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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작가의 초록은 보이는데, 이재용 감독의 초록은 보이지 않는다

 

 

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작가의 초록은 보이는데,

이재용 감독의 초록은 보이지 않는다

 

 

 

좋은 이야기가 있다. 좋은 이야기가 있다는 것은 이야기꾼들이 제일 잘 안다. 먼저 알아보고 그걸 어떻게 매만져볼까 궁리해본다. 좋은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지는 과정도 그러할 것이다. 작가도 감독도 이야기꾼이니 서로 통하는 그림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원작인 소설이 뛰어나다고 그 이야기만 고스란히 옮겨오기 위해 감독이 이야기를 선택하지는 않을 것 같다. 같은 이야기를 전한다고 해도 책과 영화라는 매체가 다르듯이 자신의 색깔을 입힐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옮겨오면서 자신의 인장도 찍어낼 수 있는 작품 말이다. 독자이자 관객인 입장에서도 매체에 따라, 만든 사람에 따라 다른 개성이 드러나는 결과물을 보는 것이 더 재미있다.

 

 

 

 

김애란 작가의 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은 평단과 독자로부터 큰 사랑을 받은 성공작이다. 이 작품이 이재용 감독의 영화로 완성됐다. 영화는 원작의 장점을 잘 가져와서 잘 살려냈다. 공을 들인 흔적이 느껴지고 배우들의 연기도 기대 이상이었다. 과하거나 억지스럽지 않게 감동적인 장면을 담아내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소설과는 다르다 느낄 수 있는 개성, 감독만의 색깔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워낙 좋은 재료였던 원작이 있었기에 완성된 요리가 맛이 없지는 않지만 잊을 수 없는 그 맛이라고 하기엔 부족함이 느껴진다.

 

이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 것은 소설을 읽으면서 마음 속으로 그렸던 짙은 녹음의 계절이 어떻게 영상으로 옮겨질까 하는 기대감이었다. 영화의 시작부터 그 기대는 충족됐다. 푸른 풀밭과 그 뒤로 엄마, 아빠의 실루엣을 등장시키는 오프닝 크레딧 장면은 원작의 중심 색깔이라고 할만한 것을 표현하고 있어 보는 마음이 활짝 열리는 기분이었다. 엄마 미라(송혜교)와 아빠 대수(강동원)의 과거를 보여주는 장면과 마지막 아름이(조성목)가 쓴 소설로 엄마와 아빠의 전설 같은 시간을 재연하는 숲과 계곡의 장면은 원작을 읽으며 그렸던 모습을 생생하게 스크린에 옮겼다. 그 안에서 정말 17살처럼 파닥이는 두 배우의 모습도 녹음의 계절을 그대로 담아냈다.

 

 

 

 

그런데 이런 빛나는 순간들을 제외하고는 다소 밋밋하다. 밋밋하다고 느낀 이유는 소설의 이야기를 따라 그대로 또는 살짝 재배치 정도로 구성된 플롯으로 또박또박 진행되는 까닭이다. 간혹 배우들의 입을 통해서 들리는 대사가 책을 읽고 있다는 느낌처럼 어색하게도 들렸다. 여기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감정이 실리지 않은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게 아니라 원작 소설 속 표현을 그대로 읽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의미다. 그만큼 원작의 영향권에 있었던 관객의 자세가 문제였을 수도 있지만 그만큼 관객의 시선을 끌 원작 이상의 매력이 영화에 없었다는 의미다. 17살의 나이에 들어선 아이 때문에 한창 때의 꿈과 기회를 모두 접고 생활전선에 뛰어들 수 밖에 없었던 엄마 미라와 아빠 대수, 16(소설에선 17살이지만)이지만 조로증으로 노인의 몸 상태를 갖고 있고 엄마, 아빠보다 더 속이 깊어진 아이가 전하는 이야기는 감동 요소를 품고 있다. 예측불허의 광활한 우주 같은 삶과 그 삶의 아이러니, 더불어 아름답다고 할 수 밖에 없는 삶의 빛깔을 담은 원작이 워낙 훌륭하고 그걸 그대로 전하는 것만으로도 감동은 있다. 그러나 원작과 다른 영화의 매력이 없어 아쉽다.

 

 

 

 

<정사><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로 대중적 성공을 거뒀고 <순애보><다세포 소녀><뒷담화:감독이 미쳤어요><여배우들> 등의 색다른 시도로 자기 색깔을 지닌 감독이 이재용 감독이다. 그렇기에 <두근두근 내 인생>이 그의 손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기대감이 컸다. 충무로에서 다양한 시도를 했고 아름다운 영상미로 인정받은 감독이기에 그 장점들이 원작을 개성 있게 재탄생 시키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완성된 <두근두근 내 인생>은 단정하게 만들어진 상업영화의 밋밋한 모습으로 보였다. 적절히 배어든 유머코드, 계산된 듯 등장하는 조연 캐릭터 등이 질릴 듯이 찍어내는 충무로 영화 스타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크레딧에 이재용이라는 감독의 이름이 주는 기대감을 충족시키지는 못했다. 마치 2011년 노희경 작가의 원작 드라마를 민규동 감독이 영화로 옮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 드라마와 별 차이 없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밋밋한 모습으로 실망을 줬던 때가 생각나는 영화화였다.

 

 

 

 

훌륭한 원작이 만든 캐릭터를 자기 옷처럼 입고 소화한 배우들의 연기는 좋았다. 철 들 시간도 없이 철이 들어버려야만 했던 엄마와 아빠를 연기한 강동원, 송혜교 배우는 빛났고 조로증을 앓고 있는 아름이를 연기한 조성목 배우는 조숙하고 속 깊은 캐릭터를 그대로 놀랍도록 차분하게 연기해냈다. 시간의 흐름을 모습으로 보여주며 특별 출연한 김갑수 배우는 씬 스틸러였다.

 

큰 사랑을 받았기에 큰 관심과 기대치가 생겼고 그런 기대치가 영화화에 독이 됐을 수도 있다. 관객으로서 좀 더 개성 있는 각색과 개성 있는 표현을 기대했고 성공한 원작의 부담을 벗어 던진 뚝심을 기대했지만 그런 힘이 부족한 각색이었다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원작 소설이 줬던 감동이 워낙 강했기에 다시금 인생에 '두근두근'붙일 수 있음을 상기한 두 시간이었다. 어쨌거나 인생은 참 아름답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