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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아르고] 달콤한 독인 걸 알지만 빠져버리게 되는 헐리웃의 마력

 

아르고

달콤한 독인 걸 알지만 빠져버리게 되는 헐리웃의 마력

 

1979 2월 이란 혁명. 미국의 지원 하에 사치스런 생활을 하면서 이란 국민에게는 탄압 정치를 했던 팔레비 왕조의 모하마드. 그는 시민들의 봉기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을 하려 하고 이를 받아들이려는 미국 정부에 이란 시민들은 분노한다. 분노한 시민들이 테헤란의 미국대사관으로 모여들고 연일 분노에 찬 시위대는 결국 미국대사관을 점령한다. 급박하게 벌어진 사태 속에서 가까스로 6명의 미국 직원은 인근 캐나다 대사관저로 피신한다. 캐나다 대사의 도움 하에 있지만 언제라도 잡혀서 사형을 당할 수 있는 처지에 있는 대사관 직원을 구출해야 하는 미션이 떨어지고 CIA 최고 탈출전문가 토니 멘데즈(벤 애플렉)는 영화 <혹성 탈출>에서 모티브를 얻어 기발한 작전을 기획한다. 이란에서 헐리웃 영화가 촬영된다는 가상 설정 하에 6명의 대사관 직원들을 헐리웃 영화 스태프로 일하는 캐나다 국민으로 위장시켜 탈출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란 혁명이 일어났던 그 시기에 실제로 위기에 처했던 미국인들을 구출해낸 CIA와 헐리웃의 합동 작전을 그린 이 영화는 이란 혁명에 방점을 찍는 것이 아니라 CIA와 헐리웃이 이뤄낸 성공한 미션에 방점을 찍는 영화다. 그래서 영화의 장점과 단점은 고스란히 그 방점 찍기에서 나온다.

 

또 다른 미국 만세 헐리웃 영웅담

영화는 시작과 함께 이란 혁명이 일어나게 된 역사적 배경을 친절하게 설명한다. 간결한 설명은 2시간 남짓의 이 영화의 배경으로서 이란 혁명을 이해하면 그만일 뿐 다른 생각은 할 필요가 없음을 뜻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것은 영화를 보다 보면 더욱 확실해진다. 이란 혁명의 정치적 정당성이나 이를 야기한 미국의 행동에 대해서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에 영화는 관심이 없다. 다만 위기에 처한 미국 시민을 어떻게 구해왔는지 보여주는 것에 집중하며 스릴러와 유머를 적절히 배합하는 것으로 방향을 확실히 한다. 결국 이 영화 또한 수많은 헐리웃판 영웅담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것은 시종 긴장감을 유발하는 뛰어난 연출력에 감탄하며 손에 땀을 쥐고 보게 되지만 보는 동안 나의 정체성에 대해서 갸우뚱하는 순간을 만나게 한다. 자국민 6명을 구출하겠다고 리스크를 끌어안고 작전을 실행하는 CIA와 상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판단에 따라 작전을 끝까지 수행하는 영웅적인 요원의 모습을 보면서 감동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거나 위기에 처한 자국민을 허투루 대했던 이 나라 정치인들의 수많은 사례를 자연스레 떠올리며 부러워하는 나를 발견하는 순간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이런 감상은 말 그대도 헐리웃 영화가 오랫동안 전세계 관객들에게 세뇌시켰던 '미국 만세'의 메시지에 대한 반응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가관인 것은 구출의 대상이 되는 6인의 대사관 직원들의 태도다. 70일이 넘게 캐나다 대사관저에 머물면서 입에 불평 불만을 달고 다니며 불안에 떠는 모습을 보인다. 그 여섯 명이 캐나다 대사관저에서 먹을 것 먹고 마실 것 마시고 책 읽고 음악 들으며 나름 편하게 지내는 사이 대사관에 억류된 채 고문을 당하기도 하고 잘 먹지도 못한 채 인질로 잡혔던 100명이 넘는 자신들의 동료들의 상황을 걱정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고생을 해도 그들이 더할 텐데도 그 여섯 명은 그저 불평하며 제 살 걱정만 하고 있을 뿐이다. 그 모습이 영화를 보는 어느 순간 굉장히 얄밉게 보이지만 영화에선 그들의 그런 태도에 누구 하나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 마지막 위기를 모면하는 순간에도 그들의 기지와 순발력을 높이 살 뿐이다. 영웅담을 마음껏 표현하는 것에 이기심 따위는 장애가 되지 않는다.

