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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천녀유혼>(2011) 봉인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더해 더욱 절절한 멜로로 탄생하다


요괴가 출몰하는 흑산에서 요괴와 대적하는 퇴마사 연적하(고천락)는 요괴 섭소천(유역비)을 쫓던  중 그녀의 옷을 찢게 되고 그녀의 신비로운 모습에 반하고 만다. 그 후 요괴인 소천도 달콤한 사탕의 맛에 빠지듯 연적하와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요괴와 퇴마사의 사랑이 이뤄질 수는 없는 법. 연적하는 주문을 이용해 섭소천에게서 그의 기억을 사라지게 하는 방법을 택한다. 자신은 가슴에 그 사랑을 품고 살아도 그녀만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의한 고통에서 자유롭게 만들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세월이 지나 흑산 아랫마을에 가뭄이 든다. 가뭄을 해결하려고 나라에서 보낸 관리인 영채신(여소군)은 물길을 찾기 위해 흑산에 오른다. 흑산에는 요괴 대모가 만든 난약사가 있었고 그곳에서 섭소천을 만나게 된다. 욕정에 젖은 다른 남자들과 달리 순진하고 선한 영채신의 본질을 알아챈 섭소천은 그를 해치지 못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점점 사랑에 빠지게 된다. 흑산에 남아 매일 요괴들과 결전을 벌이던 연적하도 곧 이 둘을 발견하게 되는데, 인간과 요괴, 그리고 퇴마사 이 세 사람의 사랑은 어떤 결말을 맺게 될까.

 


1987
년에 공개된 <천녀유혼> 1편 이후 24년 만에 <엽문>을 만들었던 엽위신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된 2011년판 <천녀유혼>은 원작이 그러했듯이 여전히 현실을 초월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동시에 봉인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여 멜로 감성을 강화했다고 할 수 있다.

퇴마사 연적하는 요괴인 섭소천과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한다. 요괴 대모와의 싸움에서 사부를 잃고 퇴마사 그룹에서 버림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는 소천을 지우지 못한다. 요괴와의 끊임없는 결투를 벌이면서 흑산에 머무는 것은 주술에 의해 봉인시킨 요괴 대모를 경계하고 사부에 대한 복수를 하겠다는 이유도 있지만 어쩌면 먼발치서 소천을 바라보겠다는 것이 더 큰 이유처럼 보인다. 그 보다 한 발 늦게 흑산에서 소천을 만나게 돼 사랑에 빠지는 영채신 역시 두려움이 없다. 죽을 고비를 몇 차례나 맞으면서도 소천을 구하기 위해 요괴 소굴로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소천 역시 사랑을 위해 영채신을 해치라는 요괴 대모의 명을 거스르고 혹독한 질책을 면치 못한다. 퇴마사와 요괴, 인간과 요괴 사이에 있을 수 없는 사랑을 그들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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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녀유혼>에서 그려지는 현실을 초월한 지고지순하고 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보면서 한편으론 이런 영화 속 남녀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어떤 면에서 인간을 초월하는 힘을 지닌 요괴임에도 여전히 남성으로부터 보호받는 대상으로 그려지는 <천녀유혼> 속 요괴 소천 2011년에 리메이크 된 영화 속 인물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지 않을 수 없다. 요괴는 아니지만 인간의 피를 빨아 명을 유지하는 뱀파이어와 인간의 사랑을 그린 <트와일라잇> <렛미인>과 비교해보자. <천녀유혼>에서 요괴는 여성이고 <트와일라잇>에서 뱀파이어는 남성이다. 요괴든 뱀파이어든 인간의 범위를 초월하는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 존재다. 그렇다고 두 영화에서 사랑에 빠지는 인물들 중 요괴와 뱀파이어가 항상 그들이 맞닥뜨리는 위기를 해결하는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트와일라잇>에서는 뱀파이어인 에드워드가 인간 벨라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자신의 본능으로 벨라를 해할 수도 있음에도 그 본능을 억누른다. 그리고 적으로부터 공격받는 벨라를 보호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렇다면 <천녀유혼>의 경우 요괴인 소천이 인간 영채신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가? 퇴마사인 연적하는 요괴를 대적하는 존재이니 차치하더라도 보통 인간인 영채신의 경우 그는 충분히 요괴인 소천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존재다. 하지만 영화에서 소천은 영채신을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요괴로서 어떤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대모의 명령을 거스르기 위해 도망칠 뿐이다. 도리어 인간인 영채신에게 구출되고 도움을 받는다. <트와일라잇>은 뱀파이어와 인간이라는 신분을 떠나 남자가 여자를 보호한다는 스테레오 타입을 그대로 적용한 사례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렛미인>을 떠올려보자. 뱀파이어인 소녀 이엘리는 소년 오스칼과 우정을 넘어 사랑을 하게 된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죽음의 위기에 처한 소년 오스칼을 뱀파이어 소녀 이엘리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서 구해준다. <렛미인>에서는 뱀파이어 소녀가 인간 소년을 보호한다. 이런 설정을 비교해보면 <천녀유혼>의 영화 속 역할 설정이 초월적 힘을 지닌 존재에 의하지 않고 남과 여의 고전적 성 역할을 따르는 데 그친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여전히 남자는 보호하고 여자는 보호 받는다는 구태한 성역을 고수하며 과거에 묶여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래서 2011년판 <천녀유혼> 속 소천은 요괴라기 보다는 힘없이 두 인간 남자의 사랑을 받으며 보호받는 여인에 머물고 신식이 아닌 구식의 이미지에 갇히게 된다.   

