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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억지로 [트와일라잇]의 자매로 만들어버린 '빨간 망토' 이야기

오랫동안 늑대의 침략을 받아온 마을이 있다. 때문에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산 짐승을 제물로 바치기도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죽는 일이 비일비재해진다. 이 마을에 사는 발레리(아만다 사이프리드)는 사랑하는 피터와 도망가려고 한다. 부모님이 피터가 아닌 부잣집 청년 헨리와 결혼하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발레리의 언니 루시가 늑대의 희생물이 되고 마을 사람들은 늑대와의 전면전을 선포한다. 늑대의 거처인 동굴로 찾아가 늑대를 죽였지만 이 과정에서 헨리의 아버지가 죽는다. 늑대를 처치했다는 기쁨에 고취된 마을에 종교지도자 솔로몬(게리 올드만)이 찾아오고 그는 늑대가 아직 살아있고, 마을 사람들 중 한 명이 바로 늑대인간이라고 주장한다. 솔로몬의 말을 무시한 채 늑대를 처치한 즐거움에 파티를 하던 붉은 보름달이 뜬 밤, 마을 사람들은 다시 한 번 늑대의 공격을 받는다. 그날 밤의 사건으로 인해 늑대인간은 발레리를 차지하려는 사람 중 한 명이라는 추측이 생기고 발레리와 마을 사람들 사이에는 알 수 없는 의심의 기류가 흐른다. 과연 늑대인간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리고 아만다는 피터와 헨리 중 누구를 선택하게 될까?

 

영화 <레드 라이딩 후드>는 동화빨간 망토(또는빨간 모자’)’라는 소재에 <트와일라잇>시리즈를 좋아할 세대를 타깃으로 재해석을 가해 완성된 영화다. 감독이 <트와일라잇> 1편의 감독과 동일하다는 것도 자연스레 생각이 이렇게 흐르게 만든다. 이런 영화의 성격은 관객에 따라 장점이 되기도 하고 단점이 되기도 할 것이다. <트와일라잇>을 좋아했던 사람들에겐 환영 받을 수 있는 영화지만 그 외에 관객들에게까지 매력적으로 느껴질 순 없을 것 같다.

다소 인위적인 세트 느낌이 또렷한 마을의 모습, 주인공 발레리가 할머니에게할머니 눈은 왜 이렇게 커요? 할머닌 귀는 왜 이렇게 커요? 할머니 입은 왜 이렇게 커요?’라고 묻는 장면, 빨간 망토를 쓰고 숲길을 걸어가는 이미지, 늑대의 정체가 밝혀지는 장면 등은 기억 속에 남아있는 동화빨간 망토(또는빨간 모자’)’의 이미지를 연상하게 한다. 동화빨간 망토는 여러 버전이 있다. 자체가 구전동화이고 17세기 프랑스 작가 샤를 페로에 의해 유명해진 동화는 이후인 19세기엔 그림형제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했다. 덕분에빨간 망토’ ‘빨간 모자등의 이름으로 알려졌고 이야기도 여러 버전으로 알려졌다. 그 여러 버전이 현재의 관객들에게 뒤섞여있기에 이 영화가 그 이야기들을 제 취향에 따라 선택적으로 사용하고 재해석해서 재구성했다 해도 원작을 훼손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 것 같다. 동시에 그렇게 창의적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영화의 목표지점이 눈에 빤히 보이고 그 목표 외에는 다른 건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 영화의 목표 지점은 어떻게 하면 <트와일라잇>을 좋아했던 관객들을 고스란히 이 영화의 관객으로 끌어 오느냐인 것 같다. 우선 발레리의 곁에는 두 남자가 있다. 한 남자는 발레리가 사랑하는 피터, 다른 남자는 발레리를 사랑하는 남자 헨리다. 발레리를 두고 두 남자 사이에 다툼이 있기도 하고, 힘을 합쳐 그녀를 구하기도 하지만 그 관계 속에 생기는 질투는 의심을 야기하기도 한다. 주인공들의 이런 관계 설정은 <트와일라잇>에서 벨라를 둘러싼 에드워드와 제이콥의 관계를 쉽게 떠올리게 한다.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피터가 뱀파이어인 에드워드보다는 늑대인간인 제이콥을 더 닮은 것도 사실이다.

 

영화에서 늑대인간의 정체를 베일 속에 감추는 건 중요하다. 이로서 관객들은 영화적 재미를 느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객이 늑대인간의 정체를 추리하려고 시도하기 전에 맥이 빠지게 해버린다. 영화가 제공하는 정보에 개연성이 떨어져 산만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영화의 상황은 종종 유치하거나 우스꽝스럽게 흐른다. 특히 발레리의 할머니를 우스꽝스러운 광인처럼 보이게 하거나 솔로몬 캐릭터를 살리지 못한 건 집중하려던 관객마저도 갸우뚱하게 만들어버린다. 줄리 크리스티와 게리 올드만 같은 개성 넘치는 배우들을 이 정도로 소모해버리는 건 여러모로 안타깝다.

개연성은 늑대인간의 정체가 밝혀지는, 즉 영화사에서 사전 유출을 절대 금한 그 부분, 부분에서도 헛웃음이 날만큼 떨어진다. 관객을 이해시키지 못하는 설정은 반전의 맛도 살리지 못한다.

게다가 이 영화의 결말은 늑대인간의 정체가 밝혀지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 후에 발레리가 어떤 남자를 왜, 어떻게 선택하게 되는가, 그 후에 그 둘은 어떻게 살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게 남아있다. 그 부분 때문에 영화는 스스로 <트와일라잇>류의 영화라는 낙인을 찍는다. 설득력 약한 반전에 이어 등장하는 이 부분은 관객의 긴장감을 급격하게 떨어뜨리는 요소이기도 하다. 갑자기 운명을 거스르는 로맨스 코드를 집어넣어 이 영화를 <트와일라잇>과 자매영화로 만들 필요가 그들에겐 있었던 것 같지만, 관객으로서는 그것이 최선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영화의 장점을 꼽으라면 유일하게 배우들의 눈을 꼽고 싶다.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눈이 무척 아름다운 배우다. 그 큰 눈을 통해 관객은 많은 감정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늑대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발레리는 마을 사람들의 눈을 자세히 관찰한다. 덕분에 관객들도 배우들의 눈을 집중해서 하나하나 뚫어져라 보게 된다. 늑대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앞서 봤던 늑대의 눈과 가장 흡사한 사람의 눈을 마치 같은 그림 찾기 게임을 하듯이 집중해서 보게 된다. 그나마 이 영화가 제공하는 미스터리에 조금은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 이 눈이다. 부제를 늑대인간의 눈으로 해도 그럴 듯 했을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우린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트와일라잇>류의 영화를 만나게 될 것인가 잠시 생각해봤다. <트와일라잇>은 올해 공개될 두 편으로 영화로서 그 시리즈를 마감한다. <트와일라잇>의 성공을 보면서 어느 정도 예측은 했겠지만 이 시리즈가 마감된 후에도 당분간 관객은 그 계보를 잇는 영화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레드 라이딩 후드> 역시 그 흐름에 놓여진 작품임을 부정할 수는 없겠다. 이 트랜드를 비난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관객으로서 바라는 것은 독창적이고 개연성 있는 기본기를 갖추고 트랜드를 따르는 작품하고만 만나고 싶은 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