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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제16회 BIFF 체험기! 올해 부산의 달라진 점과 최고 추천작은?

2011년 제16BIFF(부산국제영화제) 체험기(2011.10.08~10.10)

 

9월부터 그렇다. 공연히 기차 타고 남쪽으로 향하고 싶어진다. 회도 먹고 싶고, 밀면도 당긴다. 먹지도 않을 돼지국밥 논하며 괜히 콧바람 들어간다.

한 두 번 겪는 거 아니니 티켓 구할 경쟁도 코웃음 치며 넘길 여유도 생겼다. 목숨 걸고 표 구해서 꼭 그거봐야 한다는 강박증의 부질 없음을 깨우친 지도 오래다. 게다가 같이 영화 즐겨줄 역대 최강, 최다 무리도 생겼다. 이제 가기만 하면 됐다. 그리고 다녀왔다. 2011 10월도 아주 따뜻했다, 부산은.

    


올해 부산은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우선 영문 표기 앞자리가 P에서 B로 바뀐 첫 해다. 부산의 공식 영문 표기명이 Pusan에서 Busan으로 바뀐 지는 몇 해가 지났다지만 이를 영화제 이름에 적용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그래서 PIFF BIFF 가 됐고 피프비프라고 수정해서 발음해내는 것이 적잖이 신선했다.

 

올해는 센텀시티에 부산국제영화제 전용 상영공간인 영화의 전당이 완공돼 처음 공개된 해이다. ,폐막식과 야외 상영회 공간으로 사용됐던 수영만 요트경기장 내 상영관은 이제 지난 추억의 공간이 되었다. 아쉬운 점은 이제 야외 상영관에서 광안대교를 바라보며 영화를 볼 수 없다는 것이고, 반가운 일은 전용 상영관을 갖췄기에 동선이 좀 더 집중될 수 있다는 것이다. 화려한 LED 천정이 눈에 띄는 야외 상영장 외에도 영화의 전당에는 영화 상영관과 공연장, 관객과 영화인의 만남의 장이 마련되어 있어 영화제를 집중적으로 즐길 수 있는 전당이 되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센텀시티에 생긴 영화의 전당 오픈과 함께 영화제와 멀어진 공간이 하나 더 있다. 다름 아닌 남포동 영화의 거리’. 해운대 지역으로 영화제의 중심을 옮기겠다는 발표를 들었을 때, 그게 현실에서 어떤 모습으로 영향을 미칠지 상상을 못했었다. 그런데 그 변화는 곧바로 나의 영화제 동선을 바꿔놓았다. 부산에 머물렀던 23일 동안 나는 부산역을 넘어가지 않았다. 숙소도 모두 해운대 지역, 상영관도 해운대 메가박스, 센텀시티 CGV, 롯데시네마, 영화의 전당으로 집중되어 있어 그 지역을 벗어날 일이 없었다. 작정하고 남포동 거리로 가서 관광을 하거나 자갈치 시장에 가지 않는 한 영화제 내내 해운대 지역을 벗어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변화였다. 영화제 공간이 집중되어 동선이 여유로워지고 편리해졌다는 것은 분명 장점이다. 영화인들과의 만남 행사도 모두 이 안에서 이뤄지니 계획 짜기도 한결 수월해졌다. 남포동에서 해운대까지 오는 시간을 고려하며 영화를 포기하고, 이벤트에 못 가 발을 동동 굴렀던 것은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터인데 올해는 그런 일이 훨씬 적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아쉬운 점은 역시나 남포동 거리의 맛집과 자갈치 시장의 분위기를 영화제 계획 외로 따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변화는 분명히 이뤄졌다. 이 변화의 긍정적인 면을 지켜내며 과거 추억의 장소도 함께 즐겨내는 것이 향후 BIFF를 찾는 관객들의 과제가 아닐까 한다.



BIFF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과 관객들이 편안하게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환상적인 공간이다. 얼굴이 알려진 국내외 영화인들은 기본이고, 얼굴이 안 알려진 수많은 세계의 영화인들이 스쳐 지나가는 것은 셀 수도 없을 것이다. GV를 통해 극장 안으로 관객에게 한 발짝 더 다가선 영화인들은 더욱 호의적이다. 특히 외국의 영화인들은 GV를 통해 좋은 매너와 함께 정성스런 답변과 사인 요청, 사진 촬영 요청에도 흔쾌히 응하는 모습을 보이니 관객들이 더없이 신날 수 밖에 없다.

