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over the silver screen

[공정사회] 공정사회를 부르짖으며 드릴을 들이대다

 

공정사회를 부르짖으며 드릴을 들이대다

 

10살 딸아이가 유괴돼 끔찍한 성폭행을 당한다. 이혼 후 홀로 딸을 키우는 엄마에겐 청천벽력 같은 일이다. 그러나 이 어미가 기댈 곳은 없다. 동네 파출소가 됐든 강력반이 됐든 수사기관은 그저 그런 성의 없음으로 사건을 대하고 이혼한 아이의 아비는 비열하기 짝이 없다. 범인은 대놓고 이 어미를 조롱하는 가운데 끝내 어미가 기댈 곳은 '해결사'일 뿐인데 이마저도 돈이고 일이니 온전히 기댈 곳이랄 수 있을까.

 

영화 <공정사회> (어쩌면 과장되게) 엄마와 딸의 주변상황을 밀어붙여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공정하지 못한지를 고발한다. 결국 궁지로 몰린 어미가 결정한 복수의 방법은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 복수의 드릴이 쾌감을 주는 이유는 비록 씁쓸하긴 하지만 이 사회의 불공정성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영화는 5천만 원의 예산, 9일간의 촬영으로 완성됐다고 한다. 영화를 보고 나면 그런 조건으로 완성됐다는 말이 놀랍지만은 않다. 플래시백의 반복 활용으로 채워진 플롯은 제한된 예산 안에서의 나름의 혜안으로 보이지만 영화를 빛나게 하지는 못한다. 안타깝지만 배우의 호연과 불공정한 세상에 대한 고발의 메시지는 분명했다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범인과 심하게 육탄전을 벌이는 엄마의 모습을 비추는 첫 장면은 너무 리얼해서 깜짝 놀라게 한다. 실제로 맞아 부어 오른 듯한 얼굴로 스크린에 첫 등장하는 배우 장영남의 연기는 극의 상황에 잘 녹아있다. 일부러 극단적으로 설정했겠지만 영화 속 모든 남성들이 비열하고 호감을 가질 수 없는 캐릭터로 등장하기 때문에 영화 속에서 관객이 집중할 수 있는 캐릭터도 오로지 '아줌마'(이 영화의 영어제목은 'Azooma'이다)인 엄마 뿐이다. 이는 엄마 역할을 한 장영남 배우를 돋보이게 하는 동시에 다른 인물들을 모두 '엄마를 돕지 않고 괴롭히는 무리'라는 영역 안에 묶어버리기도 한다. 덕분에 엄마가 다수의 적들과 힘겹게 싸워야 하는 극한 상황은 자연스레 형성되지만 그 외의 캐릭터는 힘을 잃는다. 대표적으로 아쉬움이 남는 캐릭터는 배우 마동석이 연기한 마형사이다. <심야의 FM> <부당거래> 속 배우 마동석을 보면서 '발견'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하면서도 극에 활기를 불어넣는 액션 배우의 발견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공정사회>에서는 비중이 크지 않은데다가 불공정하게 기능하는 형사의 캐릭터에 개연성이 약하다고 여겨져 소모적인 캐릭터에 그친 것 같아 아쉽다.

 

궁지에 몰린 엄마의 사적 복수가 부정한 사회 시스템에 처한 우리를 돌아보게 하고 씁쓸할지언정 쾌감을 주는 <공정사회>는 딸을 인신매매한 자들을 처단하는 어미의 복수를 그린 박철수 감독의 <어미>나 어린 딸이 성폭행 당한 후 살해당한 사건에 연루된 모든 이들에게 복수를 가하는 엄마를 그린 방은진 감독의 <오로라 공주>와 비슷한 선상에 놓인 영화로 볼 수 있다. 비슷한 상황과 메시지를 담은 영화들이 반복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결국 우리 사회가 변함없이 그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리라. 적당히 웃기고 울리는 잔재주로 관객을 간질이며 관객동원을 할 수 있는 성격의 영화는 아니고 저예산으로 인한 투박한 만듦새가 있는 영화이긴 하지만 분명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날카로운 드릴을 들이대는 영화임에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