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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자유의 언덕] 잠자는 모리의 시간은 자유

 

자유의 언덕

 

잠자는 모리의 시간은 자유

 


일본인 모리(카세 료)는 과거 한국에서 어학원 강사로 일하면서 지낸 적이 있단다. 지긋지긋하게 더러운 어학원 내 남성 직원들에 대한 반감도 있지만 그 곳에서 만난 권(서영화)은 모리에겐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라 부를 수 있는 한국 여성이다. 2년 만에 다시 한국에 찾아온 까닭도 과거 자신이 청혼했던 권을 만나기 위함이다. 그러나 권의 자취를 찾을 수 없다. 매일 권의 현관문에 메모를 붙이고 오지만 떼어지지 않은 메모로 보건대 그녀는 거기에 없는 것 같다.

 

모리가 남긴 편지 뭉치를 권은 받아든다. 몸이 안 좋아 산 속으로 요양을 다녀온 듯한 권은 모리의 편지를 읽는다. 한 장이나 읽었을까, 자리를 옮기려했으나 현기증에 쓰러져 편지 뭉치를 떨어뜨리고 만다. 떨어진 편지를 다시 집어드는 권은 영선(문소리)이 운영하는 카페 '지유가오카 핫쵸메'에 들러 모리의 편지를 읽기 시작한다.  

 

 

 

<자유의 언덕>은 오랜만에 남자가 타이틀롤인 홍상수 감독의 영화이자 처음으로 한국인이 아닌 남자 배우가 주인공인 작품이다. 이번엔 특히 주인공이 맞는 엔딩이 지금까지의 홍상수 감독 영화와는 조금 다른 감흥을 주는 영화로서 차별점을 지닌다. 언제 그의 인물들이 쓸쓸하지(만도) 않은, 허무하지(만도) 않은, 이런 통속적인 엔딩을 맞은 적이 있던가. 그게 꿈이든 생시든 간에 말이다.

 

"시간은 실존하는 그 무엇인가가 아니에요. 우리의 뇌가 과거, 현재, 미래란 시간의 틀을 만들어낸 거예요." 
쓰러지며 편지를 놓친 권에 의해 관객이 보는 모리의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가 혼재한다. 현재면 현재지 과거와 미래는 어딨냐고? 그 현재가 다른 현재의 과거이고, 그 현재가 다른 현재의 미래라고 해두자. 동시에 시간은 자는 모리의 꿈처럼 펼쳐진다. 관객은 모리가 쓴 편지 뭉치를 떨어뜨린 권에 의해 뒤섞인 채 제시되는 모리의 시간을 목격하지만 그것이 진짜 권이 읽는 편지의 순서인지, 모리의 꿈인지 모호해지는 가운데 과거, 현재, 미래를 꼼꼼하게 따져보려고 애쓰는 것은 무용한 짓처럼 느껴진다. 그야말로 '우리의 뇌가 만든 시간의 틀'로부터 벗어나 모리를, 영선을, 권을 바라보며 느끼는 데 온 에너지를 쏟기로 한다.  

 

 

 


꾸미지도 않고 권의 자취를 찾아 북촌을 유영하는 듯 보이지만 모리가 한국에 (다시) 온 목적은 확실하다. 자신이 자신의 인생 어디쯤에 있는지도 아는 것 같다. 그의 위치는 중요한 결정을 단호하게 마무리짓기 위한 시간의 위 쯤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자꾸 당신은 여기 왜 왔느냐, 무엇을 하느냐 묻는다. 누가? 주변 사람들, 그것도 이방인인 그를 처음 보는 사람들이. 그건 관심과 친절의 표현이지만 모리를 당혹케 하고 때로는 화나게 하는 무례한 표현이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상원(김의성)과 언성을 높이며 다투는 남희(정은채)는 모리의 뒤 얼굴 같다. 일본어를 쓸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모리도 상원에게 쏘아붙인 남희처럼 자신에게 무례한 사람들에게 쏘아붙였을지도 모른다. 가뜩이나 그러지 못하고 참고 있는데 사람들은 '일본인이 착하니 예의 바르니 깨끗하니' 하며 일반화한다. 모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시각이 불편하다. 그래서 조금씩 까칠함이 터져나온다. 장면은 나오지 않지만 아마도 영선의 남자친구인 광현(이민우)과 싸움을 하게 된 것도 그 까칠함의 폭발이 아니었을까.  

 

 

 

 

영선 집 욕실의 닫힌 문은 모리에게 덫처럼 느껴졌을까. 시간에 적응하며 슬슬 자신의 까칠함이 드러나 폭발했듯이 권을 만나야 한다는 목적을 이루지 못하는 시간에 적응한 모리의 목적도 방황한다. '지유가오카 핫쵸메' 주인인 영선과의 관계는 흔들리는 모리의 시간 같다. 그러나 욕실의 문이 닫혀 열지 못하는 그 순간 모리의 시간은 다시 목적을  깨닫는다. 권을 만나지 못한 시간이 주는 상처를 잠으로 치유하려는 듯 오후까지 잠을 자는 모리는 꿈 속에서 그 목적을 달성했을지도 모르겠다. 잠자는 모리의 시간은 자유의 언덕에 있다.  


나는 모리가 끝까지 권과 재회하지 못하길 바랐다. 영화는 모리에 대해선 많이 보여주지만 권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주진 않는다. 모리가 말하는 '가장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 만으로는 잘 모르겠다. 그러다보니 권의 편에 못 서겠다. 권은 영선의 카페에서 영선과 인사를 나누고 불안한 듯 담배를 빨아대더니 바로 모리를 찾는다. 권은 왜 모리를 먼저 찾지 못했나. 모리가 일본으로 간 지 2년 동안 권은 무엇을 했나. 아픈 것으로 그 게으름과 우유부단함이 설명이 될까. 나는 권이 모리를 만나는 길이 영 불만이긴 하지만 그 또한 모리의 자유의 시간이 펼쳐지는 언덕으로 가는 길이다.
그렇다고 모리가 영선과 어찌 되리라 응원하는 건 아니다. 그 만남은 워낙 꿈같고 바람같은지라. 그래서 난 이 영화의 시간의 배치가 남긴 엔딩 씬이 좋다. 모리-영선의 관계 뿐만 아니라 모리-권을 설명하고 모리를 강렬하게 남기기 때문이다 

 

 

 

잠자는 모리의 시간은 자유롭다. 게스트하우스 주인과 조카가 흔들어 깨워도 꿈쩍 않는다. 오히려 "나는 잠이 더 필요해" 라고 말한다. 모리는 잠자며 꿈꾸며 '9시까지 출근'이라는 기계적 설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다. 홍상수 감독이 말하는 자유는 그런 시간으로부터 자유이자 의식적으로 인간의 뇌가 만든, 규칙적으로 인간사회가 규정해놓은 시간 위의 움직임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감독은 설명하지 않는다. 그 속을 알 도리 없는 나는 느끼고 추측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