그랜드호텔에서 진행한 CJ E&M의 밤 파티 초대를 받아 초대 가수들의 공연도 보고 파티에 참여한 배우들을 볼 수 있었던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굳이 그렇게 대상이 한정된 파티에 가지 않더라도 전세계 영화인들과 옷깃 스치며 마주칠 수 있는 공간, 그것이 바로 매년 10월의 부산이다.

이런 매력이 전세계 영화인들과 전세계 관객들이 부산을 찾게 하는 아주 큰 매력이리라 생각된다.  

 

2011 BIFF에서 만난 영화

23일간 8편의 영화를 관람했다. 작년 영화제를 돌이켜 볼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이 대만 영화였다. <사랑이 찾아올 때><오브아, 타이페이>등의 작품을 인상적으로 보면서 대만 영화에 대한 새로운 감상을 가질 수 있었다. 우리와 정서가 비슷하기에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많았다. 때문에 올해도 대만 영화를 보고 싶은 욕구가 있었으나 대만 영화와는 인연이 닿지 않아 아쉬웠다. 하지만 여느 해보다 다양한 국가의 다양한 영화들을 볼 수 있었던 해이기도 했다. 관람한 영화의 절반이 다큐멘터리 영화였기에 픽션의 세계보다는 현실의 실제적인 문제에 대해서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 것도 올해 영화제의 특별한 경험이었다.

 

 

-아시아 영화의 창- 아시아 영화의 현재를 가장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섹션

<마이 백 페이지>(일본)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 / 츠마부키 사토시, 마츠야마 켄이치 주연

1969년부터 72년까지 소위 전공투(전학공투회의)세대의 끄트머리를 살아낸 일본 젊은이들의 이야기이자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에세이를 영화로 옮긴 작품이다. 신문사 기자 사와다(츠마부키 사토시)는 거대 학생운동 조직의 섹트를 조직해서 엄청난 반란을 준비하고 있다는 우에야마(마츠야마 켄이치)를 우연히 만난다. 언론인으로서 책임감과 양심을 지키고자 하는 사와다는 감상적이라는 이유로 선배들에게 질타를 받기도 한다. 그런 그는 우에야마를 통해 점점 학생운동을 지지해야 한다는 언론인으로서의 책무를 느끼게 되고 특종에 대한 유혹을 동시에 충족하며 우에야마의 곁에 맴돈다. 그러나 사실 우에야마는 망상에 젖어있는 인물이다. 독선적인 자기 세계에 갇혀있고 그것은 논리적이지 못해 타인을 설득하지도 못한다. 그럴수록 그는 자신의 생각을 과대포장하고 그럴수록 관객은 그가 자신을 세상에 알리고자 하는 도구로 학생운동을 이용하는 얄팍한 가짜임을 깨닫게 된다. 자신을 믿고 조직에 들어온 여자친구에게 너를 위해 세상을 바꾸려는 거야같은 입에 발린 말로 낙태까지 하게 만들고 조직 유지비를 끌어 모으기 위해 임신했다는 걸 이용하라고 말하는 비열함까지 보인다. 온갖 사기와 허풍으로 있지도 않은 조직에 대해 부풀리고 그렇게 미끼를 던지며 특종을 잡으려는 기자들을 현혹한다. 그의 가짜 행보는 결국 살인으로 이어지고, 진짜 혁명가를 꿈꾸는 가짜의 행보는 끝내 들통나고 만다. 그는 자신 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것을 다 망쳐놓는다. 심지어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잘못을 떠넘기는 데 급급하다. 심문을 당하며 모든 것을 부풀려서 조직원들의 아지트까지 불어대는 그는 자신과 일면식도 없는 진짜 투쟁가에게까지 누명을 씌워 그의 혐의를 부풀리는 극도로 무개념한 가짜의 모습을 보여준다.

