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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하얀정글]집안 거덜나는 중병치료비, 국가에서 보전하셈!


소비자로서의 자각으로 영화 관람은 시작된다. 거리 곳곳에 즐비한 병원 광고들. 그 광고들을 아무 문제 의식 없이 지나쳤던 스스로에 대한 자각으로 관람이 시작됐다. 월에 몇 천 만원씩 들여서 집행하는 광고비는 결국 병원을 찾는 소비자(환자)의 지갑으로부터 나오게 될 터이고 때문에 의료 수가를 높이기 위해 과잉 진료나 과잉 진단이 발생할 수 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환자)가 지게 된다는 것은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풍문과 괴담에서 어김없는 현실로 전달된다.

80만원이면 한다는 백내장 수술을 받지 못한 노인. 수술 적합 검사를 한다는 이유로 필요도 없는 전신심전도 검사를 하느라 돈을 들이고 검사 끝에 수술 불가 판정을 받아 백내장 수술을 받지 못했다는 노인. 그러나 백내장 수술은 부분마취만으로 가능하기에 전신 마취가 필요 없고 80만원 정도의 시술비만으로도 치료될 수 있었다는 증언을 바라보며 이건 심각한 문제임을 자각하기 시작한다.

그 후 하나하나 보여지는 의료 시스템에 의해 피해 받은 사람들의 모습은 안쓰러워 보기가 힘들다. 눈 앞에 펼쳐지는 이 광경들이 내 일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중병치료와 무관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4명 중 한 명이 암에 걸리고 있다.”-송윤희 감독


                                              @CGV상암 무비꼴라쥬관_12.12.06


이 다큐멘터리는 한 마디로 자본에 의해 자본의 논리로 돌아가는 의료 시스템에 매스를 댄다. 그리고 의료 민영화는 이런 의료 시스템의 자본화를 부추기고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만들 수 있음에 경각심을 불어넣는다. 영화의 시작에 등장하는 병원 광고들(의식하지 못한 채 받아들이고 있는) 이 이미 우리를 뒤덮고 있는 현실은 이미 그 자본에 의한 피해자들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고 의료 민영화를 통해 불 타고 있는 집이 잿가루가 될 때까지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수 만은 없다는 것이다


스스로 의사들 제 살 깎아 먹기일 수도 있겠지만 의료 민영화를 반대하는 것은 의사들 스스로 생존하기 위한 이유이기도 하다. 의료 민영화와 자본에 의한 의료 시스템의 피해자는 비단 환자들뿐만 아니라 의료를 수행하는 의사들까지도 포함하기 때문이다.”-대한치과의사협회 김철신 정책이사

 

시네마톡에 참여한 대한치과의사협회 김철신 정책이사는 이미 치과 쪽은 그 피해가 극에 달해 있음을 인정한다. “입 벌리고 누워있는데 그제서야 보험처리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치료 후 청구된 영수증에 숫자 0이 하나 더 붙은 줄 알았다. 사랑니 두 개 뽑고 치료하는데 60만원이 들었다.” 의료계의 경쟁은 광고를 통해 소비자의 지갑을 강탈한다. 좋은 의료기기를 갖추기 위해 수십억을 들여 임대하고 그 임대료를 충당하기 위해 불필요하지만 돈이 되는 검사와 치료를 받게 한다. 그리고 그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대학병원 의사들에게 영업이 강제되고 환자 1인당 의사와 진료(상담)시간이 30여 초에 불과하다는 것은 끔찍한 현실이다. 이건 우리의 경험으로도 알고 있는 일. 예약을 하고 가서도 한참을 기다려야 하고 진료는 1분도 안돼 끝난다. 처방전은 받으나 이게 무엇에 좋고, 어떻게 하면 안 되는지 질문하고 답 들을 시간도 없다. 병원 벽에는 친절하게 간호사가 설명해준다, 약국에서 설명해준다는 식의 안내문구가 붙어있다. 이쯤 되니 의사와 병원이라는 시스템이 본질에서 한참 벗어난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다큐멘터리 <하얀 정글>은 의료계 시스템의 문제에 대해 자성의 목소리를 내는 의사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들은 한 뜻으로 인터뷰에 임했고 촬영에 협조했다. 시스템이 좋든 나쁘든 그것을 뼛속까지 아는 사람들은 내부에 있는 사람들일 터. 어찌 보면 비난의 화살을 받을 수도 있는 민감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의료계 시스템에 대한 문제를 자각하고 이런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용기 있는 정신을 응원한다.

