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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세상의 모든 계절을 행복하게 살고 싶은

나이라는 것이 절대적인 삶의 안정 지수가 될 수 없다고 느낄 때가 많다. 질풍노도의 10대와 넘치는 패기만큼이나 불안도 함께 있었던 20대를 모두 지난 지금도 그 때보다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거나 더 많이 성숙했다는 만족감으로 살지는 않는다. 그러면서도 문득 20대를 보자면 참 철없이 보이기도 한다. 불완전한 10대를 지난 지 얼마 안됐으니 그럴 법도 하다고 생각하며 30대라는 시기가 참 편안하고 어른스럽다고 느끼기도 한다. 나이라는 수치에 대한 생각은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것만큼이나 오르락내리락한다. 

영화 <세상의 모든 계절(Another Year)>에 등장하는 노부부 톰(짐 브로드벤트)과 제리(러스 쉰)는 누가 봐도 부러울 만큼 안정적인 삶을 살아간다. 틈날 때 작은 농장을 가꾸고 그 곳에서 재배한 채소로 요리를 해서 먹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들이 농부이거나 무직인 것은 아니다. 톰은 건축가고 제리는 상담치료사다. 둘 다 직업적으로 경력이 쌓였고 안정적이다. 이 부부는 유머 있고 합리적이며 사고도 열려있다. 하지만 이들 주변 사람들은 그들만큼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부부의 집으로 놀러 온 톰의 친구 켄(피터 와이트)은 술에 절어있고 여자에게 치근거린다. 톰의 형은 아내와 사별한다. 오랫동안 집을 떠나있던 그의 아들은 어머니의 장례식을 위해 집을 찾아오지만 하는 짓이 망나니가 따로 없다. 예의란 것은 눈을 씻고 찾을래야 찾을 수 없고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하늘을 찌른다.

이들 부부에게 수시로 놀러 오는 제리의 직장 동료 메리(레슬리 맨빌)는 이 주변인들 중 가장 심각해 보인다. 역시 술에 절어있고 자존감이 떨어지는 여자다. 사람들의 관심이 조금이라도 자신에게서 멀어지면 자신이 얼마나 불행한 사건 속에 휘말려 있는지 밑도 끝도 없이 늘어놓기 시작한다. 때론 그 말이 진짜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그녀의 감정은 과장되어 있다. 심지어 한참 어린 톰과 제리의 아들 조이를 짝사랑하고 조이의 여자 친구를 질투하기까지 한다. 이렇게 되니 톰과 제리는 원하든 원치 않든 그 사람들을 거두어 들이는 역할을 하게 된다. 외로운 그들은 톰과 제리의 삶에 들어와 자기 얘기를 하고 싶어하고 의지하려 한다. 그렇다고 주변 사람들의 삶이 톰과 제리의 삶처럼 변화될지는 모르겠다. 이들을 보더라도 행복이 삶의 연륜에서 오는 게 결코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삶이 삐걱거리는 순간은 젊다고 많은 것도 나이 많다고 적은 것도 아니라는 얘기다.



영화는 우리 삶에 카운슬러가 절실히 필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영화의 시작, 어깨 통증과 함께 불면증을 호소하는 여인이 상담을 받는다. 그녀는 단순한 통증을 호소하고 있지만 의사는 그녀의 본질적 문제는 심리적인 것에 있다고 판단하고 심리 치료를 권한다. 물론 환자는 한사코 자신에게 그런 치료는 필요 없다고 거부한다. 영화 속에서 가장 심리 치료가 필요할 것 같아 보이는 인물은 메리인데, 자존감이 필요하고 자신의 삶을 돌보기 위해서 술이 아닌 다른 걸 찾아야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녀 스스로 방법을 찾을 수는 없어 보인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행복한 사람의 삶이 마냥 부러움의 대상이다. 나는 왜 그들처럼 살지 못하나 한심스러워 하고 그들과 함께 있는 것 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생각해보면 톰과 제리보다 메리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자신의 삶이 행복해서 좋다는 모습보다 일을 해도 힘들고, 사람들 때문에 지치고 힘들고, 어딜 가나 잘 웃지 못하고 지쳐있고 화가 나 있는 상태, 의지할 곳이 필요하고 카운슬러가 필요한 모습이 좀 더 보편적인 모습이 아닐까 한다. 그야말로 카운슬러가 필요한 상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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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계절>은 행복한 사람을 중심으로 그 주변을 서성이는 불행한 사람들을 비추며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보여준다. 그 사계절 내내 행복한 사람은 행복하고 불행한 사람은 계속 불행하다. 영화의 원제 ‘Another Year’는 과연 이 불행한 사람()에게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또 다른 해가 찾아올까 하는 질문과 함께 그들의 행복을 소원하게 만든다. 동시에 나의 인생도 또 다른 해에는 행복할 수 있기를 기도하게 만든다. 세상의 모든 계절을 행복하게 보내고 싶은 소망을 갖게 만든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메리(레슬리 맨빌)의 눈빛은 강한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그들의 겨울 이야기 다음에 다시 봄이 나오지 않은 이유도 관객에게 오롯이 그 질문과 해답까지 맡기려는 감독의 의도가 아닐까 싶다. 그들의 또 다른 해에도 똑같을지 아니면 달라질지 생각해보는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