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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60만번의 트라이] 노 사이드 정신을 아시나요?

 

 

60번의 트라이

 

노 사이드 정신을 아시나요?

 

 

 

뉴스를 접하는 마음이 답답하다. 권력과 자본을 탐하는 마음이나 그 둘이 결탁한 것들이 휘갈겨놓은 그림은 국민을 황폐하게 만든다. 무고한 시민의 죽음을 두고 오로지 진실을 밝혀달라는 눈물의 절규에 해법은 제시하지 않고 그저 밥그릇 챙기기 급급하다. 한술 더 떠 조롱하는 세력까지 등장한다.

권력과 자본은 해법을 찾을 노력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거리를 둔 사람들은 스스로 해법을 찾으려 몸부림친다. 돕지 못하면 훼방이라도 안 놓으면 양반이겠으나 권력과 자본은 양반도 못 되는 형국이다.

 

 

 

 

일본에 '조선적()' 재일동포 아이들이 다니는 민족학교가 있다. '조선학교'라고 불리고 우리의 초,,고등학교 과정처럼 초,,고급학교 과정으로 운영된다. 2007년 상영한 다큐멘터리 <우리학교>를 통해 잘 알려졌듯이 조선학교는 우리학교로 통하기도 한다. <우리학교>는 홋카이도의 조선고급학교 이야기를 담았고, 9 18일 개봉하는 <60만번의 트라이>는 오사카에 있는 조선고급학교 내 럭비부(투구부) 이야기를 중심에 둔 다큐멘터리다. 순수하고 솔직하고 밝고 명랑한 10대 후반의 남자 아이들이 럭비를 하는 씩씩한 청춘의 모습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의 외양을 갖고 있지만 그 깊은 속은 차별과 편견, 정치적·이념적 잣대로 인해 불안정한 삶을 사는 재일동포에 대한 이해를 호소한다. 일본의 패전과 한반도의 불안정한 정세 속에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60만 재일동포들은 조상들이 선택한 '()'을 계승하며 그들 속에서 해법을 찾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이들을 돕지는 못하고 오히려 훼방까지 놓는 것은 정치적·이념적 잣대로 재고 있는 권력임을 말한다.

 

 

일본의 고교 럭비는 100여 년의 전통을 갖고 있다고 한다. 오사카 조선고급학교(이하 '조고') 럭비부는 이런 전통을 지닌 일본 고교 럭비 대회에 출전해 우승을 바라보게 된다. '하나 믿음 승리'의 구호를 외치며 스크럼(반칙이 일어났을 때, 양 팀 선수들이 하나의 집단을 형성해 그 가운데 넣어진 공을 발로 빼앗는 대형)을 풀지 않고 전진하며 트라이(공격하는 선수가 상대편의 인골(ingoal) 안에 공을 찍는 일. 미식축구의 터치다운과 같음)하고 승리로 가기 위해 하나가 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천진하고 우직하며 씩씩하고 의리 있는 이 아이들은 운동으로 다져진 몸 때문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꽤 듬직하게 성장해나가고 있어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된다.

 

 

 

 

그런데 오사카 시에서는 무상교육 대상 학교에서 오사카 조고를 제외하는 정책을 발표하고 이는 아이들에게 위기로 닥친다. 럭비부가 훈련하던 운동장을 내놓으라는 결정 때문에 아이들이 직접 나서 서명 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우익 세력이 힘을 발휘하는 일본 정치권은 민족 사상 교육을 하는 학교에는 지원할 수는 없다는 주장 하에 '민족학교'인 오사카 조고에 지원을 중지하겠다는 것이다비단 오사카 뿐만 아니라 일본 전역에 있는 조선학교들이 이런 상태에 처한 것이다. 최초 500여 개에 달하던 조선학교는 이런 일본 내 정책에 의해 이제 50여 개만 남아있다고 한다.

 

 

엄밀하게 보면 재일동포 1세대는 허망한 일본 제국주의의 시도와 불안정한 한반도 정세의 피해자들이고, 그들이 일본에 남아 민족을 지키고 계승하겠다며 선택한 재일동포의 삶을 이어받은 후손들이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오해와 편견으로 비난 받을 이유는 없다. 그것이 성장하는 아이들의 교육 문제에 영향을 미쳐 공평한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워 해야 하고 저항해야 할 일이 아닐까. 영화를 보면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그저 이방인으로 취급 받을 수 밖에 없는 60만 재일동포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영화 후반에 오사카의 정치인을 인터뷰 하는 장면이 나온다. 오사카 출신으로 오사카 조고에 와서 자신도 럭비부 활동을 했었다며 학생들을 격려했던 바로 그 날, 오사카 조고가 무상교육 대상에서 제외됨을 발표하기도 했던 그에게 정책에 대한 질문을 하자 이렇게 말한다. "그건 권력 활용이다. 한국의 (당시)이명박 대통령도 한국에 조선학교 같은 게 있다면 나와 같은 결정을 할 것이다." 너무나도 당당하게 말하면서도 "조선고교 취재 잘 부탁드린다."는 매너 있는 듯한 정치인의 스탠스를 취하는 모습이 보인다. 인터뷰어가 이에 특별한 언급을 덧붙이지는 않았지만 침묵이 이어지는 그 장면을 보면서 관객으로서 느낀 건 딱 한 줄이다. '정치에서는 해법이 나올 수가 없겠구나'. 답답한 우리의 현 상황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60만번의 트라이>의 럭비를 하는 아이들의 상황은 재일동포들이 정치권력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품고 있음을 알게 된다. 무상 교육 해지 정책에 재고를 요청하는 발표를 하면서 럭비부의 권유인은 럭비의 '노 사이드 정신'을 언급한다. '노 사이드 정신'이란 서로 편을 갈라 승패를 결정짓는 럭비 경기가 끝나면 내 편, 네 편이 따로 없는 그야말로 '노 사이드'가 된다는 말이다. 편을 가르지 않으면 참 좋을, 편을 가르지 않아도 잘 살아갈 사람들이고 세상인데 그걸 극복하지 못하고 편을 나누고 밥그릇을 챙기려는 권력자들이 마음 속 깊이 담고 생각해봐야 정신이 아닐까. '노 사이드'라고 해도 아무도 해하지 않는 세상에서 살 수 있는데 그들만은 모르는 것 같다. 럭비라는 스포츠에 청춘을 쏟아내는 아이들도 다 아는 사실을 말이다. 

 

 

 

<60만번의 트라이>는 일본 내에서도 조선적 재일동포에 갖고 있던 편견과 오해를 불식시키고 이해와 화합을 도모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해도 될 만큼 기대 이상의 반향을 일으키며 전국 순회 상영을 몇 달째 진행 중이라고 한다. 한국에도 개봉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보고 감동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된다. 작은 규모의 다큐멘터리가 온 세상을 변화시키리란 건 꿈이겠고, 진정한 마음으로 진실을 전하려는 다큐멘터리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져 편을 가르지 않아도 좋은 세상이라는 것과 하나라는 믿음을 갖고 나아갈 수 있게 하는 마음의 진동을 일으킨다면 참으로 값진 성과가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