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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복제인간이 등장한다 하여 모두 <아일랜드>같으리라는 법은 없다

 

수많은 SF영화들이 먼 미래를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그것이 점점 가까운 미래가 되었고 이제 우리는 과거의 우리에게 미래였던 시점을 현재로 살아가고 있다. 그 미래 배경 영화 속 풍경과 비슷한 환경에서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실제 모습은 과거와 완전히 다르다고 느끼지 못한다. 과거에서 현재로 순간 이동한 것이 아니라, 마치 과거에서 현재로 드래그된 것처럼 이어 살아왔기에 이질감을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다. 어쩌면 그렇게 이어 살아왔기에 모든 변화를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순응하며 살아가는 게 아닌가 싶다.

2011년에 영화로 만나게 된 <네버 렛 미 고(Never let me go)> SF적인 요소를 갖고 있으나 그것이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하지 않고 손에 닿을 듯 가까운 과거를 배경으로 그려지기에 현실적이라고 느껴진다. 덕분에 가상세계라고 보아 넘길 수 없이 일상과도 같은 SF영화로 느껴지게 한다. 그리고 그런 요소가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

 

영화는 시작과 함께 배경에 대한 정보를 알려준다. 1952년에 의학계는 복제인간을 배양하고 그들의 장기를 이식하는 방법으로 불치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인류의 평균 수명이 100살을 넘기게 됐다. 그리고 1978년 영국의 헤일셤이라는 기숙 학교에서 자라고 있는 세 아이 캐시(캐리 멀리건), 루스(키이라 나이틀리), 토미(앤드류 가필드)를 주축으로 그들이 성인이 되고 복제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그들의 사랑, 질투 그리고 존재에 대한 고민을 다루기 때문에 SF요소를 배경으로 한 멜로 드라마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 듯 하다.

 

 

영국의 기숙학교 헤일셤은 엄격하게 통제하는 교육 방식을 택한다. 담배는 절대 피우면 안되고 식단도 철저하다. 정기적으로 교내에서 열리는 장터를 통해 자신들만의 화폐로 물건도 구매한다. 헤일셤의 아이들은 저항을 모르도록 훈련되었다. 학교에서 공놀이를 하다가 공이 학교 담장 밖으로 넘어가도 아이들은 공을 찾으러 그 밖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학교 밖으로 넘어가면 괴물에 의해 살해당한다는, 말도 안되지만 이 아이들에게는 신앙과도 같은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렇게 희생당한 아이를 봤다고도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아이들을 가두기 위한 헤일셤의 세뇌라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된다. 그렇게 교육 받은 아이들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깨달았을 때 조차도 크게 저항하지 않는다. 그게 너무 소름 끼치는 부분이다. ‘인간 생명 연장의 수단으로서 만들어진 복제인간이라는 것도 그렇지만, 그런 존재 이유를 알지만 저항하지 못하는 존재들. 어디 멀리 야반도주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순응하는 이들을 보고 있자면 저게 다름아닌 우리의 모습은 아닌가 싶어 소름 끼친다. 소속된 국가나 사회에 길들여지고 그것 밖에 보지 못하고 다른 건 알지 못해 순응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어찌 영화 속 복제인간들인 그들만의 모습일까 싶다. 그래선지 그 소름 끼치도록 답답한 마음 끝에 저릿한 슬픔이 깊숙하게 가슴을 찌르는 것 같다.  

 

캐시(캐리 멀리건)는 우연히 쓰레기통에 버려진 외설잡지를 발견하고 샅샅이 살펴본다. 그 이유는 그 잡지에 나체로 등장하는 모델 중에 자신을 닮은 사람, 자신을 탄생하게 해 준 모체가 있을까 싶어서다. 자신이 복제인간일지언정 그 근원을 알고 싶어하는 욕구는 여느 인간에게 있는 그것과 같다. 그리고 그 감정을 이해하는 사람은 같은 복제인간인 토미 뿐이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를 의지할 수 밖에 없다. 죽음의 순간까지 말이다.  

