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은 여행자처럼

[오사카-교토 여행] 4. 당일치기 교토 여행

일본 간사이 지역, 오사카와 교토 여행 4


당일치기 교토 여행





오사카 4일차. 

내일 아침엔 눈 뜨자마자 호텔 체크아웃하고 공항으로 가는 일만 남았으니 여행의 마지막 날이나 마찬가지다. 

마지막 날은 교토 당일치기 여행으로 일정을 잡았다. 

오사카 여행 간다고 하니 교토, 나라, 고베 등 간사이 지역 곳곳을 여행하고 오라는 조언을 많이 들었다. 그러나 4박 5일간 곳곳을 돌아볼 것을 상상하니 그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혔다. 

무계획으로 즉흥적으로 시작한 여행이자 간사이 지역 첫 방문인만큼 이번엔 오사카 시내와 교토까지만, 그것도 숙소도 모조리 오사카 시내로 정하고 교토는 당일치기로 다녀오자고 결정한 터였다. 순전히 복잡한 생각을 벗어던지고 가볍게 훌훌 다니자는 생각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우메다역에 도착한 어제, 역사에 여행정보센터가 보이기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티켓 두 장을 구매했다. 하나는 귀국하는 날 공항으로 가기 위한 리무진버스 티켓이고, 다른 하나는 우메다역에서 교토로 가기 위한 패스인 '한큐 투어리스트 원데이 패스'다. 두 티켓을 패키지로 묶어 저렴한 상품이 있어서 한꺼번에 구매했다. 

'한큐 투어리스트 패스(HANKYU TOURIST PASS)'는 사용 시작한 당일에 우메다에서 교토 가와라마치역까지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는 티켓이다. 사이사이 샛길 여행도 가능한 패스지만 당일치기로 교토 관광하는 게 목적인 만큼 샛길로 빠질 루트는 아예 찾아보지도 않았다. 




교토 가와라마치역, 버스정류장 




교토 당일치기이자 간사이 여행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밤새 비는 그쳤고 날씨는 화창했다. 구글 날씨예보를 보니 교토에는 비가 내릴 확률이 50~60%정도여서 어제 3COINS에서 구매한 300엔짜리 우산을 들고 호텔을 나섰다. 결과적으로 우산은 무용지물이 되었다만...



우메다역에서 한큐전철 탑승구로 시간에 맞게 찾아가서 탑승. 

45분 정도 후에 목적지인 '가와라마치역'에 도착했다. 역에서 내리면 바로 여행정보센터 표시를 볼 수 있다. 가이드북을 읽어보긴 했지만 그래도 초행지에서 여행정보센터에 들어가면 지도도 얻을 수 있고 여행 정보도 얻을 수 있어서 웬만하면 방문한다. 


역시나! 이 곳에서 한국인 직원이 상주하고 계셨다. 이미 많은 질문을 받아본 경험이 있으신지 지도를 요청하자 자동으로 여행 안내 상담을 시작해주셨다^^ 지도를 쫘악 펼치시고 가고 싶은 곳이 어디인지 물어보셨다. 당일치기 계획이다 보니 가고 싶은 곳을 찍고 동선을 짜는 것이 필요했다. 가고자 하는 곳을 여기저기 말씀드리니 지도에 위치 표시와 각각의 장소에서 이동하기 위한 버스 루트까지 자세하게 알려주셨다. 이렇게 친절할 수가!!! 덕분에 두 개의 지도를 손에서 놓지 않고 원하는 곳을 잘 둘러볼 수 있었다. 

여행정보센터에서 교토 원데이 버스 티켓도 구매할 수 있다. 500엔으로 하루종일 버스를 무제한 탑승할 수 있는 티켓으로 유용하게 사용했다. 


사실 지도만 잘 보면 문제 없이 찾아갈 수 있는데 아무래도 초행이다 보니 헛갈리기 마련이다. 처음 방문했던 니조성을 둘러본 후 은각사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한 정거장 이동 후 환승을 해야 하는데 환승하겠다고 내린 정류장에 내가 타야 할 버스 노선이 보이지 않았다. 이럴 땐 당연히 현지인에게 물어보는 게 답이다. 때마침 정류장 앞에 검정 바지에 흰색 셔츠를 입은 전형적인 일본의 회사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서 있기에 지도를 보여주면서 위치를 물어보니 갸우뚱 하면서 옆에 있던 아주머니에게도 물어보면서 답을 찾으려고 애를 써줬다. 잠시 뒤 답을 발견한 그는 사거리의 다른 방향에서 버스를 타야 한다고 알려주면서 그 정류장이 보이는 위치까지 안내해줬다. 친절하기도 하다. 이런 경험을 하고나면 그 때부터 몸이 조금씩 풀리게 된다. 동서남북이 파악되면서 현지에 적응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후부턴 지도를 보고 찾는 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여행정보센터에서 얻은 교토 관광 지도 

센터의 직원분이 형광펜으로 위치와 버스 노선을 표시해주심(친절^^)



교토 당일치기 코스는 이렇게 구성했다. 