학생운동을 하는 사람들, 그 운동을 지원하는 언론인, 그리고 그 틈새에서 망상에 젖어 진짜 행세를 하는 가짜 운동가, 그런 가짜에 홀려 젊음을 탕진해야 했던 사람들. 60년대 일본 학생 운동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90년대 후반 대학생활을 한 내게도 낯선 풍경이 되지 못한다. 궤변을 늘어놓고 번지르르하게 포장하고 진짜 행세를 했던 가짜 학생 운동가들, 그리고 그로 인해 망쳐진 시간을 후회하며 사회에 첫발을 내디뎌야 했던 사람들, 그 누구도 책임져 주지 않는 동정 없는 세상 속에서 지난날을 후회하고 그 가짜 선동가를 원망하는 술자리의 풍경들…… 낯선 풍경인가? 언론인을 꿈꿨던 사람들,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들, 가짜들을 경험했던 사람들, 가짜를 한 명이라도 보았거나 또는 그 환경 속에 있던 사람들이 꼭 봤으면 하는 작품이다.

엔드 크레딧에도 흐르는 밥 딜런의 노래이자 영화와 동명인 <My Back Page>를 듣고 있자면 한없이 눈물 흘리던 츠마부키 사토시의 마지막 모습이 겹쳐지며 무겁게 짠한 마음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어려울 지경이 된다. 마츠야마 켄이치는 캐릭터가 분명한 가짜 혁명가를 진정 리얼하게 연기해낸다. 그야말로 꼼수로 자신을 과대포장하며 반짝거리는 눈빛을 보는 순간 그의 연기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된다. 반면 츠마부키 사토시는 그가 나오지 않는 장면에서마저도 그를 찾게 만드는 존재감을 이 영화를 통해 유감없이 보여준다. 올해 BIFF에서 본 영화 중 가장 추천해주고 싶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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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커런츠- 아시아의 새로운 재능 발굴의 산실로 뛰어난 신인 감독들의 작품을 세계 최초, 또는 해외 최초로 만나볼 수 있는 섹션.

 

<거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인도네시아) 카밀라 안디니 감독/ 지타 노발리스타 주연

인도네시아 와카토비 섬에는 바다 한 가운데에서 살아가는 바조 부족이 있다고 한다. 이 바조 부족의 삶 속으로 들어가 맑은 동심과 푸른 바다와 맑은 거울을 소재로 아버지를 잃은 소녀의 성장기를 다룬 영화이다.

바조 부족의 특색 있는 삶, 바다의 청아함과 동심의 순수가 주는 재미와 감동이 가득한 영화였다. 섬에서 돌고래 소리 연구를 하는 박사와 소녀 파키스의 어머니, 파키스의 삼각관계는 인도네시아판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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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시네마- 폭넓은 스펙트럼의 비아시아권 영화들을 소개하는 그야말로 전세계로부터 온 수작을 상영하는 섹션.


<수면병>(프랑스,독일,네덜란드) 울리히 쾰러 감독 / 피에르 보크마, -크리스토프 폴리 주연

수면병이라는 독특한 증상을 제목으로 한 이 영화는 아프리카에 제공되는 의학적 원조(물적, 인적)가 부패한 그 사회처럼 해법 없이 부패해버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묘한 늘어짐과 느슨한 삶에 젖어버리는 의사의 모습은 수면병이라는 증세가 결국 인간이 겪는 병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깃든 분위기임을 느끼게 한다. 하마가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은 그 땅에 거한 천연존재의 분노를 표한 것이 아닐까. 올해 베를린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포르피리오>(스페인,콜롬비아,우루과이) 알레한드로 란데스 감독/ 포르피리오 라미레스 주연

하반신 불구의 포르피리오는 휠체어에 앉은 채 아들의 도움을 받아 용변을 보고, 샤워를 한다. 핸드폰을 마치 공중전화처럼 빌려주며 생활하는 그의 일상을 보여주던 영화는 장애인 복지기금을 제공하지 않는 정부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 그가 계획하고 실천하는 일을 통해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휠체어에 앉아있어야 하고 늘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포르피리오, 하지만 그의 삶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능동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휠체어에 앉아있지만 그저 가만히 있지만은 않는 포르피리오. 영화의 마지막 랩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포르피리오의 무기력하면서도 에너지가 비치는 모습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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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앵글- 단편영화,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을 소개하는 섹션.