자본에 의한 의료는 결국 자본을 위한 의료만을 남길 뿐이다.”-대한치과의사협회 김철신 정책이사

 

시네마톡에 참석한 한 관객이 질문했다. 영화 속에 인터뷰이로 등장했던 과잉 처방 안 하는 의사’, , 일부러 센 약 처방하지 않는다는 좋은 의사가 어디 있는지 알려달라는 질문이었다. 아마도 의사와 약에 속지 않으려는 다짐이 있는 관객이었으리라. 그러나 돌아온 감독의 답은 씁쓸했다. 그 의사는 이직을 했다는 것이다. 어디로 이직했는지 모르지만 의료계의 추한 시스템을 견디지 못하고 이직을 했을 전직 의사의 속마음이 어떠했을지. 양심과 의식을 갖고 정의를 실천하려는 사람들을 비틀어진 시스템은 가만 두지 않는다. 비단 의료계뿐이랴.

 


영화 관람 후, 참여한 관객과 함께 메시지 퍼포먼스를 벌였다. “집안 거덜나는 중병 치료비 나라에서 보전하셈이라는 메시지를 들고 스크린 앞에서 사진을 촬영했다. 돈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고 치료를 포기하는 국민들,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쓸데없는 돈을 쓰게 만드는 의료계 시스템을 한탄하며 그런 시스템 개선과 국민들을 보호할 국가의 의무를 다하라는 메시지다. 꼼수가 아닌 정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메시지 퍼포먼스로 여겨진다.


영화의 사이사이 삽입된 이미지는 새는 물을 손으로 받는 장면이다. 그러나 후반부에 가서는 물이 새는 틈이 더욱 커져 쏟아져 나오는 물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된다.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계속해서 자본의 편에 서고 돈 놀이에 놀아난다면 정말 겉잡을 수 없는 지경이 된다는 메시지를 이미지로 보여주는 장치다.  


극장을 나오면서 생각했다. 꿈에 대해서. 어릴 적 누군가는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고 아프지 않게 해주기 위해서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꾸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물론 그 꿈을 키우며 의사가 되면 돈도 잘 벌고 당당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끼어들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 그렇다고 그게 꿈의 순수성을 저해한다고도 할 수 없다. 중요한 건, 그 꿈의 본질은 돈을 벌겠다는 것이 아니라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아픈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었을 것이라는 부분이다. 그러나 정작 의사가 되어 아픈 사람을 상대로 장사를 하고, 영업을 하고, 사기를 치도록 만드는 시스템 안에서 하얀 의사 가운을 입고 있는 자신의 모습은 얼마나 자괴감이 들게 할까. 아픈 사람 없는 세상을 추구했으나 이젠 얼른 아파서 내 병원으로 와서 돈 쓰라고 광고하는 현실이 어떻게 보일까. 그걸 인식하고 있다면 최소한 깨어있는 의사들일 것이고 다큐멘터리 <하얀 정글>을 만들겠다고 한 사람들도 그러한 깨어있는 의사 집단이라고 생각한다. 순수한 꿈이 잘 성장하고 현실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응원하고 그런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이상이 아니다. 최소한 그런 시스템이 존재하는 것을 방해하지는 말아야 한다. 방해하는 자들은 그것을 이상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이상이 아님을 <하얀 정글>은 외친다. 그 꿈이 자라 돌봐야 할 사람들이 현실 속에서 엄연히 숨쉬며 살고 아파하면서도 숨쉬고 살고 있다는 것이 그것이 꿈에 그치지 말아야 할 현실이며 불가능한 이상이 아닌 가능한 현실임을 부르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