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정리하며 본 영화 중 베스트를 뽑는 게 무슨 의미인가 아직도 생각해보곤 한다.
영화도 책도 연극도 드라마도 전시도 접했던 그 때의 감성과 상황에 따라 생성되는 감상의 차가 발생하는지라 지나고나서 1년 동안 본 작품들을 생각하며 뭐가 좋았다고 순위를 정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정리를 하게 된 것은 올해 여느해보다 많은 영화를 봤고 그 안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기에 정리를 하는 일종의 '연말 이벤트'로서 역할을 할 수 있겠다 싶다.
뭐가뭐가 좋았나 꼽아보는 게 재미있기도 하고, 어떻게 잘못 꼽았다고 욕 먹을 권위도 없고하니 편안한 마음으로 영화수첩을 정리하듯이 이 작업을 해본다.
대상작은 2011년 12월부터 올해 12월까지 극장 개봉작 중 관람한 영화로 제한했다.
올해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시네마디지털서울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등 다양한 영화제를 통해 만난 주옥같은 영화들이 있지만 그 영화들은 대상에서 제외했다. 2013년에 극장에서 만나게 될 영화들이 다수이고 그렇지 않은 영화라고 해도 다수가 공유하기에는 무리가 있겠다 싶어서 대상에서 제외했다.
대략 550편 정도의 개봉 영화 중 관람한 영화는 130여편 정도 되는 것 같다. 1년을 50주로 봤을 때 영화제에서 본 영화를 제외하고서도 1주일에 2편 이상을 봤다는 통계인데 나름 부지런히 봤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중에서 한국영화 10편, 외국영화 10편을 꼽았다. 꼭 10편을 정해야할 이유도 마땅치 않고 딱 10편으로 가리는 것도 쉽지 않았으나 제한을 두고 정하는 것이 나름 재미있을 것 같아 나름 냉정하게 10편씩으로 꼽았다.
올해의 한국영화
10. 다른나라에서 / 홍상수
소소한 이야기임에도 키득키득거리게 만드는 홍상수식 영화.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이자벨 위뻬르를 <아무르>에서 보는데도 자꾸 이 영화 속 안느처럼 느껴져서 당황스러웠다.
9. 두 개의 문 / 홍지유, 김일란
완성도를 위한 철저한 고민과 계산이 빛나는 수작 다큐멘터리.
8. <내 아내의 모든 것> / 민규동
완벽하게 사랑스럽고 개성있는 캐릭터의 성찬. 그녀의 수다와 잔소리가 그립다.
7. <남영동 1985> / 정지영
시대를 고발하고 각성을 요하는 것도 영화의 존재 이유! 지금 절실히 필요하기도 하고.
6. <피에타> / 김기덕
마지막 두 시퀀스만으로도 이건 예술!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최초로 제대로 봤고 베스트로 뽑을 정도가 됐으니 이건 기적!
5. <러브픽션> / 전계수
작가의 개성이 잘 표출된 예. 작가로서 감독, 기운이 강한 배우의 훌륭한 조화.
구주월의 소설이자 영화 속 영화로 삽입된 건 다소 과해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인 감독의 의지에 박수를!
4. <화차> / 변영주
남의 이야기일 수만은 없는 상황에 처한 인물들이 가슴을 후빈다. 이 영화의 엔딩을 나는 지지한다. 단순히 뻔하다는게 영화 전체적인 흐름으로 봤을 때 흠이 될 수 있을까? 오히려 여기에 반전을 기대하는 그 기대감이 문제라면 문제인 듯 하다.
3.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
/ 윤종빈
혈연으로 먹고 사는 남성세계, 그 현저한 세계를 디테일하게 잡아낸 최초의 영화인 듯.
2. <건축학개론> / 이용주
영화 속 캐릭터에서 자신의 초상을 발견했다면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지.
1. <은교> / 정지우
사랑은 정방향으로만 흐르는 게 아니라 슬프지만 그래서 더욱 격정적인 듯. 감성이 손에 잡힐 듯 하다. 감독의 주관적인 각색, 용기있는 도전이 보이는 연기가 돋보인 올해의 한국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