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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우리도 사랑일까] 왈츠가 멈춘 삶은 여전히 공허하다

 

프리랜스 작가인 마고(미쉘 윌리암스)는 출장길에 우연히 만난 남자 다니엘(루크 커비)과 묘한 감정의 교류를 느낀다. 그런데 알고 보니 다니엘은 그녀의 집 바로 건너편에 살고 있다. 남편 루(세스 로건)와 별 탈없이 결혼 생활을 하고 있어 보이지만 결혼 5년 차의 마고에게는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있고 다니엘로 인해 그녀의 마음은 요동치기 시작한다.

배우 겸 감독인 사라 폴리의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Take This Waltz)>는 인물의 심리묘사가 섬세하고 매 장면 의미가 부여된 연출로 흔해빠진 불륜이나 외도라는 소재를 생생하게 영화에 담아냈다.

 

30년 후 오늘 당신과 키스할래요

마치 감정의 강도를 표현하려는 것처럼 주인공 마고는 레드 톤의 의상을 다양하게 입고 나오는데 이는 금발의 미쉘 윌리암스를 통해 선명하게 부각된다.

마고가 결혼한 남자와 새롭게 사랑하게 되는 남자의 대비 또한 선명하다. 요리책 작가인 남편 루와 마고는 마치 친구나 오누이처럼 다정한 부부로 보인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서로 저주를 퍼붓는 농담을 주고받고 아이들처럼 장난을 친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것 같은 남편이지만 마고를 채워주지는 못한다. 매일 새로운 닭 요리를 만들어내는 남편 루보다 앞집에 사는 인력거꾼 다니엘의 팔과 등의 근육이 마고를 더욱 가슴 뛰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마고는 끓어오르는 욕망을 다스리고 잠재우려 한다. 영화의 처음, 간통죄로 채찍질을 당했던 과거 처형의 재연처럼 욕망을 분출했을 때 가해지는 사회적 처벌이 두렵고 착한 남편을 배신하는 것이 미안하다. 그래서 지금의 욕망을 그 때까지 남아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30년 후로 유예한다. 그렇다고 그 마음이 30년 뒤 그 시점으로 택배 보내지는 것은 아니지 않나. 결국 기약할 수 없는 30년이 아니라 당장 오늘을 택한 마고의 선택은 즉흥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지금 청해진 왈츠를 받아들인 춤사위 같다.

 

 

왈츠가 멈춘 삶은 여전히 공허하다

결국 남편을 떠나 다니엘을 따라나선 마고. 비로소 영화 속에 레너드 코헨의 'Take This Waltz'가 흘러 나온다. 둘은 누르고 눌렀던 감정을 폭발시키며 섹스를 한다. 둘도 모자라 셋이 섹스를 한다. 왈츠를 추듯 그들을 빙글빙글 돌며 비추는 카메라는 섹스를 통한 욕망의 분출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이 곳과 저 곳 사이에 떠있는 불안한 상태가 늘 두렵다던 마고. 그래서 어쩌면 영리하게 양다리를 걸치지도 못하고 한쪽을 정리하고 나서야 비로소 새로운 관계를 시작할 수 있었던 그녀이지만 우습게도 쓰리섬을 한다. 쓰리섬이란 어느 순간 누군가는 중간의 위치에 놓여지게 되는 것일 터인데 욕망은 얄궂게도 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상태로까지 그녀를 이끄는 것 같다. 그래서 그 그림은 위태롭게 균형을 잃은 채 왈츠를 추는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왈츠를 추는 삶을 살고 싶은데 어느 새 왈츠가 빠져나간 삶은 다시 공허해진다. 마고의 선택은 사랑이었을까? 파트너를 바꾸며 무대를 빙그르르 돌아가는 왈츠를 그녀는 또다시 꿈꾸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혼자 무대를 돌아야 하는 것일까?

 

신나게 돌다 멈춰버린 놀이기구처럼

많은 장면들이 인상적이어서 그 장면만을 두고 대화 나누고 싶은 부분들이 많은 영화다. 특히 여배우들의 누드를 어떤 필터도 없이 그대로 장시간 노출하는 수영장 샤워실 장면은 당황스럽기까지 했는데 '새 것도 결국 이렇게 낡게 된다'라고 말하는 여인의 대사가 인상을 남기는 장면이다. 젊은 여인들과 나이든 여인들이 양쪽으로 나뉘어 각자의 몸을 씻어내는 장면은 '몸뚱이가 그냥 몸뚱이지 이걸 아껴 뭐하나', '지금의 몸뚱이는 지금의 몸뚱이일 뿐 시간이 지나면 되찾을 수 없다'는 메시지를 선명하게 전달한다. 현재의 가치, 지금 이 순간 감정의 가치에 대한 깨달음을 주는 장면이고 이 시퀀스 이후 마고의 마음은 더욱 강렬하게 요동치게 됨을 알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날 밤 이 수영장에서 마고와 다니엘이 수영하는 장면이 나온다는 것이다. 마치 조금 전에 느낀 것을 테스트라도 해보려는 듯, 깨달음이 있었던 장소에 오는 마고. 하지만 스치듯 지난 물 속 스킨십에도 파르르 질려서 스스로 도망쳐 버린다. 뭔가 확실한 심적 변화를 암시하는 시퀀스가 나오고 그 뒤에 여전히 망설일 수 밖에 없는 장면을 붙여서 마고라는 인물의 내적 갈등을 좀 더 세밀하게 표현하려는 연출이 참 좋았다.

영화 속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 중 하나는 즉흥적으로 놀이공원에 가서 벌어지는 장면이다. 'Video Kills the Radio Star'가 쩌렁쩌렁 울리고 조명이 번쩍이며 놀이기구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장면 속에서 마고와 다니엘은 밀어내듯 당기듯 시간을 즐긴다. 하지만 갑자기 음악이 툭 끊기고 불이 환하게 들어오고 머쓱해 하는 두 사람이 보인다. 앞선 두 개의 수영장 시퀀스가 흔들리고 또 흔들리는 마고의 심리를 묘사했다면, 이 장면은 둘의 감정에 외부요인이 찬물을 확 끼얹는 격이다. 둘만 있는 시간은 좋았으나 마고에게는 남편이 있고 마고의 이런 감정에 채찍질을 가할 세상이 남아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이 장면은 마고와 다니엘의 감정 또한 평생 유지될 수만은 없음을 암시하는 장면으로 읽히기도 한다. 영화의 끝 장면에 혼자서 이 놀이기구를 타는 마고의 장면이 나오는데 그 또한 이 장면과 연결되어 강한 여운을 남긴다.

 

이 감정의 소용돌이를 연기하는 미쉘 윌리암스에 완전히 압도당한 2012년이다. TV시리즈 <도슨의 청춘일기> <브로크백 마운틴> 등에서 눈여겨 보아오긴 했으나 <마릴린 먼로와 함께 한 일주일>을 시작으로 <블루 발렌타인>에 이어 <우리도 사랑일까>까지 폭격을 퍼붓는 그녀의 연기에 완전히 항복했다. 조만간 오스카 트로피가 그녀의 손에 안기지 않을까 싶다.

 

 

이재용 감독의 1998년작 <정사>를 떠올리게 하는 정서

<정사>의 서현(이미숙)은 동생의 약혼자와 사랑에 빠지는 여인이고, <우리도 사랑일까>의 마고는 이웃의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여인이다. 둘 다 기혼자이다. 두 영화는 자신의 욕망과 사회적 시선과 가치 사이에서 방황하는 여인의 심리가 잘 묘사된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