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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미안해,고마워]CGV무비꼴라쥬 임순례 감독과 함께


2011년 6월 3일 CGV상암 무비콜라쥬 시네마톡 - 임순례 감독, 고경원 작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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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고마워>는 내게 알려주는 영화, 감수성을 어루만지는 영화, 이해하게 만드는 영화, 못 봤던 곳을 보게 하는 영화였다. 왠 수식이 이리 많나 싶지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다. 고백하건대 나는 정말 동물에 대해선 문외한이다. 심지어 어릴 땐 그 자그마한 동물들을 무서워하기도 했다. 유치원에 다닐 무렵엔 동네 구멍가게로 심부름을 가는 길에 누렁이라도 한 마리 어슬렁거리고 있으면 바로 가지 못하고 저 뒷길로 돌아서 가곤 했을 정도로 나는 개를 무서워했다. 딴엔 사내놈이라고 ~’ 비명을 지르지는 못했지만 다리 언저리를 훑고 지나가는 개라도 있는 날에는 온몸에 털이 쭈뼛해지며 그대로 얼음이 되는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고양이는 더 심했다. 느릿느릿 흐느적거리면서 걷는 것은 내 눈에 너무 징그러워보였다. 그 눈은 쳐다볼 엄두도 못 낼 대상이었다. 애드가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를 읽은 담엔 아예 검은 고양이라는 말만 들어도 진저리를 쳤었다. 사실 고백하건대라는 표현은 부적절하다. 이런 과거를 처음 말하는 것도 아니니까. 마치 히치콕의 <>를 관람한 후 새에 대한 공포심이 정당한 것이라도 되는 냥 느꼈던 것처럼 나는 포의 <검은 고양이>를 빗대며 고양이에 대한 두려움을 당연시했었다. 볏이 붉은 닭이 징그러워서 치킨을 다 먹어 치워야겠다는 농담은 재미가 없지만 내겐 설득력이 있을 정도다.

이렇게 개나 고양이처럼 친 인간적인 동물을 멀리하다 보니 자연스레 모든 동물에 관심이 없었다. (사람도 동물이라고 딴죽 걸지 말기^^). 왜 가는 지 모르겠다는 곳이 동물원이고 뭐가 재미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게 동물의 왕국이나 ‘TV동물동장같은 TV프로그램이다. 그렇게 난 동물을 싫어했고(두려워했고) 그들에 대해 극도로 무지했다.    

 

임순례 감독이 기획하고 4명의 감독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동물+인간의 이야기를 다룬 <미안해, 고마워>는 그나마 내가 지금 아이가 아닌지라 일종의 면역이 생겼고 아이들이 천진한 예고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기에 관람을 결정했다. 그런데 보고 나서 내가 조금은 달라졌다. 알게 됐고 느끼게 됐고 이해하게 된 거다, 조금은.

먼저 송일곤 감독의 <고마워, 미안해>. 나는 그 영화 속 큰 개가 어떤 종인지 알지 못한다. ‘레트리버라는 것은 영화 후 시네마톡 때 임순례 감독님이 말씀하셔서 알았다. (정말 무지의 극치다) 이 작품을 보면서 진정 반려견이라는 의미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외로운 사람에게 동물은 정말 좋은 친구이자 반려견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섬세하게 감정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관객을 집중하게 만드는 송일곤 감독의 힘은 이 영화에서도 탁월했다. 김지호라는 배우의 눈빛과 표정에 빠졌고 그것을 통해 아버지의 집 마당에서 느꼈다는 풀의 향기, 꽃의 향기 그리고 그 위로 뿌려지는 물의 느낌까지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조금 웃기면서 화도 나고 짠하기도 한 오점균 감독의 <쭈쭈>로 넘어간다. 이 작품을 통해 노숙자와 유기견을 이어주는 사회 프로그램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걸 이용해서 개고기를 먹어대는 양아치 노숙자들이 영화 속에서 비춰져서 더욱 그렇기도 했지만 뭘 믿고 저런 프로그램을 유지하나 싶었다. 물론 영화를 통해 그 프로그램의 제 역할이 뭔지 알게 되긴 했다. 외로움을 달래주는 존재를 통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는 동물 친구의 의미가 그 프로그램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내 곁에 사람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해주는 것도 결과적으로 그 개 친구였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쭈쭈>에서 알게 된 또 다른 것은 개도 암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걸 이제서야 안 건 정말 제대로 개념 없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만든다. 결국 그들도 우리처럼 기관이 있는 동물이니 그 기관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그 조차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이 얼마나 한심한지 모르겠다. 닭 뼈 때문에 개에게 닭고기를 먹이면 안 된다는 사실도 이 영화를 보면서 알았으니 난 정말 대책이 없었던 사람임을 인정한다.

