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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스물] 과장된 형용사로 수식하지 않고 그대로의 '스물'을 담다

 

 

 

 

 

스물

 

과장된 형용사로 수식하지 않고 그대로의 '스물'을 담다

 

 

 

스물. 미성년과 고등학교라는 족쇄에 갇혀 제한 받던 일상에 자유의 문이 열린다. 자유만큼 책임의 양도 늘어나는 게 사실이지만 자유의 문턱을 이제 갓 넘어선 자들에 대한 포용 또한 허용되는 시기이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다. 미성년과 고등학생 시절이 자유가 허용되지 않고 늘 답답한 옥살이 같지만은 않은 것처럼 스물이 되고 자유의 문턱에 들어섰다고 해서 모든 것이 허용되는 것만은 아니다. 그래도 돌이켜 생각해보면 좌충우돌 시행착오의 특권이 허용되는 유일한 성년의 한 때가 아닐까 싶다. 아무것도 한 것도 없이 객기와 허세, 치기 어린 뻘짓거리의 연속으로 보낸 시기였다 싶으면서도 슬며시 미소가 나오게 되는 회상을 안기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영화 <스물>. 스무 살 무렵의 주인공을 다룬 영화가 예나 지금이나 드문 것은 아니다. 그들은 삶의 무게에 짓눌려 방황하기도 하고 갈피를 못 잡고 잉여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밑바닥까지 암울하기도 하고 훅 불면 날아갈 것 같이 가벼운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비트><색즉시공><세 친구><청춘> 등 언뜻 떠오르는 스무 살 무렵의 주인공들을 다룬 영화들을 기억해볼 때 <스물>은 무거움과 가벼움의 양끝선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스물을 표현해 낸 보기 드문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전반적으로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지 않고 감정을 억지로 끌어내지 않는다. 모든 캐릭터들이 지나치게 쿨 하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덕분에 감정의 과잉이 없고 관객에게 감정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주축이 되는 이야기에 기승전결을 끼워 맞추느라 사건을 만들고 신파 코드도 넣어서 규격화 하는 대신 스무 살 그 때에 있을 법한 캐릭터와 에피소드들을 툭툭 던지면서 자연스레 흐른다. 작정하고 이제 웃겨야지 또는 울려야지 하는 강박이 느껴지지 않는다. 영화 속 주요 배경이 되는 계절이 내내 봄인데 툭툭 던져지고 흘러가는 에피소드도 봄바람마냥 살랑거린다.

 

 

 

 

이건 100% 감독 이병헌의 개성이 묻어난 결과로 보여진다. 그의 전작인 <힘내세요, 병헌씨>에서 스무 살에서 한참 지난 주인공과 그 친구들이 보여준 '그들은 함께 있을 때 병신 같았다'의 톤은 <스물> 속 친구 세 명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결같은 이병헌식 캐릭터와 대사, 힘주지 않고 툭툭 던지고 유유히 흘러가는 분위기가 <스물>에도 여전하고 그것이 다른 스물을 다룬 영화들과 궤를 달리하게 한다. '꼬추행성의 침공'등 시종일관 꼬추 타령을 하는 철없는 스무살 남자애들의 모습에 분명 빵빵 터지게 웃고 삶의 무게를 알아가고 포기라는 걸 감당해야 하는 애잔한 구석에 마음이 저릿하게 되지만 그게 영화를 이끄는 전부가 되지 않고 어느 한구석에 치우치게도 하지 않는다. 10대에서 20대가 되면서 거치는 대학입시와 군 입대, 이성관계와 장래 고민 등의 현실을 빼놓지 않았음에도 현실적인 요소에 영화를 묶어두지 않았다. 싱그럽고 설렘을 주는 봄의 기운을 배경으로 뾰족한 거 없이 하루하루 흘러가는 잉여의 시간을 허락하고, 객기와 허세의 시도를 포용하며 시시덕거리고 티격태격해도 괜찮은 일상이 하나로 모여 그대로 '스물'을 만든다.

 

 

 

 

 

중심이 되는 세 인물 치호(김우빈), 동우(이준호), 경재(강하늘)에게서 골고루 관객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하는 영화는 엔딩에 이르더라도 이후의 그들의 삶이 각자 어떻게 될 지 궁금하게 만들지 않는다. 가령 <건축학개론>을 봤을 때 승민과 서연의 관계에서 지난 날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이후 승민과 서연의 삶에 대해 추측을 해보게 된다면 <스물>은 각 인물에 대한 미련의 끈을 관객이 쥐고 나오게 만들지 않는다. 관계가 얽히기도 하지만 그 하나하나로 이야기를 이끌어냈다기 보다는 스물의 보편적인 정서를 캐릭터와 에피소드에 담아냈기에 그들을 그냥 흘려 보낼 수 있는 것 같다. 봄이 오고 여름이 오면 내년에 다시 봄이 오고 또 여름이 오듯이 지금의 스물이 서른이 되어도 내년에 다시 스물이 되는 사람들은 또 있고 그들도 서른이 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게 모두가 당도하고 지나게 되고 추억하게 되는 연령대에 대한 영화를 만들면서 캐릭터에 특수성을 부여해 이야기를 만들고 감정과잉으로 분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레 그 때의 보편적 모습을 보여주는 방법을 선택했기에 이 영화의 개성이 두드러지는 것 같다.