 


리메이크된 <천녀유혼>은 봉인된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봉인된다는 것은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다. 요괴 대모는 퇴마사와의 대결에서 주술에 의해 봉인되고 시간이 지나 봉인이 풀리는 날 복수를 하기 위해 칼날을 간다. 그러나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봉인의 사용은 사랑이라는 기억과 감정에 적용된다. 연적하는 소천과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지만 그녀를 죽일 수도 없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그녀의 기억 속에 자신과의 사랑의 기억을 없애는 것이다. 기억을 없앴다고는 하나 그것은 삭제가 아닌 봉인이었음을 영화의 클라이막스에 알게 된다. 그와 동시에 연적하는 소천에 대한 자신의 감정도 자기 안에 꽁꽁 가둔 채 드러내지 않는다. 그 역시 그 감정을 자기 안에 봉인한 것이다. 그런데 영화의 클라이막스에서 매우 중요한 이유 때문에 그 봉인을 스스로 풀게 된다. 봉인이 풀렸을 때 그 감정은 예전의 그것과 동일하다. 봉인된 것이 해제되고 그 감정의 깨달음에서 오는 혼란과 슬픔은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결국 사랑이라는 감정은 봉인될 수 없고, 봉인된다 하더라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매우 감성적인 메시지가 전달된다. 절절한 연적하의 눈빛과 눈물을 연신 뚝뚝 흘리는 섭소천, 모든 것을 잃어버린 듯한 아이처럼 슬픈 표정을 짓는 영채신의 모습은 그 세 사람의 사랑의 결말을 절절하게 관객에게 전달한다 

                                                  <위:1987년작, 아래:2011년작>
재미있게도 이 봉인이라는 소재는 장국영이라는 배우에 대한 그리움으로도 이어진다. 고천락이 연기한 연적하의 경우 원작보다 비중이 커졌기에 잃을 게 없는 캐릭터였고, 유역비가 연기한 섭소천 역할은 왕조현의 아우라를 극복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를 보기 좋게 불식시킨다. 유역비라는 배우 자체의 청순한 매력이 또 다른 섭소천을 관객이 받아들이게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여소군이 연기한 영채신의 상황은 조금 다르다. 영채신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원작의 음악이 고스란히 쓰인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장국영을 떠올리게 된다. 머릿속엔 장국영의 영채신이 떠오르는데 눈 앞엔 다른 배우가 있으니 계속 비교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비교에선 장국영이 우위를 점한다. 영채신이 처음 등장할 때의 그 음악은 마치 <천녀유혼> 원작 속 장국영의 기억을 봉인에서 해제하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배우 여소군은 귀엽고 순진한 캐릭터를 연기하기에 어울리지만 관객들의 마음과 머릿속 봉인에서 해제된 장국영의 아우라를 극복하지 못한다. 영화의 엔드 크레딧에도 장국영을 추억하는 자막이 나오고 그의 노래가 나오기도 하니 끝까지 여소군보다 장국영을 기억하며 나올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여소군의 배우로서의 도전은 높이 살 만하지 않을까 한다. 그 누가 감히 이 역할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을 수 있었겠는가.  

 

24년만에 리메이크된 <천녀유혼>은 다소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 구식 영화의 이미지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영화와 그 시절과 그 배우들에 대한 기억과 감정에 대한 봉인을 풀어준 리메이크로서 그 역할을 해낸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홍콩에서는 꽤 흥행에 성공했다고 들었는데 앞으로 속편이 다시 나올지 궁금하기도 하다. 속편이 계속 나오고 시간이 더 흐른다면 언젠가 장국영의 아우라를 극복한 새로운 영채신을 받아들이게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