니죠성 -> 은각사(긴카쿠지) , 철학의 길 

-> 청수사(기요미즈데라), 기온 -> 후시미이나리 신사 


욕심부리지 말고 여유있게 다녀보자고 정한 것이었지만 10시간 동안 저 코스만 다니는 것도 꽤 촘촘한 일정이 되었다. 

교토의 첫 느낌은 조용하다는 것이었다. 조용하고 차분한 느낌. 하긴 오전 10시 언저리에 도착했으니 평일 그 시간대는 어디든 조용하고 차분한 상태이긴 할테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관광지를 둘러보면서 든 생각은 두 가지다. 여긴 정말 '경주'같은 느낌이구나, 그리고 사람이 정말 많구나. 


첫번째 방문지 니죠성.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느껴지는 것은 여긴 정말 관광지구나 하는 인상이었다. 단체 관광 버스가 주차되어 있었고 해외 관광객 뿐만 아니라 일본 학생들이 단체로 관광 대열에 서 있었다. 딱 경주 수학여행 풍경이 연상되는 것이었다. 

니죠성은 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물러나게 한 후, 교토 왕실의 수호본부로 만든 작은 성이었으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손자가 증축해 지금의 거대한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고즈넉한 니죠성, 입장권은 일반 600엔


니죠성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환승하면서 한 번 헤매다 일본 청년의 도움을 받아 은각사(긴코쿠지)에 도착했다. 금각사도 있지만 은각사만 방문한 이유는 동선의 이유도 있었지만 금각사보다 은각사가 더 좋다는 블로거들의 평을 참고한 결정이었다. 

누각에 화려한 금박이 입혀진 금각사와 달리 누각 어디에도 은색은 보이지 않음에도 은각사로 불리는 이유가 있는 곳이었다. 은각사는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의 별장으로 자신의 할아버지가 지은 금각사를 따라 누각에 은을 입히려고 했으나 건물이 완성되기 전에 사망하여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이런 사연이 있는 지라 요시마사의 뜻을 기리기 위해 이름만이라도 은각사로 불렸다고 한다. 

입구에 조성된 정원수 길과 연못, 정원이 꽤 여유로워 보이는 공간이었다. 사람들이 이 공간을 좋아하는 이유가 충분히 느껴졌다. 




은각사(긴카쿠지) 풍경




은각사에서 나와 길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좌측에 '철학의 길'로 들어가는 오솔길이 보인다. 약 2km의 산책로로 인공수로가 흐르는 오솔길이다. 산책로를 따라 예쁜 카페와 아기자기한 공방, 정갈한 교토의 가옥을 보면서 여유롭게 걸을 수 있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길에 있는 작은 라멘집에 들어가서 라멘을 후루룩 먹고 청수사(기요미즈데라)를 향해 버스를 탔다. 



은각사에서 내려오는 길, 라멘 



청수사는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으며 연간 400여 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다고 한다. 역시나 사람이 많았다. 단체로 관광 온 일본 학생들도 많이 보였고, 한국인 관광객들도 목소리로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청수사로 향하는 언덕길인 기요미즈자카 초입에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는 않은데 언덕의 중턱 이후부터 갑자기 사람이 늘어난 인상을 받았다. 이유를 유추해볼 때 관광버스를 타고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이 보이는 지점이 이 언덕 중턱이기 때문인 것 같다.  색감이 예쁜 사찰이고 관광객이 참 많은데 이 곳으로 가는 길은 두 갈래가 있다. 사람 많은 기요미즈자카 옆으로 한 블럭 들어가면 상대적으로 한산한 길이 등장한다. 물론 사람들이 많은 산넨자카와 니넨자카를 지나쳐야 만날 수 있는 길목이긴 한데 그 길로 이동하는 것이 훨씬 교토스럽다고 생각했다. 산넨자카, 니넨자카는 기념품 가게, 카페 등이 밀집한 계단길로 사람들이 북적인다. 이 곳에 교토의 옛 건물 양식을 유지한 스타벅스가 문을 연다는 기사를 봤다. 가뜩이나 사람 많은데 스타벅스 때문에 찾아가려는 사람 덕에 더욱 북적거릴 거리가 될 것 같다. 