그만큼 영화는 무엇이 옳았고 틀렸다는 판단의 날을 세우는 것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말 그대로 헐리웃과 CIA가 이뤄낸 또 하나의 '미국 만세'를 노련하게 기능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점을 생각해보면 굉장한 스릴감을 느끼며 재미나게 본 이 영화도 입에 단 독이라는 생각을 저버릴 수가 없다.

 

 

계속 꿈 꿀 수 있도록, 헐리웃

이런 독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아르고>는 분명히 즐길만한 요소가 있는 작품이다. 영화를 꿈이라고 믿고 사랑하는 입장에서 보자면 더욱 감동할 요소가 많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하는 아주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꿈꾸는 사람들이 자신의 꿈이 꿈에 그치지 않고 현실이 됐다는 증거를 얼마나 환영하겠는가. 마치 계속 꿈 꿀 수 있는 계기를 다시 얻은 것처럼, 재신임을 받은 정치인처럼 좋아할 것이 분명하다. <아르고>는 이렇게 영화라는 꿈의 대상이 CIA의 작전과 만나서 훨훨 날았던 실제 사건을 굉장히 짜릿한 스릴감을 담아 완성해냈다.

영화인이든 CIA이든 자신의 직업을 제대로 즐길 줄 알았던 사람들이 성공시킨 이 작전은 굉장히 인상적이다. '아르고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각자의 위치에서 제 할 일을 제대로 했고 팀워크가 완성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성공한 프로젝트를 경험하고 나면 그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이 국가와 관련된 일이고 국민을 살려낸 일이라면 두고두고 무용담처럼 이야기하고 싶은 것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각해보면 평생 기밀사항을 누설하면 안 되는 비밀요원들의 삶이란 얼마나 어려움이 많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것도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이 '아르고 프로젝트'에 대한 기밀사항이 해제됐고 이것이 2007년 기사화 되면서 영화화가 결정됐다고 한다. CIA의 창고 속에는 얼마나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숨어있을까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그 이야기 속에는 현재의 음모론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무궁무진한 자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니 그렇게 보면 이야기의 보고가 따로 없겠다 싶을 정도이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것이 작위적 설정에서 나온 것임이 뻔히 보임에도 '실화'라는 인증 하에 그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의 사실로 받아들이는 착각을 관객이 즐기도록 만든다. 그것은 헐리웃 영화의 특기 아니던가. 영화의 클라이막스에 공항 출입국 사무소를 통과하는 순간에는 몸을 제대로 둘 수 없을 만큼 긴장감이 넘친다. 분명 작위적인 설정임이 눈에 보이는데 그 설정에 그대로 넘어가버린다. 이건 실화라는 사실을 등에 업은 연출의 힘이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미국 비자를 받으려다가 거부당한 기록을 지닌 본인은 미국 땅에 들어갈 때마다 그 사실을 설명하고 해명해야 하는 불편함을 끌어안고 있다. 그래서 출입국 사무소 앞에 설 때면 일단 긴장되고 주눅이 들어있는 상태를 경험한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안다. 그것이 죄가 아니고 떳떳한 입장임에도 그렇게 긴장이 된다. 하물며 당장 자신들의 신분이 드러나면 총살될 수 있는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위장 신분으로 연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출입국 사무소 앞에서 얼마나 긴장이 될까를 상상하니 보는 내내 손에 땀이 저절로 날 지경이었다.

 

 

영화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자신의 일이 얼마나 가치 있게 쓰였는지, 자신들이 얼마나 대견한 일을 했는지를 명확하게 입증하는 이 영화를 외면할 리가 없다. 가뜩이나 끼 많고 보여주는 것 좋아하는 사람들인데 이렇게 영화로 '' 만들어지기까지 한 작품을 무시할 수 있겠는가. 더욱이 지적했던 독도 미국인들에게는 달콤한 꿀일 테니 지적할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라도 이 영화는 내년에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을 포함해 그 전에 열릴 연말 영화상에 많은 부분 후보 지명과 수상이 예상된다. 그렇다면 감독과 제작자의 모습으로 시상식에 참여한 벤 애플렉과 조지 클루니를 보게 될 것이다. 헐리웃과 CIA가 합동해서 이룬 이 자랑거리를, 수상 소감으로도 입버릇처럼 '나는 영화라는 내 일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 헐리웃이 그냥 내버려둘 리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