 

 

 

 

이병헌 감독은 <과속 스캔들><써니><타짜-신의 손> 등 강형철 감독 영화의 각색 작업을 했기에 성공한 대중영화의 요소들을 잘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스물>에서 에어 서플라이(Air Supply) 'Lost In Love'와 해리 닐슨(Harry Nilsson)'Without You' 등 올드팝을 장면에 인상적으로 활용한 흔적 등은 얼핏 강형철 영화의 느낌이 들기도 한다. 'Without You'가 흐르는 가운데 펼쳐지는 '소소반점' 패싸움 장면은 <킹스맨:시크릿 에이전트> 교회 싸움 장면 뺨 치게 인상적이다.

그러나 <스물>을 온전하게 이병헌 감독의 영화로 보이게 하는 것은 과한 양념을 치지 않고 자연스레 흐르는 분위기와 캐릭터에 있다. 여전히 독립영화를 만들었을 때의 이병헌 풍이 살아남은 것은 투자규모와 배급규모가 훨씬 커져버린 이 대중영화를 반짝이게 만드는 현명한 선택으로 보인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이 CJ나 롯데를 통해 나오지 않은 것은 정말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충무로 양대 투자/제작/배급사이자 너무 오랫동안 규격화된 틀에 맞춘 영화를 만들어내는 곳이 아닌 역시 대형이지만 두 회사와는 조금 다른 틀과 시각을 시도하려는 제작사에서 제작된 것은 이 영화를 살린 신의 한 수가 아닐까 생각된다.

 

 

 

 

<스물>을 이야기하면서 배우들의 매력을 빼놓고 지나갈 수는 없다. 메인 캐릭터를 연기하는 김우빈, 이준호, 강하늘은 그 어느 때보다 힘을 빼고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천연덕스럽게 연기한다. 물 만난 듯 자유롭게 스크린을 헤엄치는 그들을 보면서 관객 역시 어깨에 힘을 빼고 긴장을 풀고 영화를 즐기게 된다. 민효린, 이유비, 정소민, 정주연 등 여성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들도 골고루 좋다. 감독은 스스로 여성 캐릭터를 못 만드는 감독이라고 소개했다. 남성이 메인 캐릭터인 영화에서 상대적으로 구색 맞추기처럼 들어갔다고 보일 수도 있고 전형적인 캐릭터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네 캐릭터들은 남성 캐릭터에 밀리지도 않고 맥없이 엉기지도 않으면서 각자 매력을 뽐낸다. 가령 여성 캐릭터들이 메인이었던 <써니>에서 남성 캐릭터들을 기억할 수 있겠는가. 반면 <스물>은 남성 캐릭터들이 메인임에도 여성 캐릭터들을 기억할 수 있겠다. 여성 캐릭터가 있어야 이야기가 되는 남성 캐릭터의 한계가 있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등장하는 캐릭터를 잘 만들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감독의 전작인 <힘내세요, 병헌씨>에 등장했던 '병헌씨'를 포함한 배우들을 알아보는 재미도 있고 박혁권, 오현경 배우와 <족구왕>의 배우 안재홍과 황미영을 카메오로 등장시킨 것도 쏠쏠한 재미를 선사한다.

 

 

 

스물을 생각하고 스물을 추억하게 하고 스물이 될 사람들과 스물인 사람들에 대해서도 흐뭇한 미소를 짓고 바라보게 만드는 영화, 작위적인 감정 과잉 없이 힘 빼고 자연스럽게 흐르는 유쾌한 영화, 독립영화 만들 때의 톤을 잘 간직하고 주류 대중영화로 들어온 감독의 인장이 반가운 영화<스물>. 희로애락이 복합적으로 있을지언정 인생의 봄날과 같은 스무 살 그 때를 표현해낸 영화 <스물>을 즐거운 마음으로 추천하고 싶다        

 

 

            


선배 진주와 드라이브 후 돌아오는 경재와 알바로 바쁜 동우, 쓸쓸함을 달래려 클럽으로 향하는 치호의 모습이 겹쳐지던 장면에 흐르는 에어 서플라이 'Lost In Love'

 



강렬한 소소반점의 싸움 장면에 흐르는 해리 닐슨의 'Without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