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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내가 살인범이다] 두고두고 회자될만한 빛나는 액션 연출

 

내가 살인범이다

 

공소시효 15년의 시간이 흐른다.

부녀자를 연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범인과의 비 오는 날의 사투가 벌어진다. 추격에 추격을 가했지만 범인의 칼에 입까지 찢기는 상처를 입고 아깝게 놓쳐버린 형사 최형구(정재영). 그것을 마지막으로 범인의 공소시효 15년은 지나갔다. 그로부터 2년 뒤, 자신이 그 범죄의 가해자라는 이두석(박시후)은 자신의 살인행각을 기록한 '내가 살인범이다'라는 책을 출간하며 모습을 드러낸다. 피해자들과 유족에 대한 사죄를 표하는 것이 책을 낸 목적이라고 밝힌 이두석. 책은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되어 300만권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하고 그의 팬클럽까지 생기며 일약 스타가 된다. 그런데 한 켠에 이두석을 노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를 데려다가 진실을 알고자 하고 그에게 복수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두석을 납치하려 하고 최형구는 그 납치를 막고 진실을 밝혀내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최형구의 행동에서 미심쩍은 구석이 보인다. 진실은 무엇일까?

  

 

기발한 아이디어에서 시작했으나 사방으로 가지 치는 스타일이 번잡한

<내가 살인범이다>는 살인사건의 가해자가 공소시효가 지난 후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낸다는 기발한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 그게 말이 되는 이야긴가 싶다만 실제로 일본에서 이런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영화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고 있자면 우리의 현실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로 받아들이게 된다. 공소시효가 지나 모습을 드러낸 범인과 그 범인을 잡지 못했던 형사, 그리고 그 범인에 의해 희생당한 피해자의 가족들은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낼까? 영화는 그 궁금증을 풀어내 주려고 몸을 푸는 듯 보인다.

그러나 중반쯤 갔을 때 영화는 다른 카드를 꺼낸다. 이두석이 진범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형사 최형구의 행동도 미심쩍다. 그러면서 영화는 다른 국면을 보여준다. 팔색조처럼 이야기의 중심을 옮겨가고 화제를 전환하는 영화의 아이디어는 좋다.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안은 조금 허하다. 이야기의 중심이 옮겨지는 것은 한편으로는 관객이 포커스를 맞춰야 할 인물이 바뀐다는 것이고 한편으로는 그 수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새롭게 확장된 주요 인물들의 행동이 설득력을 갖기에는 조금 미흡하다. 행동의 이유는 분명히 존재하는 듯 하나 그 행동이 허술하다. 그러다 보니 실소가 나오기도 하는데 문득 <시실리 2km><점쟁이들>의 신정원 감독 스타일이 떠오르기도 한다. 뭔가 전반적인 영화의 톤과는 맞지 않는 붕 뜬 느낌이 그 인물들의 행동에서 느껴진다.

그리고 영화를 완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몰고 가기 위해 등장하는 인물의 연기는 부담스러워 보이는 외모만큼이나 흡입력을 지니지 못한다. 얼핏 배우 유해진을 카피한 듯한 이미지로 연기하는 배우는 영화에 또 다른 색을 입혀 오히려 집중력을 흩뜨린다. 그러니까 정재영과 박시후의 대결구도로 알고 극장에 들어갔으나 다른 인물들이 계속 나오고 그들의 비중이 커지면서 정재영, 박시후가 만들어내는 톤과는 또 다른 톤이 등장하자 영화는 정리가 되지 않고 중구난방으로 톤이 난립하는 느낌을 준다. 그러다 보니 이 영화의 주연 배우가 정재영이었나 싶은 생각이 드는 순간까지 생긴다. 아이디어는 좋으나 그것이 조화롭지 않은 듯한 인상을 준다.

 

 

두고두고 회자될만한 액션 연출

그러나 이 영화에는 분명히 극찬해야 할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액션 연출이다. 이미 정병길 감독은 <우린 액션배우다>라는 영화를 통해 액션 연출에 일가견이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 소문을 듣긴 했으나 이 영화에서 액션 연출을 보면 다시금 놀란 입을 다물 수가 없을 정도다. 크게 3개의 액션 시퀀스가 나온다. 오프닝에 비오는 날 범인과 최형구가 벌이는 추격 시퀀스, 중반부에 이두석 납치 시퀀스 그리고 마지막 대격전 시퀀스가 그것이다.

3개의 액션 시퀀스 중 처음과 두 번째 액션 시퀀스의 연출은 신선하고 독창적이며 대단하다. 분명 예산이 많이 들어가지 않았을 터인데 완성된 액션 시퀀스는 굉장히 완성도가 있다. 오프닝에 범인을 쫓던 최형구의 시점에서 범인의 시점으로 카메라 앵글이 잡히는 것이나 범인이 그어버린 여인의 목에서 나는 피를 보는 최형구의 눈을 관객의 눈으로 도치한 장면, 카메라 앵글에서 원근감을 활용해서 단순히 양동이를 집어 던지는 장면에도 임팩트를 부여한 장면 등은 깜짝 놀랄 만 했다.

두 번째 이두석 납치 시퀀스에서 도로를 질주하는 차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벌이는 액션 또한 대단하다. 마치 합이 잘 맞는 성룡의 액션 영화를 보듯이 상황과 자동차 등의 소품, 배우들의 합이 딱딱 맞아 떨어진다. 분명히 엄청 고생하면서 몇 일씩 공들여 찍은 표가 여실히 나는 살아있는 액션 시퀀스다. 이 액션 시퀀스는 정말 놀랄만해서 영화의 여러 단점들을 덮을 수 있는 엄청난 장점이 된다. 그래서 혹시 이 영화를 추천하겠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조금 애매할 수는 있어도 이 대단한 액션 시퀀스를 만날 수 있다는 면 때문에 바로 추천할 수 있을 지경이다.

 

감독이 영리한 것은 배우의 활용에서도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박시후라는 배우의 활용이다. 드라마를 여러 편 하기는 했으나 영화는 이번이 처음인 박시후라는 배우는 보여진 이미지가 한정적이다. 빛나는 미소와 부드러운 자상함, 그 안에 담긴 터프함 등이 사극과 현대극을 넘나들며 브라운관 앞에서 여심을 훔친 것이 박시후의 장점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이 배우에게 기대되는 이미지도 그것이고 어쩌면 그것이 전부라고 여길 수 있다. 처음 정재영이라는 연기파 배우와 대립각을 세우는 캐릭터를 연기할 배우가 박시후라는 것을 들었을 때 갸우뚱했다. 포스터에서도 짐작 가능한 미소와 머리 스타일로 등장한 박시후를 보면서 그가 어떤 연기를 이 영화에서 보여줄 지 기대하기 보다는 잘 어울리기나 할까 하는 의심이 먼저 든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영화는 그가 갖고 있는 이미지와 할 수 있는(그렇게 여겨지는) 연기를 백분 활용했다. 그에게 어떤 다른 이미지를 연출하거나 연기할 것을 요구하지 않았고 실상 그런 것이 필요한 캐릭터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감독은 딱 박시후라는 배우가 지금껏 쌓았던 이미지만을 갖고 와도 충분히 재배치해서 이 영화 속에 잘 사용될 수 있도록 계산했을 것이다. 캐스팅에 있어서 이 감독의 영리함에 한 방 맞은 기분까지 든다.

 

영화의 제목인 '내가 살인범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왜 이 영화의 제목이 '나는 살인범이다'가 아닌 '내가 살인범이다' 인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영화가 꺼내 드는 새로운 카드와 직접 연결이 되는 부분이므로 영화를 보면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