단으로 몰아붙이는 이야기를 관객에게 던졌구나 하는 생각 말이다.

<다크 나이트>를 처음 봤을 때도 이런 생각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당시엔 조커의 어마어마함에 더 감탄했으리라. 다시 본 <다크 나이트>에서도 조커의 어마어마함과 괴팍한 쓸쓸함, 심리적 칭얼거림은 엄청나 보였다. 그런데 그보다 조커가 상대하는 배트맨, 지방검사인 하비 덴트, 짐 고든 반장과의 대치가 영화의 끝까지 정말이지 팽팽하게 유지되는 게 보는 나를 진 빠지게 할 정도였다. 이제 해결되었겠거니 하면 트릭을 쓴 조커가 웃고 있고, 이제 됐겠거니 하면 저기서 쓰러졌던 배트맨이 다시 살아나는 게 반복에 반복을 거치니 이 영화가 어떻게 결말을 맺을지, 끝이나 날 지 복잡한 심경이 됐던 것이다. 그야말로 끝이 없어 보이는 무간지옥을 바라보고 있는 기분이었고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껴지자 피로감이 배가됐다. 그래서 크리스토퍼 놀란이 참 징글징글하게 연출했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덩케르크>를 보고 나서도 여전히 놀란은 징글징글한 감독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관객을 처음부터 끝까지 전장의 한복판으로 끌고 가 풀어주지 않더니 마지막엔 결국 철수하고 살아남은 병사들의 감정에 너무나도 이입되게 만들었다. 그 뿐이 아니라 그들을 구출하기 위해 떠났던 사람들의 모습, 마지막까지 멋이라는 걸 놓지 않으며 싸워준 공군 조종사의 모습, 집으로 돌아온 그들을 다독이고 응원하는 사람들의 모습에까지 관객의 감정을 이입시키게 만들었다.

놀란이 <덩케르크>로 관객에게 부린 재주는 그야말로 그에게 두 손 두 발 다 들고 항복하며 주저 앉게 만드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어마어마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한스 짐머의 음악으로 함께 쓴 시


한편 <덩케르크>는 크리스토퍼 놀란과 한스 짐머가 함께 쓴 시처럼 느껴진다. 그 시는 처절한 전장 한복판에 관객을 두지만 마지막엔 가치 있는 삶을 같이 사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대사가 없는 와중에 배우들의 놀라고, 질리고, 고통스러워하는 표정 곁으로 흐르는 한스 짐머의 음악은 대사를 대신하고 관객에게 인물의 감정을 주사 놓듯 주입시킨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펼쳐내는 음악은 징글징글하게 인간성의 플러스 극을 관객에게 꽂고 또 꽂는 놀란의 연출에 전압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그 음악을 배경으로 읽어내는 신문 기사와 인물들의 내레이션은 마치 시 낭송의 순간처럼 느껴지고 숭고한 아름다움에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흐르게 된다.

 

 


마크 라이언스, 톰 하디 그리고 케네스 브래너

내년 오스카 조연상 후보를 고민하게 만든다


배우들이 만들어낸 인상적인 장면들을 기록하지 않을 수 없다. 볼튼 사령관을 연기한 케네스 브래너의 입에서 나오는 Home이라는 단어는 그 때마다 다른 감정으로 마음을 움직인다. 그의 눈빛과 표정은 위기와 감동의 순간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조지(배리 케오간)가 괜찮은지 묻는 '떨고 있는 병사'(킬리언 머피, 영문크레딧에도 shivering soldier로 표기됨)의 질문에 괜찮다고 말하며 아버지 도슨(마크 라이런스)를 바라보는 피터(톰 글린 카니)의 모습이 너무나도 좋았다. 조지에 대한 감정을 꾹꾹 누르고 지금 필요한 감정,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해나가는 모습이 너무나도 어른스럽고 인간다운 모습으로 보였다. 끝까지 조지에 대한 의리와 존종을 보였던 피터의 모습, 그 모습을 연기하는 배우의 동작과 표정, 목소리의 표현도 군더더기가 없어서 참 좋았다.

도슨을 연기한 마크 라이런스의 연기도 압권이다. 슬픔과 불행에 생을 가두지 않고 해야 할 일, 과거보다 미래를 위해 필요한 일, 어른이 후손에게 해야 하는 일을 억지스럽거나 거칠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순리로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그의 아들 피터의 모습은 도슨으로부터 물려받은 인격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슈퍼마린 스핏파이어의 조종사로 활약한 파리어(톰 하디)의 든든함 또한 언급해야 한다. 이제는 놀란 영화의 페르소나처럼 느껴지는 톰 하디의 존재감을 인정하게 만든다. 침묵 속에 묵묵히 의무를 다하는 모습이 감동을 준다.

 



결국 크리스토퍼 놀란은 천재 같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머리가 비상한데다가 생각도 튼튼하다. 그러니 만들어내는 것이 관객을 끊임없이 놀라게 만든다. 영리하면서도 그 머리를 제대로 쓰는 감독, 이 시대에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는 감독이 있음을 행운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 영화가 바로 <덩케르크>.

 


*호이트 반 호이테마의 입이 떡 벌어지는 촬영이 담아낸 영상은 필히 아이맥스에서 관람하기를 권한다. 65mm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이 됐고 역대 최초로 아이맥스 핸드헬드를 사용했다고 하니 더더욱 아이맥스 관람을 권한다. 때마침 용산CGV 아이맥스에 레이저 영사로 선명함이 배가된 아이맥스 상영관이 생겼으니 우선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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