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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도가니]소설이 들끓으라 했다면 영화는 폭발하라 한다.


무진의 자애학원. 청각장애를 지닌 아이들을 가르치고 보살피는 명목으로 국가의 지원을 받는 교육기관이다. 힘들게 교직 자리를 얻어 이곳으로 부임한 강인호(공유). 하지만 첫날부터 그를 반기는 것은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안개와 그로 인한 사고와 그보다 더한 학교의 썩은 내 진동하는 분위기다. 아이들은 멍들어있고 그늘져 있다. 그리고 그 그늘의 이유가 점점 드러날수록 그 엄청난 상처에 몸서리치게 된다. 인호는 무진의 인권보호단체 간사인 서유진(정유미)과 함께 아이들을 보호하고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해 엄청난 세력들과 싸움을 시작한다. 그러나 그 끝에 권선징악 따위는 없다. 미치광이들과 그 미치광이들을 옹호하는 미친 도가니 속에서 인호와 유진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광주의 인화학교에서 실제로 벌어진 교장과 교직원에 의한 비인격적인 성폭력 범죄와 그 범죄를 완벽하게 덮어버린 권력의 실체를 여실하게 고발했던 문제작 <도가니>가 영화로 옮겨졌다. 그리고 그 파장은 예상보다 훨씬 크다. 시사회 때부터 슬슬 불기 시작한 과거 사건의 전말에 대한 국민적 분노는 이제 눈덩이처럼 커져 사법기관과 정치권력까지 사태를 다시 살피게 만들었고, 끝내 광주 인화학교에 폐교 처분이 내려지게 만들었다. 영화 <도가니>의 개봉과 함께 과거의 일로 묻혔던 일이 다시 부각되고 파장이 생긴 데에는 영화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 물론 원작 소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활자로 인쇄된 것을 영상화하여 관객을 그 사건의 실제 목격자로 느끼게 만드는 장치의 힘은 대단한 듯 하다.

이 영상화의 효과를 극대화 한 것은 원작을 각색하면서 영화로서 하고 싶은 메시지를 명확하게 부각시켰다는 것과 그 각색의 방향성을 잃지 않은 연출과 배우들의 진정성있는 연기라고 할 수 있겠다.