<나의 저승길 이야기>(루마니아,폴란드) 안카 다미안 감독/ 블라브 이바노프 출연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그 누명을 벗기 위한 투쟁으로 단식을 선언한 남자가 있다. 이것은 실화이고 그 남자는 결국 시위 끝에 죽음을 맞게 된다. 애니메이션을 통해 억울한 남자의 사연과 부조리한 세상을 조명하는 작품. 스산한 분위기의 엔딩, 펄럭이던 흰 담요의 잔상이 길게 남는다.

 

<안데스의 노래>(베네수엘라) 아타우알파 리시 감독

베네수엘라에 대해 미스 유니버스 외에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도시화된 그 나라에도 그 나라 고유의 문화를 지켜오는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있다. 바이올린과 호수, 춤추는 말과 노새를 중심으로 전통을 지키는 사람들의 삶이 안데스의 노래와 함께 아름답게 펼쳐진다.

자연의 이치를 따르고 주술을 믿으며 순수한 눈빛을 반짝이는 사람들, 100세가 넘게 살았으면서도 여전히 청춘 같은 할아버지의 모습은 어렵지 않게 우리나라의 전통을 수호하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사라져 가는 전통을 지켜내며 살아가는 소수의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이 품고 사는 삶의 향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찾아내고 소개하고 싶은 소재가 되는 모양이다.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이란) 자파르 파나히,모즈타바 미르타마스브 감독 / 자파르 파나히 출연

이란의 한 여배우가 국가에서 허락하지 않은 영화를 촬영했다는 이유로 징역 1년과 태형을 선고 받았다는 기사를 봤다. 이란 감독 자파르 파나히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반정부행위 혐의로 징역형과 함께 영화제작활동금지라는 처벌을 받고 가택연금 상태에 있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 안에서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욕구가 넘치는 감독을 집에 가둬둔다면 그는 무슨 일을 할까? 한마디로 미쳐 버릴 것이다. 영화는 정말 갇혀서 미쳐버린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모습을 담는다. 그 미침은 이란 당국에 저항하기 위함이요, 영화에 미쳐버린 자기 자신에 대한 설명이다. 영화가 될 수 없는 것도 결국 영화의 형태로 만들면서도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총체적인 아이러니. 미치지 않고 이 세상을 살아낼 수 있을까? 영화가 없이 이 세상을 살아낼 수 있을까? 최소한 자파르 파나히에게 그 답은 ‘NO’일 것이다.

 

<카르트 블랑쉬>(스위스,독일) 하이디 스페코냐 감독

카르트 블랑쉬는 전권위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중앙아프리카 콩고, 수많은 부녀자가 정부군에 의해 강간당하고 폭력의 피해자가 되며 온갖 강탈을 당한다. 이에 국제형사재판소에서 그들의 인권보호를 위해 앞장선다. 그들이 그 재판에 가해자, 피고인으로 세운 사람은 장 피에르 벰바. 그의 가장 큰 죄는 카르트 블랑쉬, 전권위임에 있다. 정치적인 이유로 군대를 파견해야 했고, 그 와중에 군대를 유지할 비용은 군대 스스로 알아서 해결하도록 명령한 그. 약탈을 하든 강간을 하든 폭력을 휘두르든 알아서 하도록전권위임한 것이 그의 가장 큰 죄가 된다. 그러나 피고인 벰바 측 논리는 다르다. 자신은 강간도 약탈도 직접 명령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년에 걸친 재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현재 벰바는 콩고의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상태라고 한다. 분노에 분노를 부르는 중앙 아프리카의 실상. 이 다큐멘터리의 오프닝을 전통악기의 연주로 연 콩고의 소년은, 클로징에서 갑자기 쏟아진 폭우를 그대로 맞으며 카메라를 무섭게 노려본다. 어떤 시련이 와도 끝까지 노려보며 저항하겠다는 의지가 소년의 눈을 통해 표현된다.


*2012년 제17회를 벌써 기다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