그들이 자신의 근원을 찾기 위한 욕구 때문에 떠나는 도주가 아닌 짧은 여행은 그 결과만큼이나 씁쓸하다. 그들이 얼마나 인간적인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헤일셤이 그들의 영혼을 얼마나 억압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레스토랑에 가서 신나는 표정으로 난생처음 샌드위치를 주문하려고 하는 그들, 하지만 헤일셤에서 숱하게 연습했던 식당에서 주문하기는 현실에선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심지어 정답 외에 어떤 창의적인 대답조차 허용되지 않아 남들이 설탕 넣은 커피를 주문하면서 연습을 할 때 다른 걸 주문하는 학생을 다들 외계인 쳐다보듯 바라봤었던 환경에 익숙했던 그들을 현실은 무기력하게 만든다. 억지로 인간성을 거세당한 복제인간의 슬픈 존재감이라고나 해야 할까.  

 


세 주인공 캐시, 토미, 루스는 인간과 똑같이 감정을 느끼고 그 감정을 예술로 표현할 줄도 아는 존재다. 그런 존재들이 목적에 의해 만들어지고 수단으로 활용되다가 생을 마감하는 영화 속 현실은 끔찍하다. 그 누구도 영생을 누릴 순 없다. 생명을 연장한다고는 하지만 연장이 유효하다고 해도 그것이 무한할 수는 없다. 복제인간으로 서른 해를 채 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게 되는 그들이나 그들을 통해 생을 연장해서 100살 이상 살게 되는 사람들이나 삶이 유한한 것은 마찬가지고, 그 마지막에 삶에 대한 미련이 남는 것 또한 다르지 않다. 천 년을 산다고 해서 그 끝이 만족스러운 사람이 있을까. 영화의 마지막, ‘누구 하나 충분히 살았다고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라는 캐시의 내레이션은 그래서 마음을 흔들고 먹먹하게 만든다.

 

복제인간이 등장하는 SF라고 해서 꼭 <아일랜드> 같으리라는 법이 없다는 것을 확인 시킬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동명의 원작소설 덕이었다고 생각한다. 복제인간이 존재하고 그것을 활용하여 인간이 수명을 연장하는 것이 극의 배경이지만 영화 속에는 숱한 SF영화에 등장했었던 장치들이 보이지 않는다. 기계 빛을 뽐내는 낯선 기구들이나 그들을 위한 우주선 같은 건물, 그들만을 위한 미래적(?) 의복이나 장치 등이 등장하지 않는다. 정확히 그런 역할을 하는 게 있긴 하지만 그 외양이 우리가 흔히 봐왔던 SF영화 안에서의 모습이 아닌 현재를 배경으로 한 영화 속에서 늘 봐왔던 모습으로 등장한다. 복제인간을 주인공으로 하고 그런 현실을 배경으로 한다고 해서 영화가 꼭 마이클 베이 감독의 <아일랜드>같은 프로덕션 디자인을 해야 하고 그렇게 이야기를 펼쳐야 하고 그렇게 배우들이 연기를 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것을 <네버 렛 미 고>는 자명하게 보여준다. 이는 설정 뿐 아니라 완성도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그렇게 SF영화에 대한 관객의 허를 찌르며 멜로 드라마의 모습도 갖춘 영화는 복제인간을 다루지만 <아일랜드>처럼 설득력 없이 뛰어다니지 않고 절절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며 강한 여운을 남긴다. 영화의 말미에 눈물을 쏟아낸 관객이 있었던 것 또한 이 영화가 철저하게 <아일랜드>와는 다른 선상에 있음을 확인하게 만든다.

 

아울러 영화의 세 주인공을 연기하는 배우들은 아마도 향후 10년간 스크린에서의 활약이 가장 기대되는 배우들일 것 같다. 이미 너무나 유명한 키이라 나이틀리를 비롯하여 <언 에듀케이션>의 캐리 멀리건, <소셜 네트워크>를 지나 새로운 스파이더 맨으로 곧 만나게 될 앤드류 가필드를 이 영화 안에서 만날 수 있다. 놀라우리만치 이 세 배우와 닮은 아역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도 이 영화의 묘미인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