우선 영화 <도가니>는 원작 소설보다 부조리한 현실, 권력에 의해 범죄가 은폐될 수 있고, 유죄가 무죄가 될 수도 있다는 부조리한 미친 현실을 더욱 부각시킨다. 이는 주인공 인호의 역할에 각색을 가함으로써 분명해졌다. 소설은 인호가 겪는 심리적 갈등이 결말 부분에 극대화 되며 독자를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한다. 권력의 개입으로 가해자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못한 채 법의 심판이 끝나고 그에 서유진과 사회단체 등은 반발하는 투쟁을 벌이는 가운데 인호는 무진을 떠난다. 서울에서 올라온 아내의 간곡한 청과 이미 재판 과정에서 현실의 벽 앞에 무기력해진 상태는 인호가 무진을 도망치듯 떠나게 만든다. 그러나 영화는 이런 소설의 결말을 완전히 각색해냈다. 인호라는 인물이 사건을 더욱 주도적으로 이끌게 했고, 법의 솜방망이 처벌에 분노하게 만들고, 함께 투쟁하게 만든다. 영화의 후반부, 원작과는 완전히 다른 민수(백승환)의 결말은 영화에 극적인 요소를 강화하는 한편 인호가 좀 더 무진에 머물 수 있는 이유를 만들어낸다. 인호가 무기력해지고 갈등하게 되는 요인을 제거하고 인호를 더 적극적인 가담자로 만든 것이 인호를 읽은 독자와는 달리 인호를 본 관객들은 좀 더 격한 감정적 반응을 일으키게 한다. 소설과 달리 인호가 처음부터 수화를 할 줄 알게 설정한 점, 서유진을 학교 선배가 아닌 무진에서 처음 만난 인물로 설정한 점 모두 인호를 원작보다 더 적극적으로 사건 속에 개입하게 만드는 장치로 보인다. 소설의 인호를 본 독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현실의 벽은 저런 것이야. , 나라도 인호 같은 결정을 했을지도 몰라.’ 소설 속 인호의 갈등은 고스란히 독자들에게도 무기력한 에너지를 전하고 그 사건으로부터 발을 빼는, 시선을 돌리는 인호를 보며 역시 그렇게 행동하고 있는 자신들을 합리화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를 본 관객은 도망가기 전에 그 자리에 서서 분노하는 감정이 더 커지게 된다. 뇌물로 들고 간 화분을 들고 가 박보현 선생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인호, 뇌물로 일을 무마하려는 자신의 교수와 상대편 변호사의 제안을 거부하고 괴로워하는 인호, 민수의 이름을 부르며 물폭탄 속에서 오열하는 인호는 원작 소설 속에는 없다. 무기력하게 도망치듯 무진을 떠난 인호 대신 물폭탄 속에 남아있는 인호를 보게 하여 관객 역시 그 사건을 목격하고도 비겁하게 빠져나가며 스스로를 합리화할 구멍을 찾는 걸 영화는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도가니>에 있어 관객은 독자보다 더 분노하고 더 반응하는 것 같다. 소설의 인호도 영화의 인호도 결국 무진을 떠나고 무진을 추억하며 끝나지만, 소설의 인호는 도망치며 그곳을 떠났었고 영화 속 인호는 때가 되어 그 곳을 떠났던 모습으로 기억에 남게 된다. 영화 속에서 인호를 좀 더 이상적인 인간으로 그려낸 것은 희한하게도 사건의 목격자로서 현실의 관객이 증언을 부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서서 처단하라고 부르짖는 투사가 될 수 있게 했다. 그런 면이 이 영화의 각색의 힘이며 그 각색의 목적을 흔들림 없이 밀어붙인 연출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어떤 모습의 영화로 나올 지 상상해봤다. 청각장애자들의 수화 표현을 관객과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게 할 것인가, 교직원들은 들리지만 학생들은 듣지 못하는 공간, 가해자는 듣지만 피해자는 듣지 못하는 공간을 어떻게 묘사할 것인가 하는 부분에 있어 감독이 욕심을 내서 스타일을 과시할 수도 있겠다 예상했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니 그런 부분을 가능한 한 최소화한 면이 느껴진다. 대신 처음부터 강인호를 수화를 할 줄 아는 선생님으로 설정하여 수화 통역자를 따로 거쳐서 인호가 아이들의 고통을 알도록 만드는 장애물을 제거했다. 그리고 청각장애자들의 표현과 공간에 대한 스타일을 단순화하는 대신 교장실 천장에 거울을 배치하거나 원작에는 조성모 노래라고 표현된 것을 구체적으로 가시나무로 결정한 것 등 영화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요소에 더욱 더 집중한 부분은 연출의 뚝심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배우들의 연기 또한 이 영화를 더욱 더 힘이 넘치게 만든다. 공유는 이 영화의 처음이자 끝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과장되지 않게 서서히 영화 속 인호를 만들어가는 그는 마지막 물폭탄이 쏟아지는 광장으로 걸어나가 민수에 대한 설명을 하며 돌아서는 장면에 자연스레 눈물이 흘러나오는 장면을 만들었고 그것은 관객에게 짜릿한 전율을 준다. 그건 연기 테크닉으로서가 아니라 꾸준히 집중하고 쌓아 올린 캐릭터 자체가 배우를 통해 나타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매우 인상적인 장면이다. <김종욱 찾기> 인터뷰에서 공유는 그렇게 말한 적이 있다. 자신은 바보 같을 정도로 선한고 순한 캐릭터에 대한 동경이 있다고 말이다. 그런 캐릭터에 대한 동경이 이 배우에게 진정성을 얹은 게 아닌가 추측해본다.


정유미의 연기는 책 속에 등장하는 모든 설명을 그대로 흡수한 듯한 인상을 준다. 역시 각색을 거쳐 원작보다 그늘진 모습을 다소 걷어냈지만 정유미의 서유진을 볼 때는 스크린 속에 책장이 펼쳐지며 그 대사가 나온 장이 또렷이 기억나게 하는 신기한 체험을 하게 한다. 영화 촬영 전에 진정 원작을 통독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피해자 아이들을 연기한 아역 배우들은 그 고생이 얼마나 컸을까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아무리 연기라고는 하지만 그 모든 순간을 표현하고 겪어내기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 어린 마음들이 먼저 걱정이 된다.

심지어 가해자인 교장과 박보현 선생, 윤자애를 연기한 배우들의 연기까지 캐릭터에 대한 미움을 극대화하기에 적합한 연기를 펼쳤다. 이 모든 배우들의 조합은 영화를 힘이 넘치는 완성물로 만들었다.

 


고발로서의 문학, 고발로서의 영화는 언제나 반드시 필요하다. 고발을 하면서 풍자하고 그것을 예술적인 표현으로 표현하는 것,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예술의 자명한 한 역할이다. 사실 소설 <도가니>는 읽는 동안 문학 작품을 보는 기분보다는 심층 취재를 거친 뉴스 기사를 읽는 기분을 느끼게 했고, 영화 <도가니>는 작가의 시각적 스타일이 세련된 영화를 보는 기분보다는 고발 다큐멘터리를 보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소설을 읽을 때는 그런 부분 때문에 실망스럽다는 생각을 했고 영화를 보고 나서는 마음이 무겁다는 느낌이 들었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두 작품이 모두 고발자로서의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예술,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예술, 그래서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가능하게 하는 힘을 주는 예술에 대한 필요는 분명하고 충족은 절실하다. 그리고 그 가뭄 속이기에 <도가니>가 이토록 세상을 들끓게, 아니 폭발하게 하는 것 같다.