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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오블리비언]인간임을 잊지 않기를, 인간성을 잃지 않기를

 

 

오블리비언(Oblivion)

인간임을 잊지 않기를, 인간성을 잃지 않기를

 

2077, 지구는 외계의 침략으로 폐허가 되었다. 핵폭발로 땅은 불모지가 되었고 생존한 사람들은 지구를 벗어난 행성에 살고 있다는 내레이션과 함께 영화는 시작된다. 화자는 잭 하퍼(톰 크루즈)로 그는 지구에 남아 순찰하며 정찰기(드론)를 수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연인인 빅토리아(안드레아 라이즈보로)와 함께 팀을 이뤄 '테트'라는 상부조직의 명령 하에 일을 한다. 그는 어떤 여인에 대한 기억의 조각들로 인해 악몽을 꾸곤 한다. 어느 날 지구에 날아온 정체불명의 우주선에서 발견된 수면캡슐 안에서 줄리아(올가 쿠릴렌코)라는 여인을 발견하는데 그녀가 바로 자신의 기억 속에 등장하는 여인임을 알고 혼란스러워진다. 폐허가 된 도서관을 아지트로 한 조직의 수장인 말콤(모건 프리먼)을 통해 잭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자신이 처한 현실이 진실이 아님을 깨닫게 되고 진실을 지켜내기 위한 싸움을 시작한다.

 

 

<오블리비언>은 새롭지는 않지만 휴머니즘에 대한 정돈된 메시지를 담으며 시각적인 쾌감을 주는 SF영화이다.

본연의 기억이 모두 지워진 채 주입된 기억에 의한 삶을 사는 인간과 진실을 깨닫게 되면서 겪는 혼란, 복제인간이라는 이슈, 둠스데이 이후 폐허가 된 지구의 모습 등은 이전의 SF영화를 통해 접할 수 있었던 요소이다. 영화를 보다 보면 <토탈리콜><아일랜드><혹성탈출>등의 영화와 TV시리즈 <V>등이 떠오른다.

영화 후반부에 드러나는 '진실' 또한 강한 반전을 내포한 세상에 없던 것의 성격도 아니다. 충분히 예상 가능한 선에서 드러나는 '진실'이기 때문에 스포일러에 대한 과한 경계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세상에 없던 반전을 담은 이야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뭔가 대단한 것이라도 감춰둔 냥 실체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초반부를 이끌어간다. 오히려 그런 장치 때문에 초반부가 늘어진다는 인상을 받는다.

 

 

신선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영화는 휴머니즘에 대한 메시지를 꽤 정돈된 어투로 전한다. 지하조직의 수장인 말콤(모건 프리먼)은 잭(톰 크루즈)이 폐허가 된 도서관 안에서 발견한 책을 읽어보고 간직하는 모습과 기억 속에 등장했던 여인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에게 희망이 남아있음을 느꼈다고 말한다. 주입된 기억에 의해 조종되면서도 인간적인 감정을 잃지 않은 캐릭터를 강조함으로써 영화는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인류 마지막 슈퍼볼의 모습을 기억한다거나 폐허가 된 땅의 한 구석에 위치한 오두막집을 아지트처럼 꾸며 쉼터로 쓰는 모습, 그 곳에 쌓인 책들과 LP는 인간성을 조명할 뿐 만 아니라 아날로그적인 것들의 가치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미래를 그리는 SF영화 속에 그런 감성이 차고 들어간다는 것이 꽤 낭만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책장에 놓인 책 중에서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나 토머스 메콜리의 '고대 로마의 노래' 눈에 띈다. 전자는 잭이 진실을 깨달으며 일으키는 일종의 혁명을 짐작하게 한다. 잭이 폐허가 된 뉴욕공립도서관에서 들고 나온 '고대 로마의 노래' 속에선 호라티우스의 시가 중요하게 인용된다. '선조의 유물과 신념을 지키기 위해 죽는 것보다 더 나은 죽음이 있겠는가'라는 시구는 인간성과 인간이 만들어내고 향유해온 문화를 지키는 것의 가치를 말하는 것이 영화 전반을 통한 메시지임을 각인시킨다. 결국 그 책들의 메시지가 잭을 움직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인 반응은 잭과 줄리아, 빅토리아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빅토리아 역시 잭처럼 조작된 기억을 지닌 존재이다. 하지만 잭이 꿈을 통해서라도 기억을 지울 수 없었던 것처럼 빅토리아에게서도 줄리아를 질투했고 잭을 연모했던 그녀의 감정을 지워버릴 수는 없었다. 이는 급박하게 진행되는 영화의 후반부에 스치듯이 지나가지만 빅토리아의 스산한 눈빛이 드러내는 감정은 이 SF영화의 감성을 꽤 독특하게 만든다.

 

잭의 기억 속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뉴욕 양키즈 야구모자,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걸려있는 미술 작품 등이 지구에 대한 추억을 지닌 소품으로 등장하는 것으로 볼 때 9.11테러를 겪은 뉴욕의 상처에 대한 감독의 위로가 아닐지 추측해보게 된다.

한편 잭이 아내에게 선물한 그림인 앤드류 와이스의 1948년작 'Christina's World'(아래 이미지) 오두막에서 LP로 듣게 되는 프로콜 하럼(Procol Harum) 67년작인 'A whiter shade of pale' 등은 인간이 지구에 남긴 과거의 문화 유산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등장하며 향수와 함께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자극한다 

 

                          앤드류 와이스의 1948년작 'Christina's World' (설명참조)

 

보통의 SF영화처럼 <오블리비언>역시 시각적인 요소에 꽤 공을 들였다. 폐허가 된 지구를 드론이 순찰하는 장면이나 바이크를 타고 달리는 장면은 시원스럽다. 협곡을 지나며 추격전을 벌이는 장면이나 바닷물을 빨아들여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공간의 시각적 연출은 꽤 매력적이다. 가장 매혹적인 이미지는 파괴된 달의 이미지인데 달의 편린들이 퍼져있는 낮과 밤의 풍경은 굉장히 인상적이다. 이는 CG전문가로서 명성이 있는 감독 조셉 코신스키의 역량으로 보여진다. 직접 쓴 그래픽노블을 각색하고 감독까지 겸했기에 시각적으로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한 그림이 명확했을 것이고 그 결과 이런 시각적 완성품이 탄생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