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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루시]뤽 베송식 여성 숭배가 탄생시킨 최고의 여성

 

 

 

루시

 

뤽 베송식 여성 숭배가 탄생시킨 최고의 여성

 

 

 

대만에서 유학 중인 루시(스칼렛 조한슨)의 시간은 절반 이상이 파티인 것 같다.어느 날 남자친구의 반강제적인 부탁에 어쩔 수 없이 미스터 장(최민식)에게 서류가방을 전달하게 된다. 범죄조직 보스인 미스터 장과의 만남으로 루시에게 끔찍한 시간이 시작된다. C.P.H.4라는 합성약물을 암거래 하려는 미스터 장의 조직에 의해 루시는 배를 갈라 안에 약물가루를 넣은 배송책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사고로 루시의 배 속 가루 봉지가 터져 온 몸에 약 기운이 퍼지고 이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초래한다.

 

 

 

 

<루시>는 진화론에 입각해 인류의 발달이 극에 달한 상황에 대한 S.F.. 현재는 뇌의 10%를 평균적으로 사용하는 인간이 만약 그 이상으로 뇌를 사용하게 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를 뇌 연구 학계 전문가인 노먼 교수(모건 프리먼)의 강연 장면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노먼 교수도 인간이 뇌의 100%를 사용하게 될 때 일어날 상황을 예측하지 못한다. 그러나 관객은 루시를 통해 뇌 분야 전문가도 상상 못할 지경인 뇌 100% 사용 인간의 상황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뇌 사용 수치가 100%가 될 때까지 변이를 거듭하는 루시의 활약상을 게임 속 캐릭터의 능력치 상승을 지켜보는 것처럼 긴장감 있게 따라가게 된다.

 

 

뤽 베송은 장면 사이사이 동물들의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종별 뇌 사용의 차이와 뇌 사용 수치 상승 시 일어날 수 있는 불멸 또는 재생산, 분열 또는 확장(번식)의 현상을 시각화한다. 노먼 교수의 설명 장면과 동물 이미지만으로 영화에서 설명하려는 초현실적인 현상의 설명을 다하는 셈이다. 더 이상 파고들어 보여주는 것에 힘 들이지 않고 달려가는 덕에 영화의 러닝타임도 요즘 영화치곤 짧다 싶은 90분이다. 간결하고 경제적인 전략이 아닐까.

 

 

 

 

뤽 베송의 강인한 여성, 진화의 끝을 향해 시간을 달리다

 

 

경이로운 여성 캐릭터를 탄생시킨 <루시>는 뤽 베송다운 모습으로 진화한 뤽 베송의 영화라 하겠다. 뤽 베송이 만들어낸 최고(最古)의 강인한 여성인 '니키타'로부터 최고(最高)의 강력한 여성인 '루시'까지 이어지는 진화의 흐름이 보인다. 뤽 베송은 영화 속에 여전사로 불릴만한 강인한 여성 캐릭터들을 등장시켰다. <니키타><레옹><5원소>는 물론이고 <잔 다르크>라는 역사적 인물에 이르기까지 강인한 여성상을 자신의 영화 속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루시는 이전 뤽 베송 영화 속 강인한 여성 캐릭터들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지만 그들과 다른 점이 보인다. 그들보다 훨씬 발달한 문명의 혜택을 받고 있는 세대인 만큼 강인한 여전사 같은 인물이 탄생하는 방식에 차이를 보인다. 이전의 인물들은 우연 또는 태생적 특징을 갖고 몸과 정신을 혹사하는 강한 훈련을 통해 여전사로 거듭났고 그 사이사이 변화한 자신의 상태에 대한 혼란과 감정적 상처를 표출했다. 반면 루시에게 혹독한 트레이닝의 과정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C.P.H.4가 몸에 퍼진 이후 루시는 고민하고 망설이고 습득하는 과정 따위가 아예 필요치 않다. 그저 약물이 퍼진 세포의 작용으로 뇌의 사용률을 높아짐에 따라 마치 프로그래밍된 대로 움직이는 기계처럼 전진할 뿐이다. 갑작스런 루시의 변화에 논리적인 설명이 부족하고 그 변화에 대한 루시의 반응도 드러내지 않는 영화에 갸우뚱할 수 있는데 그 타이밍에 영화는 ''를 들이민다. 이미 약물의 힘에 지배당한 뇌가 루시의 몸과 정신을 지배하고 있으니 루시에겐 변화에 대한 인간적인 고뇌도, 설명도 불필요한 것이다.  

 

 

루시가 감정적으로 보통 인간인 상태에 머무는 순간은 병원으로 찾아간 수술대 위에 누워서 엄마와 통화를 하는 장면이 거의 마지막이다. 그 때도 이미 약물이 퍼져있는 상태지만 뇌의 사용률이 막 높아지기 시작한 시점이기에 아직 인간 루시가 남아있는 상태인데, 그 장면에서 루시가 유언처럼 마지막으로 통화하는 사람은 다름아닌 엄마다. 엄마에게 자신의 아주 어릴 적 기억들이 생생하게 기억난다는 말을 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남긴다.

박물관에 최초의 여자 인류라고 전시된 유인원의 이름을 '루시'라고 설정했고 영화의 오프닝에도 그 유인원의 모습을 보여준다. 번식 능력을 지닌 여성인 루시가 자신에게 중요한 변이(진화)가 이뤄지는 순간에 자신의 근원인 모성을 찾아 통화하는 설정은 인류의 번식과 진화의 주체로서 여성을 강조하고, 인류의 기원이자 진화의 최상위까지를 잇는 역할을 여성에게 부여하는 뤽 베송식 여성 숭배로도 보인다. 루시는 불멸하고 어디에나 있으며 번식이나 확장을 위해 남성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 최고의 인류가 되는 것이다. 그런 루시의 뇌 사용률이 높아지는 시간은 인류 진화의 처음과 최고조를 잇는 시간이 되고 루시는 그 시간 위를 달린다.

 

 

뤽 베송의 영화 속에 상징적 아이콘이었던 강인한 여성은 그 방법부터 진화를 거듭해 루시에 이르렀다. 그 모든 것을 초월하며 어디에든 존재하고 인류의 시초이기도 한 이 캐릭터를 능가할 캐릭터가 있을까. 이후 뤽 베송이 어떤 여성 캐릭터를 그의 영화 속에 가져올 지 무척 궁금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쩌면 루시와 이전 뤽 베송의 여전사 사이에 있는 캐릭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이전 여전사 캐릭터들과 루시 사이의 간극이 좀 크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루시는 나아가도 한참 나아간 진화의 끝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한편 영화는 '이렇게 진화를 거듭하는 인간이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질문도 살짝 던진다. 연일 파티와 술로 방탕하게 시간을 보냈던 루시와 범죄조직을 이끌며 사람들을 무참히 살해하며 시간을 보냈던 미스터 장은 영화의 엔딩에 한 앵글로 잡히고 위의 질문이 관객에게 들려온다. 인간은 인간에게 주어진 생명과 다른 종을 능가하는 뇌의 사용 능력을 갖고 무엇을 해야 할까. 뤽 베송은 영화의 엔딩에서 자신의 답은 내놓은 것 같다. 남겨진 질문에 대한 답은 관객 각자의 몫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