 

세 번째, 박흥식 감독의 <내 동생>은 아역배우들의 연기가 너무 사랑스럽고, 그 눈물에 같이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는 작품이다. 거기에 너무나도 좋아하는 감독의 전작 <인어공주>처럼 영화는 과거에 대한 회상과 현재를 잇는 따스함이 담겨있다. 그 점에 난 <내 동생> 100점을 주고 싶다. 강아지를 정말 내 동생처럼 여겼던 그런 유년시절이 결코 없었기에 그 정서를 내 안에서 끄집어낼 수는 없었지만 아역들의 절절한 연기는 개에 대한 공포에 젖었던 유년의 나를 보듬는 따스함까지 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의 기획자이기도 한 임순례 감독의 <고양이 키스>는 고양이를 돌보는 캣 맘의 존재와 고양이 키스라는 것을 알게 한 작품이다. 어떤 대가도 없이 길 고양이를 돌보고 먹이를 주는 캣 맘과 그녀와 2주간의 시간을 같이 보내게 된 잔소리꾼 아버지의 티격태격하는 모습과 그 잔소리꾼 아버지가 길 고양이에게 마음을 여는 모습, 그리고 고양이 키스를 주고 받는 모습을 보면서 내 마음도 사르르 녹았다. 그렇게 딸과 아버지는 오랜 시간 쌓여만 갔던 몰이해의 벽과 갈등을 무너뜨리게 된다. 인간의 삶의 동반자로서 동물들이 인간의 삶과 관계를 얼마나 윤택하고 따뜻하게 하는 존재인지, ‘반려의 의미가 왜 그들에게 부여되었는지를 알게 된다.

 

영화를 보고 새롭게 알게 된 사실에 놀라고 나의 두려움이 터무니없는 것이었음을 깨달으며 어리둥절해하고 있던 사이 임순례 감독과 고경원 작가가 함께 하는 무비콜라쥬 시네마톡이 시작됐다. 영화는 농수산업 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동물들의 대한 모든 것을 관여하고 보호하는 기관인 농림수산식품부와 산하 기관 중 가장 수입이 좋다는 마사회의 제작지원으로 탄생했다. 애초 기획도 농림수산식품부에서 동물보호 캠페인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KARA(동물보호 시민단체)의 대표자격으로 농림수산식품부를 방문한 임순례 감독과 면담 중 영화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제안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공무원들이 기 책정된 예산의 효율적인 활용을 고민하다 기획된 작품으로 보기엔 이 작품은 무척이나 따뜻하고 섬세한 배려로 가득하다. 그러니 결과적으로는 예산 참 잘 썼다되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연기를 하는 개가 다리를 절룩거리는 것 같았다며 걱정하는 관객, 진짜로 개를 때리며 촬영했는지 걱정하며 질문하는 어린 아이, 고양이 키스 장면을 어떻게 촬영했는지 묻는 순박한 질문과 그에 대한 환상을 깨부수는 대답(^^)이 이어지는 50여분 동안 극장 안은 조금씩 더 포근해지는 듯 했다. 이래서 CGV 무비콜라쥬의 시네마톡이 좋다. 영화를 보고 허심탄회하게 관객과 감독, 또는 배우나 제작자가 대화할 수 있는 순간이 영화제가 아닌 일상에서 가능하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축복 같다. 특히 임순례 감독처럼 말씀을 조리 있게, 명쾌하게, 시원스럽게 해주시는 분을 만났을 때 그 기쁨은 배가 되는 것 같다.

 


<미안해, 고마워>를 본 나의 변화는 며칠 뒤에 드러났다. 현충일에 아는 선배를 데리고 이 영화를 한 번 더 보러 간 것이다. 나와는 달리 동물을 좋아하는 그 선배는 영화를 보면서 기쁘기도, 울화가 치밀기도 했다고 한다. 동물이 나오는 영화를 보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도 하고 그걸 이야기하는 사람과 대화가 가능하게 됐다는 것, <미안해, 고마워>가 내게 준 고마운 변화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