그 한산한 길을 따라 걸어내려오다 보면 호칸지라는 저에 있는 5층탑 야사카노토를 볼 수 있다. 높이 46미터에 달하는 탑인지라 청수사로 가는 길에 눈에 띄지 않을 수가 없는 탑이다. 이 거리에서 사진을 찍고 여유롭게 앉아서 탑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휴식이 되는 것 같았다. 

이 길 중턱에는 화려한 색색의 원숭이 인형이 걸려있는 절 '야사카 코신도'도 구경할 수 있다. 기요미즈데라에서 내려오면서 차도를 따라 조금 걸으면 교토의 대표적인 상점가 기온 거리도 둘러볼 수 있다. 




기요미즈네라(청수사) 풍경


니넨자카, 산넨자카 


호칸지, 야사카노토, 야사카 코신도



이제 교토의 마지막 방문지인 후시미 이나리 신사만 남았다. 

하루종일 걸어다니면서 관광을 하다보니 몸이 꽤 지친 상황이었다. 교토역 남동쪽에 위치한 신사에 가기 위해 교토역까지 왔는데 신사로 가는 버스노선은 딱 2개 뿐이고 그마저 하나는 운행 시간이 종료됐다. 오후 5시도 안 됐는데... 

몸도 지쳤고 이 정도면 됐다 싶은 마음으로 교토 당일치기를 마무리하려고 했으나 혹시 모를 기대를 가져보기로 한 그 때, 버스 노선을 알리는 전광판에 후시미 이나리 신사로 가는 버스의 번호가 떴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교토의 마지막 여정인 후시미 이나리 신사로 향했다. 


이 신사에 오고 싶었던 이유는 스필버그의 영화 <게이샤의 추억>의 촬영지였기 때문이다. 선명한 주홍색 기둥 사이를 뛰어나오는 소녀가 장쯔이로 성장하는 그 장면의 촬영지가 이 신사다. 

후시미이나리 신사는 곡식의 신인 이나리를 모시는 신사의 본궁이라고 한다. 여우가 신의 전령으로 신사 곳곳에서 여우의 상을 여러번 만날 수 있다. 

지친 상태에서 나름의 우여곡절 끝에 방문한 곳이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교토에서 방문한 사찰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공간이었다. 사람도 상대적으로 적었고 길도 예쁘게 정돈되어 있어서 좋았다. 버스 정류장에서 사찰로 올라가는 길에 만나는 철길도 옛스럽고 정겨웠다. 



후시미 이나리 신사와 철길



노을이 지는 듯 하더니 금새 어두워진 저녁 하늘을 두고 다시 우메다 역으로 향하는 전철에 올랐다. 퇴근길, 지친 일본 사람들과 함께 앉아 졸면서 집 같은 호텔로 끌리듯 향했다. 


여행의 마지막 밤은 역시 시원한 맥주 한 잔이다. 

기분을 내보려 했지만 자꾸 엉뚱한 메뉴를 갖다주며 "손님이 주문한 거 아니에요? 죄송합니다."를 두세번 되풀이하는 직원의 태도에 짜증이 나서 더 마실 것을 두 잔으로 마무리 하고 가게를 나왔다. 한심한 태도들.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서 마시며 마지막 밤을 마무리했다. 괜히 노래 부르며 분위기 냈다가 방음 안 되는 위대한 뉴 한큐 오사카 호텔 옆방 투숙객에게 벽치기 공격을 당해서 더욱 씁쓸했지만, 행복했던 밤이 그렇게 갔다. 





일본을 정식으로 여행한 것은 처음이었고, 준비 없이 즉흥적으로 떠났던 여행인지라 지나고나니 아쉬움이 큰 여행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느 여행과 달리 동행한 친구도 있었고 덕분에 심심하지 않게, 외롭지 않게 여행할 수 있었다. 

이 여행이 남긴 것은 어떤 교훈이 아니다. 

체감되는 어떤 변화도 아니다. 

다만 나는 2017년 6월에 오사카 여행을 다녀왔다는 사실이 이 곳에 남게 되는 것이고 그것이 나의 마음 속에 저장되어 움직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이렇게 일본의 동전이 남았다.



조만간 다음 여행을 떠나게 될 것을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